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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상보 Dec 28. 2023

더현대 서울과 K패션 그리고 에루샤

오프라인 매출이 온라인에 밀리기 시작한 지 적어도 7~8년은 된 것 같다. 누구나 알다시피 백화점이 패션 브랜드의 가장 중요한 유통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백화점이 최고의 패션 유통이 아니다. 백화점에 유입되는 새로운 소비자는 줄어들고, 기존 소비자는 나이가 들면서 구매력을 잃어가고 있다. 일부 대형 백화점은 럭셔리브랜드 중심으로 MD를 구성하고 객단가를 올려 매출을 유지하고 있지만, 더 이상 가파른 매출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유럽과 중동의 전쟁으로 국제관계의 긴장도 높고, 경제 변동성과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2024년 패션업계의 전망도 매우 어둡다. 그런데 올해 패션산업 전 분야에 매출 감소와 오프라인의 퇴조에도 주목받는 백화점이 있다. 여의도 ‘더현대 서울(The Hyundai Seoul)’! 더현대는 국내 백화점 중 최단기로 연매출 1조를 돌파했다. 더현대의 오픈 초기 이슈는 '에루샤(에르메스, 루이뷔통, 샤넬)'를 유치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에루샤가 입점해 있는 점포는 대부분 백화점 매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백화점들이 에루샤 유치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우리나라 백화점 매출의 20~30%가 럭셔리 브랜드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현대가 오픈할 때 에루샤의 유치 여부가 뉴스거리가 되었었다. 하지만 올해 12월 21일, 루이비통이 오픈하기 전까지 더현대에 에루샤는 없었다. 지금까지 더현대의 매출을 이끌고 있는 것은 지하 2층이다. 지하 2층 '크리에이티브 그라운드'에서는 K팝 스타들과 SNS 스타들의 팝업이 젊은 층을 끌어 모어 더현대 스타일의 ‘몰링’(Malling)에 성공했다. 또한 온라인에서 핫한 신진브랜드들이 팝업을 거처 자리 잡았다. 더현대의 외국인 구매고객 중 20~30대의 비중이 72.8%라는 것은 더현대의 전략이 타깃으로 잡은 MZ세대에게 어필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모든 백화점이 더현대를 따라가야 하나?


더현대 지하 2층의 경쟁자는 백화점이 아니라 성수동이다. 성수동의 평당 가격이 1억 5천을 넘었다고 한다. 성수동의 땅값을 끌어올린 원인은 팝업 때문이다. 성수동은 팝업의 성지다. 디올, 샤넬, 루이뷔통, 버버리, 자크뮈스 등 명품브랜드들이 수억에서 수십억을 들여 성수동에 팝업 스토어를 열었다. 대기업들도 새로운 상품을 홍보하기 위해 성수동에 대형 팝업 스토어를 연다. 팝업은 홍보다. 때문에 현장의 매출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서 제품을 경험하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더현대는 팝업의 성지다. 더현대의 경쟁자는 성수동이다. 더현대는 공간의 절반을 휴게공간으로 만들고 많은 먹거리와 볼거리로 사람들을 모았다. 특히 트렌디한 제품의 타깃소비자인 MZ세대가 모여들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MZ의 놀이터’에 온라인 브랜드와 단기 영업을 하는 굿즈 매장이 팝업을 열었다. 더현대는 성수동과 똑같이 단기 임대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온오프라인이 하나로 뭉쳐진 지금의 유통은 소비자에게 경험을 제공할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것을 제공한 더현대는 팝업의 성지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더현대 팝업과 성수동 팝업이 다른 점이 있다. 더현대는 팝업 브랜드의 실제 입점과 오프라인 매출이 필요한데, 대부분의 온라인 브랜드는 오프라인 영업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물론 더현대의 편의성과 콘텐츠 제공으로 소비자가 모이고, 더현대의 경험은 SNS를 통해 다른 소비자에게 전달되어 다시 더현대로 끌어들여 매출을 일으키는 역쇼루밍(逆 showrooming) 현상도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더현대의 매장은 쇼룸 역할을 하고 매출은 온라인에서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더현대를 통해 수백 개의 온라인 브랜드가 오프라인을 경험했지만 소수의 성공사례를 제외하고는 단기 운영에 머물렀다. K컬처를 경험하고 싶어 하는 젊은 외국인들이 더현대로 모여 매출을 일으키는 모습은 과거 동대문 두타에 외국인이 몰리던 장면을 연상시킨다. 더현대가 신진브랜드를 마케팅으로 사용하고 폐기한다면 지금의 동대문과 같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 그렇다고 럭셔리 브랜드 중심의 매출 전략을 세운다면 여의도 상권에서 백화점은 성공할 수 없다는 통념을 확인시켜 줄 수도 있다.

모든 백화점이 팝업의 성지가 될 수는 없다. 백화점에 반드시 MZ세대가 바글거릴 필요도 없다. 아직도 나이 많은 소비자들은 백화점을 최고의 유통공간으로 생각하고 있다. 더군다나 그들은 MZ세대 분위기를 부담스러워하며, 예전의 친절한 판매사원들을 찾고 있다. 이들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브랜드도 반드시 필요하다. 럭셔리 브랜드의 매출에 기대어 성장해 왔던 백화점의 성장곡선은 반드시 둔해질 것이다.  B급, C급 백화점의 매출은 더 떨어질 것이다. 그래도 손님은 있고 백화점의 건물 크기는 줄어들지 않는다. 백화점은 결정을 해야 한다. 새로운 세대의 요구를 만족시킬 것인가, 아니면 기존 고객의 요구를 만족시킬 것인가! 새로운 세대의 요구를 만족시키려면 온오프라인을 완벽히 결합시킨 새로운 유통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고, 이런 변화가 불가능한 점포는 나이 든 소비자의 요구에 충실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둘 중 무엇을 선택하던 백화점은 당분간 힘든 시절을 보낼 것 같다. 


그런데 더현대에 루이비통이 오픈했으니 이제 더현대는 임대업을 정리하고 사치품 장사로 돌아서려나? 그래도 K패션이 K컬처와 만나 새로운 유통을 만들어가던 멋진 ‘더현대 서울’이 사라지면 많이 아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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