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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nameisanger Nov 16. 2022

개로 길러진 아이 21

아동학대 소설

수능 일주일 전이었다.

서준은 눈치를 보고 있었다. 

수능을 얼마 남기지 않은 이 시기, 강준 때 어땠는지 기억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혹시나 강준이 시험보는 데 악영향을 줄까 봐 서준을 때리는 것도 자제했다. 침묵 속에 일주일이 지났다.  그리고 수능날. 서준은 늦잠을 잤다. 일어나보니 가족들은 아무도 없었다. 냉장고엔 음식들이 좀 남아 있었다. 몰래 덜어먹고 저녁이 되었는데 아무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밤 11시가 되었지만 여전히 적막했다. 수능 때문에 정신이 없으니 모르겠지,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냉장고에 있는 음식을 더 집어 먹고 잠들었는데 그 다음 날에도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 서준은 몇 년 만에 지독하게 행복했다. 서랍을 뒤져 나온 동전들을 긁어모아 감자칩과 햄버거도 사먹었다.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거실에서 TV를 봤다. 이렇게 계속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들이 왜 사라졌을까, 날 혼자 여기 버려두고 다른 곳으로 간 것이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신에게 빌었다. 

그들이 떠난 것일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이 집은 전세나 월세가 아니다. 아깝게 서준에게 주고 사라질 리가 없다. 그렇다면 수능을 기해 강준에게 갔다는 이야기인데, 강준이 시험보는 학교 앞에서 기다렸다가 어디 떠나기라도 한 것일까. 그렇다면 언제 돌아온다고 알려나 주면 좋았을 텐데. 좋으면서도 아쉬웠다. 그들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정보가 필요했다. 언제까지의 자유인지라도 알면 거실에 맘 편하게 있을 수 있을텐데.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자 다른 집에 사람들이 돌아오는 소리가 났다. 혹시나 그들이 돌아오진 않을까 숨을 죽였다. 결국 TV에는 집중할 수 없었다.

그들이 돌아온 것은 3일이 지난 저녁이었다. 서준은 결국 거실에 맘 편히 있지 못했다. 언제 그들이 돌아올 줄 알고 거실을 만끽하겠는가. 결국 방 안에 앉아 있는데 그들이 돌아왔다. 바깥에서 울리는 소리들을 들으며 그들이 어디에 있었는지, 무엇을 했는지 알아냈다. 

그들은 제주도에 있었다. 예상대로 강준이 시험보러 간 날 어머니는 강준의 시험장 앞에서 대기했으며, 끝나자마자 그를 데리고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아버지와 함께 공항으로 갔다. 고생한 장남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원래라면 외국으로 가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서 간단히 제주도를 갔다와서 미안하다, 아쉽다, 재미있었다, 어디가 좋았다, 사진은 어떻게 나왔다, 거기서 먹은 메로구이가 맛있었다, 말고기회는 생각보다 별로였다. 그런 이야기가 드문드문 들렸다. 여행으로 찾은 충만감 덕분에 샌드백이 필요하진 않았는지, 그 날은 서준을 찾지 않았다. 그리고 어머니는 서준이 변변치 않게 남겨둔 냉장고에서 무엇을 꺼내 먹었는지에 대해서도 까탈스럽게 따지지 않았다.


어쩌면 수능은 예외일 수도 있겠다.

서준은 강준의 경우를 떠올리고는 안심해도 되는 건가 싶어졌다. 하루 혹은 이틀 걸러 날아오던 아버지의 노성이 없었다. 어머니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물론 강준 때만큼의 배려와 기대, 정성은 없었지만, 서준은 아쉽지도 않았다. 무관심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 그들이 방해만 하지 않으면 된다. 수능 일주일 전이 지나고, 5일 전이 지나고, 3일 전이 지났는데도 별다른 폭력이나 폭언이 없자 서준은 완전히 방심했다. 수능날 전후해서는 그래도 내버려둘 생각이구나. 여덟 시 전후해서 들어온 아버지는 딱히 서준을 찾지도 않았고, 어머니 역시 서준을 잡기 위해 창조성을 발휘하지 않았다. 반가웠다. 이제야 어머니가 정신을 차렸구나. 설령 가여워하지 않는 아이라도 그 아이의 성취는 자신의 것이 된다는 것을 마침내 이해했구나. 타산적인 이유라도 좋았다. 처음으로 애정의 조각을 받았다. 물론, 제 3자의 입장에서 보기엔 아무것도 안 줬는데 무엇을 받았다는 거야라고 싶겠지만, 서준은 폭력에 맛들인 사람이 그것을 멈추는 데 얼마나 초인적인 인내심이 필요한지 잘 이해하고 있었다. 고마워, 고마워요, 물론 성적이 잘 나오면 최대한의, 그들이 상상하지도 못한 배신을 할 계획이긴 했지만 이 순간만은 고마웠다. 너무 고마운 나머지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받은 다음 복수를 하지 말아야지까지 생각했다. 

