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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nameisanger Apr 24. 2024

<아내는 서바이버>에 감사하기

<아내는 서바이버>(나가타 도요타카)를 읽었다. 아동학대를 겪은 한 여자가 섭식장애와 알콜중독을 겪는 일을 남편 입장에서 담담하게 서술한 책이다. 출판된 지 상당히 된 거 같은데, 이제서야 읽었다.

어떤 학대를 겪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나오지 않는다. 남편의 '이런 일을 겪고도 잘 버텨 줬다'라는 감상이 나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짐작 가능한 몇 개의 에피소드는 나열돼 있다.



최근의 나는 상당한 자기비하와 자기비난에 직면해 있었다. 돌아보면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고, 이룬 게 없고, 또래와 비교해 가진 것도 없다. 이렇다할 재산도 없고 저축도 없으며 그렇다고 커리어에서 일가를 이룬 것도 아니다. 그런데 자꾸 신문이나 TV가 보기 싫어질 일은 많아진다. 20살 때 잠깐 알았던 사람, 스쳐 지나갔던 사람이 몇십 년에 걸쳐 노력한 끝에 인정받기 시작했다. 당연한 결과다. 꾸준히 뭔가를 지독하게 하면 얻게 돼 있다. 돋보기로 태양빛을 집중시켜 불을 얻는 것 같은 어디까지나 물리적인 법칙의 지배를 받는, 피나는 노력의 결과다. 그리고 그들의 성공이 자꾸 나를 찔렀다. 넌 이제까지 대체 뭘 했냐고 묻는 것만 같다.



<아내는 서바이버>를 읽으니 그런 내면의 불안과 비난이 줄어들었다. 보아하니 에세이의 ‘아내’는 나와 살짝 비슷한 어린시절을 보낸 것 같았다. 대처 방법도 비슷했다. 먹고 토하다가 알콜중독, 조금 다른점이라면 그녀는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끝내는 고작 46살에 인지저하증에 걸렸다는 점이다.



인지저하증, 즉 알콜성 치매에 걸릴 정도로 아내가 한계까지 술을 마셨던 이유는 고통에 대한 진통제가 필요해서였다. 과거의 일이고 끝난 일인데도 쉬지도 지치지도 않고 일상을 삼켜버리는 기억을 잠재우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난 그게 뭘 의미하는지 무척 잘 알고 있었다. 고작 몇 년 전만 해도 나의 일상이었다. 과식만으로는 부족했다. 먹는 시간은 고작해야 몇십 분 아닌가. 술도 담배도 끝없이 태우고 마셨다. 즐겁다던가, 맛있다던가 하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 특정한 종류의 행동을 해야만 그런 일이 있었던 과거를 일시적으로 지울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은 운동을 한다거가 하는 건강한 행위는 아니었다. 그걸로는 충분치 않았다. 과격하고, 위협적이고, 거칠고, 난폭하고, 위험해야만 했다. 나 역시 잊고 싶은 기억을 전환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날들을 그런 식으로 보냈던가. 상당한 돈과 에너지와 시간이 소비됐다. 그것들을 합치면 필시 상당한 성공이 가능했을 정도로, 필사적이고 무모할 정도로 에너지 집약적이었다. 



난 정말 바보다. 그렇게 노력했던 날들, 죽지 않기 위해,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날들은 전부 까먹고, 남들보다 가진 게 없다고 자책하다니. 



억울하고 불공평한 건 사실이다. 맞다. 인정한다. 어린 시절에 학대를 겪었으니 어른이 되어서는 즐거운 일만 생겨야 균형이 맞을 것만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행복했던 애들은 계속 행복하고, 행복한 어른이 되고, 불행한 일이 생겨도 행복한 기억을 발판으로 극복하고, 불행한 일이 생겨도 행복한 점을 찾아내고. 불행했던 애들은 그 반대다. 나에게는 ‘망친 날’이라는 게 있었다. 오늘은 내 남은 인생의 가장 젊은 날, 남은 날들의 첫 날, 복되고 빛나는 하루라는 수사가 내게는 설득력이 별로 없었다. 무엇이 계기가 돼는 건지는 모른다. 그러나 일단 과거의 기억이 한 줌이라도 떠오르고 나면, 그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술을 잔뜩 마시고 담배를 반 갑 피우고 인지를 마비시켜 그 날을 버티거나, 하루 종일 게임을 하던가. 그도 아니면 별로 보고 싶진 않지만 시청하는 와중에는 생각이라는 걸 멈출 수 있는 아무 드라마나 정주행하거나, 아니면 셋 다 했다.  쫓아오는 과거의 망령을 다스려 창조적인 행위로 승화한다던가 하면 좋겠지만 그것도 배부른 소리. 물에 10cm 깊이에 빠졌을 때나 숨을 멈추는 법을 배운다. 몇 미터나 되는 물 속 아래로 끌려들어가 심장이 조여올 때 그런 생산적인 방향으로 사고를 전환할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첫 번째는 물론 배우자가 없다는 점이다. 아내는 서바이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아내는 분명 이런 아픔으로 고의는 아니지만 상대 배우자를 괴롭힌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이 상당했을 것이다. 둘째는 인지저하증에 아직은 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학대 후유증이 보통이 아니니 언제냐의 문제일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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