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쾰른 대성당에서 《데미안》을 읽다

고딕 성당의 권위 앞에서 헤르만 헤세가 속삭인 ‘자기다움’

by 은하수반짝

쾰른 대성당을 보려고 기차에 몸을 실었다. 중앙역을 나서자마자 거대한 건물이 우뚝 서 있었다. 157미터의 웅장한 탑은 하늘을 찌를 듯 장엄했고, 크고 작은 첨탑들이 리듬을 이루며 고딕의 섬세함을 더했다. 유려한 아치 문양과 겹겹이 쌓인 직선이 마치 근육처럼 조화롭게 굴곡을 빚어냈다. 외벽을 장식하는 섬세한 조각까지 도무지 빈틈이 없었다. 대성당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눈앞에서 숨 쉬는 듯했다.

게로의 십자가

호들갑스럽게 사진을 찍고 건물을 바라봤다. 성당 벽 대부분이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전쟁 때 폭격을 받아서 이렇게 벽이 탔다던데... 까매도 너무 까맣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이 주변이 모두 불바다였대. 성당만 겨우 살아남은 거지. 아빠가 알기로는 병사들이 전쟁 중에도 상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대성당을 파괴하지 않았대.”

“와, 다행이다. 세계문화유산을 지킨 그 병사들 상 줘야겠네.”


중세 고딕 건물의 정수를 보여주는 쾰른 대성당은 1248년에 착공해 무려 600년의 세월 동안 세워졌다.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와 섬세한 조각들도 압도적이었다. 이 성당은 아기 예수께 황금과 유향, 몰약을 바쳤던 동방박사의 유골을 모시기 위해 세웠다. 금과 은, 천여 개의 보석과 진주로 장식된 유물함 속에는 세 박사의 유해가 안치돼 있다. 스테인드글라스에는 ‘동방박사의 예배’ 장면을 새긴 유리화가 있었다. 또 다른 명물 ‘게로의 십자가’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형 목조 십자가인데 죽음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최초의 예수상이다. 머리를 떨군 채 축 늘어진 그 몸은 인간의 고통을 온전히 짊어지고 있었다.

동방박사의 유물함

마침 미사 시간이었다. 현지인은 물론 관광객들도 예배를 위해 의자에 앉았다. 세계문화유산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기회라며 우리도 앉았다. 신부님과 성가대원의 엄숙한 행진으로 미사가 시작됐다. 이내 종소리와 성가, 향연(香煙)이 성당 안을 가득 메웠다. 성가대의 합창은 고왔고 곡조가 절제된 성가는 엄숙했다. 하지만 우린 예식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었기에 멋쩍게 ‘아멘’을 나즈막이 외칠 뿐이었다.

헤르만 헤세

문득 이런 엄숙한 예배 의식을 거부한 헤르만 헤세가 떠올랐다. 그는 1877년 독일 남부의 선교사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권유로 신학 대학을 잠시 다녔다. 하지만 헤세는 교리와 권위로 가득한 그 세계를 견디지 못하고 중퇴했다. 그의 고뇌와 억눌린 영혼은 《수레바퀴 아래서》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제 헤세는 카톨릭의 권위와 형식적인 신앙을 거부하며 ‘자기다움’을 찾아 나섰다. 자전 소설인 《데미안》의 다음 문장은 헤세의 구도 과정을 압축하여 알려준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는 자신을 둘러싼 가정, 학교라는 틀과 성당의 위엄에 무릎 꿇기보다 그것을 벗어난 ‘심리적 부활, 자아의 탄생’을 추구했다. 《데미안》은 전쟁을 겪은 독일 청년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고 전쟁보다 평화를, 집단보다 개인의 존엄을 추구하는 시대로 나아가는 길을 비추었다. 헤세는 카톨릭과 정부의 권위에 침묵하거나 타협하지 않았다. 전쟁이 인간의 영혼을 파괴한다고 믿었기에 폭력 대신 평화와 인간의 내면적 성장을 이야기했다. 나치의 정복 전쟁을 공개적으로 반대했고, 그로 인해 한동안 그의 작품은 독일 내에서 출간이 금지되었다.


또 헤세는 《데미안》에서 자아를 찾은 새는 ‘아프락사스’를 향해 날아간다고 했다. 여기서 ‘아프락사스’는 선과 악을 동시에 품은 신의 모습이다. ‘데미안’에서 연상되는 그리스어 ‘데몬’(악의 특성을 포함하는 신)과도 일맥상통한다.

헤세의 작품들


지금 이곳의 미사는 고요하고 평화롭다. 하지만 성당 바로 앞 광장에서는 확성기를 든 시위대가 핏대를 높이며 모여 있었다. 이처럼 신이 창조한 세상은 밝음과 어둠이 공존하는 곳이다. 사랑과 평등, 선행과 따뜻함이 공존하듯, 그 바로 곁에는 착취와 불평등, 욕망과 전쟁이 숨 쉬고 있었다. 빛의 세계만을 살았던 소년 싱클레어는 자신의 이상향이자 친구인 데미안을 만나 ‘가인의 표지’를 받는다. 이는 제도적 신앙과 결별하고, 삶의 양면을 끌어안아 자기만의 길을 걷는 용기를 상징한다.


헤세의 길은 기독교적 관점에서 볼 때 이단적일 수 있다. 아프락사스라는 신의 개념, 카인의 옹호, 카톨릭의 질서와 체제에 대한 거부가 그렇다. 또 그는 불교, 힌두교, 신비주의를 두루 탐색했다. 그는 형식에 안주하지 않고, 신 앞에서 진정한 ‘나’로 존재하려는 영적 씨름을 멈추지 않았다. 어쩌면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외침은, 결국 창조주가 허락한 ‘고유한 존재의 회복’을 갈망하는 소리이기도 했다. 헤세에 따르면 결국 신앙이란 권위와 형식이 아니라 신 앞에서 자기 자신으로 씨름하는 과정에서 성숙하는 것이 아닐까.


나도 시선을 바꿔, 대성당의 화려함 뒤편의 고통을 보았다. 사실 이곳은 종교와 권력이 결합했던 중세 시대에 신의 위엄과 왕권의 절대성을 과시하기 위한 건축물이다. 이 웅장함은 백성의 희생과 고통 위에 세워졌다. 조각이 섬세할수록 굶주린 이들은 많았을 것이다. 거대할수록 건축 현장에서 쓰러져 간 이름 없는 이들의 신음은 깊었을 것이다. 어쩌면 헤세가 부정했던 것은 신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랑을 잃고 형식과 권력에 물든 제도 그리고 전쟁과 억압으로 민중을 희생시킨 카톨릭의 타락과 지배층의 탐욕이었을 것이다.


다시 프랑크푸르트행 기차에 올랐다. 창밖으로 초록 들판이 펼쳐졌고, 마인강이 햇살에 반짝였다. 난 아이들에게 물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각자의 알을 깨고 성숙할 수 있을까?”

“우선은 공부해야죠. 엉덩이 힘 키우기요”
“영화랑 애니에서도 배울 점 많아요. 히히”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어요. 다음에는 에펠탑 보고 싶은데...”
“엄마는 ‘책 읽기’라고 하겠죠? 근데 너무 두꺼운 건 말고요.”

열차가 덜컹거리며 우리 몸도 따라 흔들렸다. 난 말끝에 이렇게 덧붙였다.
“근데 말이지, 알은 스스로 깨야 새가 되는 거야. 남이 깨주면… 그냥 계란후라이 되는 거지.”

다 같이 웃으며, 기차는 달렸고, 우린 여전히 아직 덜 여문 인생의 여정 한가운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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