그리고는 목표를 생각했다. 수아에게 알려야 했다. 진석에게 보여줘야했다. 둘에게 복수해야 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확인받아야 했다. 인정받아야 했다. 되돌려 받아야했다. 하지만 무엇을? 자존감을? 애정을? 수아와의 오후를? 다 같이 웃음지을 수 있는 사이가 되는 것을? 무엇을 원하는지도 혼란한 채로 서준은 그 둘 때문에, 라는 것만 되뇌었다. 그렇게 수능 전날이 되었다. 그리고 서준은 일찍 잠들어 최상의 컨디션으로 시험에 임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서준은 그 날 알게 되었다. 왜 아버지가 침묵했는지. 왜 조용히 있었는지.

손자병법에는 그런 말이 나오던가. 전쟁은 속임수다, 온갖 수단으로 적을 교란시켜라, 적이 나의 의도를 파악하면 그 싸움은 진 거다. 무능한 것처럼 연출해라, 멀어도 가깝게 보이게 해라, 약점을 노려 공격해라, 혼란시켜서 기회를 창출해라. 그리고 무방비한 적을 기습 공격해라. 그러면 승률은 반드시 올라간다고.

만약 수능을 전후해서 이전과 마찬가지로 폭행을 거듭했다면 서준은 수능 날에 대한 해결책을 강구했을 것이다. 이 집에서 잠을 자지 않는다던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던가, 돈을 어떻게든 마련해서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잔다던가. 물론 본인도 고3이라 예민한데 부탁을 받는다고 자신을 같은 반 누군가가 쉽게 재워주진 않을테니 방법이 다양하진 않았을 테지. 아버지는 침묵했다. 그랬기 때문에 서준은 대비하지 않았다. 

그가 서준을 거실로 끌어낸 것은 오후 열한 시였다. 그가 자신을 끌어냈을 때 서준은 이미 패배를 직감했다. 그는 이 날을 기다린 것이다. 그랬기에 그동안 조용했던 것이다. 폭력을 수능 전 날 퍼부으면 다른 날들에 비해 두세 배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아버지는 바보가 아니다. 술 마시고 폭력을 휘두르는 감정적인 폭력배가 아니다. 그는 서준의 수능이 잘못되기를 그 누구보다도 원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심하게 때리지도 않았다. 즐겼다. 오늘 안 재울 거야. 그 말만 했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서준은 그래도 그가 생물학적으로 자신의 아버지라는 점에 기댔다. 몇 시간 뒤면 중요한 시험이지 않은가. 이만하면 됐지 않은가. 서준은 울면서 호소했다. 잘못했어요 아버지, 제가 정말 잘못했어요. 그런데 내일은 수능날이에요. 제발, 내일 맞으면 안될까요? 내일 시험 보고 와서 오늘 맞을 분량도 함께 맞을께요. 이날을 위해서 몇 년을 공부했는데요, 아시잖아요 저 성적도 잘 나오잖아요. 성적 잘 나오면 아버지 어머니께도 좋잖아요. 

그러자 아버지는 피식 웃었다. 좋기는 뭐가 좋아. 너같은 놈 성적 잘 나오는 걸 어디다 자랑하냐?

그가 서준을 괴롭히기를 그만둔 것은 새벽 네 시가 되어서였다. 그에게도 계산이 섰을 것이다. 수능은 8시쯤 시작한다. 그래도 7시 반에는 집에서 출발해야 한다. 지금부터 자더라도 세 시간이나 잘까. 한 시간 보고 끝나는 시험이 아니다. 하루종일 보는 시험이다. 체력이 필요하다. 이 정도면 서준은 내일 시험을 잘 볼리가 없을 것이다. 그는 안심한 표정이었다. 


여보, 이제 그만해요. 내일 시험보는데.


