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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nameisanger Apr 09. 2024

불쌍한 여자

불쌍한 여자다.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든다. 관점을 달리해 보면 말이다. 얼마나 싫었을까? 얼마나 괴로웠을까? 하루하루가 참 견디기 힘들었겠지? 그 여자는 내게 말했다. 몇 번이고, 까먹을까 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반복해서 말이다. 내가 의사한테 갔는데 말이야, 널 지우려고. 그런데 의사가 못 해준다고 하더라고. 낙태를 너무 많이 했다고, 지금 낙태하면 내 건강이 위험하다고. 그래서 지우지도 못하고 억지로 낳은 거야. 

그리고 내가 얼마나 질기고, 악독하며, 그녀의 인생을 망쳤는지를 열변했던 거 같은데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기억할 가치가 없는 말들이기도 하고. 

어쨌건 그 여자의 주장으로 나는 임신중단을 열렬히 지지하게 됐다. 낳고 싶지 않은 아이를 낳았다. 그래서 실컷 학대했다. 일반적인 시각으로 보면 그녀는 학대를 한 나쁜 사람이지만, 본인도 그러면서 괴롭지 않았을까? 물론 나를 괴롭히면서 웃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그 여자의 유일하게 즐거워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매일 같이 반복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원하지도 않는데 본인 건강상의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낳게 돼 버린 나에게 생기지도 않는 애정을 쥐어짜려고 노력했을 터다. 남들한테는 멀쩡한 척 연기하는 순간의 분량도 합치면 상당한 시간이다. 내가 짐처럼 느껴졌겠지. 그래서 그만큼의 미움을 나에게 심었던 걸까. 내가 그 여자를 떠올리면서 느끼는 너덜너덜한 혐오와, 그 여자가 포유류의 가장 귀여운 순간을 누리고 있던 나에게 가졌던 이유 없는 악의의 무게는 같은 걸까. 무게는 다르더라도 같은 종인가? 같은 씨앗으로 태동한 결과물인가? 그렇다면 내가 가진 그 여자에 대한 혐오도 그 여자가 준 선물이니 버리고 싶다. 그 여자에 관련된 것은 무엇이든 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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