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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nameisanger Mar 07. 2024

나는 동안이 아닌 것을

자꾸 반말을 했다. 그 사람은 집 앞 마트에서 근무하는 여자였다. 나이는 나랑 비슷할 수도 있고, 조금 더 많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예쁜 주름이 눈가에 나 있었고, 얼굴이 하얗고,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했으며, 안경을 끼고 있었다. 보통은 안경을 끼면 미모가 덜해지기 마련인데, 날카로우면서 하얀 피부톤과 안경테의 반짝임은 조화로웠다. 원래라면 어깨를 넘는 머리겠지만, 근무할 때 깨끗한 인상을 주기 위해서인지 단단히 뒤로 묶었다. 나는 종종 그 여자를 멀리서 바라봤다. 일할 때는 어떤 기분일까. 가정이 있을 것 같은 인상인데 애들을 둘 정도 키울 것 같았다.

다른 손님들에게는 깍듯했다. 반말을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이십 대 후반 쯤으로 보이는 어린 커플 손님이 와도, 할배가 와도, 중년 아주머니가 와도 그랬다. 그런데 나에게만 예외였다.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 여자가 나에게 반말을 한 지는 일 년 반 째에 접어들고 있었다. 나랑 나이도 비슷한 것 같은데 왜 나에게 반말을 하는 걸까. 나는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있는데, 내가 나도 모르는 마기꾼이었단 말인가. 마스크 하나 걸쳤을 뿐인데 20대 초반으로 보여서 반말을 한단 말인가. 나는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흰머리가 많이 난 편이다. 집에서 학대를 많이 당해서 스트레스로 인해 그렇게 된 것 같다. 그런데 학대만 탓할 것도 아닌 게, 이십대 중반에 들어간 일터에서 꽤나 괴롭힘을 당해서 그때도 검은 머리카락이 흰색으로 상당량 변환됐다. 이제는 머리카락만 보면 60대 후반이라고 해도 믿어질 정도. 그래도 흰머리가 희끗희끗한데 반말을 하진 않겠지. 내 나이로 보이겠지. 그러나 내 예상과는 달리, 그 날도 그 여자는 반말을 했다. 반말만 한 게 아니라, 다른 손님들과 달리 나는 잘 가라는 인사도 하지 않았고, 예의상 쳐다보는 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 오늘 알게 됐다.


나는 옷에 대해서는 상당히 무심한 편이다. 어렸을 때부터 학대자가 더러운 옷을 입히거나, 혹은 옷을 사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냥 알몸을 해결할 수 있으면 별다른 관심이 없다. 그 옷이 무슨 색인지, 의류가 닳은 건지, 닳아서 바꿀 때가 된 것처럼 보이는 건지, 더러워 보이는 건지, 그런 것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 그래서 20대 후반에 사귄 애인이 내가 효도신발을 신고 있는 걸 보고 극혐했던 기억이 있다. 그냥 편하고 싸길래 신었을 뿐인데. 그건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서 나는 색의 조합이니, 웜톤이니 쿨톤이니 그런 것을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더군다나 재택으로 일하고 간간히 외출을 하는 형국이기 때문에, 옷을 갖춰입을 필요도 별로 못 느꼈다. 코로나19로 일이 재택으로 전환되면서 웬만한 건 집에서 처리하다보니, 원래도 없었던 옷입는 감각이 무한정 추락중이었단 말이다. 

그런데 코로나가 풀리면서 재택으로 전환됐던 일이 하나 둘 외부 출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그런 일은 최대한 피해왔지만, 원래 이 일은 출장이 주가 되는 일이다. 어쩔 수 없이 정장을 입고 일하러 갔다가 문제의 그 마트에 숙주나물 같은 식량을 사러 들렀다.


그런데 그 여자가 날 보고 무려 고개를 끄덕이면서 깍듯이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 나와 항상 눈을 피하던 사람이 눈을 맞추면서 날 똑바로 보고 인간 취급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곤 미소 띈 얼굴로 포인트 번호가 어떻게 되시죠? 하고 공손하게 물었다. 그전에는 물어보지도 않았던 질문까지 했다. 그리곤 친한척, 마지막으로는 이번에 들여온 천혜향이 맛있다면서 한 번 사 보라고 홍보까지 했다.  정장을 입으니 구매력이 있어 보이는 모양이었다. 물론, 1년 반 동안 단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홍보 멘트였다.


나는 그 여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호의의 반대급부를 바라는 듯한, 자신이 보낸 친절한 (상업적인 이유지만) 대화의 시도에 대한 결과물을 원하는 것 같은 눈동자를 피해서 죄를 진 사람처럼 마트를 재빨리 빠져나왔다. 내가 1년 반 동안 제 일터에 다녔던 사람임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엉뚱한 걸 탓하고 있었다. 내가 젊어 보이기 때문이라는 건 엄청난 착각임이 증명됐다. 어린 사람에 대한 응당 있을 법한 대우가 아니었다. 나는 1년 반 내내 그 여자에게 무시당하고 있었던 거다. 그 여자는 일터에 고용된 입장이라는 자신의 처지에서 최대한으로, 있는 힘껏 나를 얕잡아 보고, 그걸 끈질기게 표출까지 하고 있었는데. 나는 사실을 여태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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