모든 것이 마무리 되자 비로소 그 여자가 공식적으로 등장했다. 어머니는 집 밖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안방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간간히 웃음소리도 들렸다. 말리려면 충분히 말릴 수 있었다. 진심으로 서준의 안위를 걱정했다면 이제서야 말리진 않았을 것이다. 알면서도 서준은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확인하고 싶지 않은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희미한 미소. 승리, 안심, 기쁨, 그런 것들이 섞여 있는 미소. 누가 이 작전을 생각해 냈는지 알만했다. 그녀의 얼굴을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서준은 못본 척 고개를 숙였다.

네 시 반에 자리에 누웠다. 이런 일은 이겨낼 것이다, 영향받지 않을 것이다. 저 인간의 방해공작에 질 내가 아니다. 어떻게든, 한 시간이 됐든 두 시간이 됐든 잠을 잘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다짐했던 대로 내일 시험을 잘 볼 것이다. 시험만 잘 보면, 이딴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감았지만 숨이 막히는 것만 같아서 몇 번이나 눈을 떴다. 아버지는 오늘은 목을 조르지 않았다. 평소에는 종종 조르곤 했는데, 이번에는 오랫동안 폭행할 수 없으면 목적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제외한 것 같았다. 

눈을 감으면 내일 맞으면 안되냐고, 개가 주인 앞에 웅크린 것 같은 자세로 아버지에게 하소연하던 자신의 비참한 모습이 떠올랐다. 그 장면이 보일리가 없는데, 그 행동을 한 것이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유체이탈이라도 한 것처럼 그 장면만이 반복해서 눈 앞에 왔다갔다했다. 감은 눈에서 눈물이 줄줄 새었다. 도무지 그치지 않았다. 심장은 카페인을 대량으로 삼킨 것처럼 두근두근 뛰어댔다. 안 돼, 제발 잠들란 말이야, 쥐어짠 목소리는 덜덜 떨려서 자신의 것처럼 들리지 않았다. 

결국 별로 자지 못한 채로 시험장으로 출발했다. 입실이 8시 10분까지지 그 다음에 30분 정도 시간이 있었다. 책상에 엎어져 좀 잔 게 도움이 됐다. 정신이 반짝 들었다. 시험은 생각보다 쉬웠다.  집중해서 풀다 보니 벌써 점심시간이었다. 수저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험 잘 보라고 사골국 같은 거라도 받았는지 그런 냄새가 풍겼다. 서준은 자신의 도시락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이 아침에 대충 싼 것으로, 내용물은 그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괜찮다. 딱히 쇠고기를 먹지 않아도 된다. 자신 만큼 이를 악물고 시험 보고 있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좋았다. 전날에 그런 꼴을 당하고 시험장에 나타난 사람은 이 교실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장담해도 좋았다.  아니, 생각하면 안 된다. 서준은 떠오르는 수치스러운 장면을 재빨리 머릿속에서 꽉꽉 밟았다. 살아나지 마라, 기억하지 않으면, 되새김질하지 않으면 장기기억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그러면 없던 일로 만들 수 있다. 그보다는 조금이라도 자서 기운을 충전해서 시험 대비를 해야 한다. 

그러나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3교시까지였다. 서준이 잠든 것은 4교시 중간쯤이었다. 입이 마르고 정신이 아득하네 싶었던 것이 마지막으로, 깨어난 것은 시험 제출을 앞두고 소란스러워진 주변 소음 때문이었다. 시계를 보았다. 제출까지 10분 남았다. 재빨리 OMR카드에 얼마나 체크를 해두었나 보았다. 아무것도 없다. 문제를 푼 것은 10개도 되지 않았다. 10분 만에 얼마나 많은 문제를 풀 수 있을까. 일단 풀어둔 것을 OMR카드에 옮겼다. 그리고 나서 두 문제인가 풀었는데 담당자가 앞에서 주의를 줬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결국 1분이 채 안 남았을 때 서준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마지막으로 했던 걸 했다. 전부 2번으로 줄줄줄 찍었다. 

밖으로 나가니 시험 잘 본 내새끼를 챙기러 온 부모님들이 보였다. 포옹 장면, 쓰다듬는 장면, 어디가서 뭘 사먹을까 고민하는 사람들, 이제 끝나서 시원하네요라는 말이 들렸다. 서준은 그들 뒤로 주저앉았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서준을 남기고 동그랗게 돌아서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다리에 더 이상 힘이 없었다. 울고 싶었지만 그럴 기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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