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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상보 Mar 23. 2024

에코디자인규정 대응 방안

ESPR의 '미판매 의류폐기금지 조항'에 대한 방안

EU는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그린딜(Green Deal)'과  ‘핏포 55(Fit for 55)’ 등 강력한 추가 정책을 시행 중이다. 이중 의류와 같은 일상용품에 대한 정책으로 '에코디자인 규정(Eco-design for Sustainable Products Regulation; ESPR)'이 있다. ESPR은 환경기준을 제품디자인에 포함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제품 및 서비스 디자인에 환경문제를 해결할 기술적 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2023년 12월 5일 합의 발표된 ESPR의 '미판매 의류 폐기 금지 조항'은 섬유패션산업 전반에 대한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의류 폐기 금지 조항을 포함시킨 목적을 파악하고, 글로벌 시장상황과 규정내용을 조사 분석하고, 다른 나라의 대응 방법을 조사하고, 우리 실정에 맞는 방안을 찾으면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시작도 못했다.

ESPR의 '미판매 의류 폐기 금조 조항'은 결국 제조 기업이 미판매 제품 폐기에 대한 금전적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수출 기업들도 수입국에서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조치를 요구하거나 처리 비용을 부담시킬 것이다. 당장은 확실한 추적이 어려운 폐기물 처리 업체나 ESPR에서 자유로운 소규모 기업을 통해 미판매 제품의 처리가 가능할 수도 있지만 결국 '디지털 제품 여권(Digital Product Passport; DPP)'등의 추가적인 제도에 따라 몇 년 안에 전체 처리과정이 명확히 공개될  것이다. 따라서 미판매 제품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기획 단계에서 철저한 수요 조사를 하고 이후 미판매 된 제품의 재활용에 대한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결국 완전한 순환과 제품의 재활용, 재사용 그리고 환경에 영향을 주는 않는 완전한 폐기 방법을 전 과정에서 강구해야 한다.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재활용 가능한 소재의 사용이다. 완전한 순환을 위해서는 제품 기획단계에서부터 재활용 가능한 소재를 사용해야 한다. 의류 제품의 재활용은 대부분 물리적 재활용이다. 물리적 재활용은 에너지 사용량이 적고, 완제품까지 제조과정이 짧다는 장점이 있지만, 한 가지 소재를 사용한 제품에 한하여 재활용이 용이하다. 따라서 물리적 재활용을 위해서는 제품 기획 초기부터 단일 소재를 사용한 디자인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의류제품은 착용감과 기능성을 위해 여러 가지 소재를 혼합하여 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리적 재활용을 위해서는 단일 소재의 기능성 제품을 개발하거나 필요한 기능을 갖춘 소재를 각각 사용하여 폐기 후 소재별로 분리가 쉬워야 한다. 또한 의류 제품은 다양한 부자재가 사용됨으로 폐기 후 부자재의 분리도 고려하여 기획해야 한다. 플라스틱 이외에 의류 제품의 재활용 방식은 대부분 "물질 대 물질(material to material)" 재활용 방식이다. 오래된 양털 점퍼가 카펫이 되고, 캐시미어가 양복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재활용된 헌 의류는 전체의 1%도 안 된다.

의류 폐기물을 줄이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이미 제작된 제품을 오래 사용하는 것이다. 제품의 사용가치가 남아 있다면 재판매하여 새로운 사용자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사용 중에 일부분에 손상이 생겼어도 수선으로 원래의 기능할 수 있다면 제품의 사용기간을 늘릴 수 있다. 지금까지 의류 제품의 수선과 재판매는 소비자의 몫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판매자와 제조자가 수선과 재판매를 책임져야 한다. 제품이 판매될 때 사용기간과 수선 방법, 사용이 불가능한 제품의 수거 방법을 판매자와 제조자가 찾아야 한다. 또한 수거된 제품이 물리적, 화학적 재활용될 수 있도록 후처리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폐기물 처리에 대한 비용을 판매자와 제조자가 부담한다. 의류 제품의 전주기를 판매자와 제조자가 책임짐으로써 제품을 기획할 때부터 폐기물을 줄일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을 찾아갈 것이다.

이런 모든 과정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한 방법으로 EU는 '디지털 제품 여권(DPP)'의 사용을 제안한다. DPP는 제품에 인쇄된 QR코드나 바코드 등을 통해 해당 제품의 원산지, 수리 및 해체 가능 여부, 수정 정보, 내구성 점수 등이 종합적으로 담긴 디지털 인증서다. 제품의 진품여부와 소유권을 인증해 줄 수 있어 럭셔리 브랜드에서 이미 사용 중이며, 제품의 관리와 함께 고객관계관리(CRM)에 사용되기도 한다. 또한 DPP는 제품의 잔여 가치를 확인할 수 있어, 신상품 또는 재판매 상품을 구매할 때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 안심하고 거래할 수 있다. 

지속가능한 패션산업을 위해서는 일련의 과정이 투명하게 이뤄져야 하며, 따라서 그린워싱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 2023년 8월 29일 발표한 그린피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한 국내 기업 399곳 중에서 그린워싱 게시물을 업로드한 기업은 165곳(41.35%)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그린워싱 예로는, 푸르른 숲, 청명한 하늘과 투명한 바다 등 자연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사용하여 소비자가 해당 브랜드의 제품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자연이미지 남용과, 친환경 및 저탄소 기술개발과 혁신에 기여한 사실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소비자로 하여금 오판하게 하는 환경 혁신에 대한 과장 마케팅,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직접 기업이 노력하지 않고 참여형 이벤트를 통해 소비자와 개인에게 책임을 전하하는 책임 전가 등이다. 2021년 8월, 프랑스에서 공포된 ‘기후, 회복력법(Loi climat et resilience)’은 그린워싱으로 유죄를 받으면 허위 캠페인 비용의 80%까지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호주는 2023년 7월 그린워싱으로 밝혀지면 최대 5,000만 호주달러(한화 약 40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법안의 초안을 공개했다. 이외에 미국과 영국 등 전 세계는 이미 그린워싱을 규제하는 입법이 늘고 있으며, 규제도 강화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최근 3년간 그린워싱으로 적발된 4,940건 중 시정명령을 받은 경우는 9건(0.2%)에 불과했다.

우리나라 섬유패션기업들은 대부분 수출에 의존하고 있다. 수입국에서는 ESPR을 들어 DPP 도입을 요구할 것이다. 또한 DPP의 정보를 근거로 수선과 재활용, 폐기에 대한 대책을 요구할 것이다. 당분간은 꼼수로 피해 갈 수도 있지만 결국 기후변화가 가져온 글로벌 유통의 새로운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 

우리나라는 물리적, 화학적 재활용을 위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도 다수 있고, DPP를 위해 스트림별 정보를 파악하고 보관, 분석할 수 있는 디지털 인프라도 충분하다. 또한 SNS 사용에 익숙하고 공정에 민감한 우리나라 소비자는 기업의 그린워싱을 감시할 수 있다. 

우린 충분한 능력이 있다. 다만 '회피(回避)'와 '무식(無識)'으로 시작을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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