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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상보 Nov 14. 2023

돈타령과 인간 존엄, 그리고 환경


나는 어려서 ‘산업역군’, ‘인적자원’이런 용어를 듣고 자랐다. 60, 70년대 우리나라가 가진 것이라곤 사람뿐이었으니 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사람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발전된 나라, 부자나라가 되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오는 동안, 일하는 사람의 존엄을 생각할 틈은 없었다. 우리나라엔 얼마 전까지도 교육인적자원부라는 부처가 있어서 학생들을 돈을 벌 수 있는 자원으로 키워내는 일을 교육부가 담당하고 있었다. 지금도 휴먼리소스라는 말을 많이 쓴다. 사람을 자원 수준으로 생각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사람을 자원으로 이용하여 부자가 되려고 노력하던 우리나라가 환경에 대해 고민할 리는 만무하다. 70년대부터 과학자들은 산업화로 인한 환경문제를 경고했지만, 부자나라가 되기 위해 불필요한 환경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금기시되었다. 요사이 인간의 존엄을 아주 조금 생각하기 시작한 우리나라는 환경을 아주아주 조금 생각하는 듯하다. 돈타령에 그마저도 곧 그만둘 것 같은 불안함은 있지만 ……


사람을 자원으로 생각하면서 인간 존엄을 생각할 수 있을까? 인간 존엄을 생각하지 않으면서 자연의 존엄을 생각할 수 있을까?


존엄은 사회로부터 부여된다. 타자에 대한 존중이 존엄을 만든다. 사람사이의 존중이 필요한 것처럼 사람과 동물, 사람과 식물, 사람과 자연의 모든 타자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사람이 자원이 아닌 것처럼 동물도 식물도 사람의 식량이 본질은 아니다. 사람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의 지배자가 아니 듯이 지구의 자원은 맘대로 사용하여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위협해서는 안 된다. ESG는 발전, 진보라는 미명 아래 행해진 사람들의 만행에 대한 책임이며, 윤리의 부활이다. 지금의 문제가 이전 세대가 저지른 잘못이라고 하기에는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진 편리와 풍요를 맘껏 누려왔고 지금 이렇게 살아있다. ESG는 사람의 잘못을 깨우치고, 사람이 망가뜨린 것들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려 노력함으로써 우리 모두의 존엄을 되찾는 행동이다.


지난 11월 7일 정부는 일회용품 규제 계도기간을 무기한 연기했다. 다큐멘터리 ‘씨스피라시’의 예를 들어 플라스틱 빨대가 해양 오염 원인의 0.03% 불과하다는 이유라도 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아무 이유 없이 -모두 다 아는 이유가 있지만- 그냥 연기했다.  씨스피라시의 빨대 얘기는 지구의 환경문제의 핵심이 바다이며, 바다를 오염시키는 주원인은 그물 등 어업에 사용된 플라스틱 도구들이고, 상대적으로 플라스틱 빨대는 비중이 작다는 이야기다. 빨대를 막 쓰고 버려도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일회용품 계도기간을 연기하자 가장 먼저 터져 나온 것은 종이 빨대 회사가 망하게 생겼다는 얘기다. 간신히 익숙해질 만한 일회용품 사용 억제를 원점으로 돌려놓으면서 핵심인 환경 문제에 대한 논의는 없고 기업체의 경영이 어렵다는 얘기가 먼저 나오는 것은 역시 환경보다는 돈이 우선인 우리나라의 인식을 반영한다. 더 웃긴 건 이걸 발표한 부서가 환경부라는 사실이다!!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부처가 환경부 아닌가?


패션 제품은 이미 권력이나 지위를 보여주는 상징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편안하고 즐겁게 해주는 문화 수준의 척도가 되었다. 왕관을 쓸 이유가 사라진 것처럼 옷으로 자신의 권위와 돈을 보여주려는 노력은 보기에도 민망하다. 그보다는 세련된 코디와 유쾌한 스타일로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패션 감각이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 이런 패션 문화를 누리는데 고가의 사치품은 필요 없다. 동물을 산채로 잡아서 만들거나 엄청난 기능을 갖은 제품도 필요 없다.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만든 싸구려 제품은 더더욱 필요 없다. 집의 가치가 집값이 얼마나 뛸지가 아니라 얼마나 편안하고 안전한가, 얼마나 행복한 가정의 보금자리가 될 수 있는지 가 중요하듯, 옷의 가치는 얼마나 비싸고 유명한 브랜드 인가가 아니라 편안하고 행복한 옷인가가 중요하다.


그럼 디자이너는 뭘 하냐고?

디자이너의 임무는 괴상한 디자인을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지속가능한 패션 아이템 설계자의 역할이 진정한 디자이너다. 패션 문화는 스타일링에 익숙해진 존엄한 개인들이 멋지게 해낼 것이다.

추억의 광고 ‘부자 되세요!’ 이 광고 2년 후 약 400만 명의 신용불량자가 생겼다. 출처: https://m.weekly.cnbnews.com/m/m_article.html?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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