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중간하게 노력하는 자가 자신의 재능을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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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자기계발을 해야 돼요. 좀 더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쓸모 있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본인이 필요로 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본인을 필요로 하는 공동체에만 남게 되겠죠. 어쨌든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람들도 분명히 공동체에 속하기를 원할 거에요. 그런데 본인의 경쟁력이 떨어질수록, 선택할 수 있는 공동체의 수는 줄어들게 돼요. 쓸모 있는 사람이 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진짜 자기를 필요로 하는 공동체는 가족밖에 남지 않을 수도 있어요. 물론 그렇지 않은 가족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완전히 고립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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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플링은 "The Winners"라는 시를 통해 누구나 자신이 진정으로 꿈꾸는 바를 이루어 내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홀로 행동해야 하며 그 과정은 운명적으로 외로운 여행이 될 수밖에 없다는 관점을 표방한다. 즉, 그는 모든 존재가 목표지향적인 자유의지에 의해 움직이며 고독한 성취의 길에서 타인의 존재는 때로 수단으로 전락하기도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제국주의, 더 원론적으로는 약육강식의 논리를 내세우며 기존의 윤리 의식에 반기를 들기도 했던 키플링의 태도는 물론 어느 정도 극단성을 띠고 있지만 나름의 정당성 또한 갖추고 있는데, 자본주의가 절대적인 섭리로서 작용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그의 주장이 더욱 다양한 맥락에서 설득력을 가진다. 다섯 번째로 소개할 인터뷰 대상자 '김은영'이 세상에 대해 견지하는 입장은 이러한 키플링의 주장과 얼마간 맞닿아 있다. 은영은 3D 모델링 작업을 전문으로 하는 디자이너로, 자신의 일에 누구보다 큰 자부심과 애정을 보이는 열정적인 20대의 청년이다. 그의 성격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냉정한 현실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데, 그가 고백하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견해는 '뒤처진 느림보'를 기다리지 않는 현대 사회에 날카롭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K 인류가 만들어 내는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김은영 애초에 공동체라는 건 이기적인 욕구에서 시작되는 거에요. 우리는 우주에 혼자 있는 존재가 아니니까, 필요에 의해 공동체라는 개념을 만든 거잖아요. 그래서 굳이 공동체 자체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모든 공동체의 본질은 이기적인 욕구에요.
K 그렇다면 은영 씨는, 작게는 본인이 직접 관여하고 있는 공동체로부터, 그리고 넓게는 '인류'라는 공동체로부터 어떤 것들을 얻고 있죠?
김은영 우선, 제가 속해 있는 가장 작은 단위는 가족이잖아요. 가족 공동체는 저에게 금전적인 지원과 안정적인 거주 환경을 제공합니다. 그래서 금전적인 바탕이 저에게 생기면 가족의 품을 떠날 계획이에요. 그리고 인류 공동체로부터는 '기회'를 얻습니다. 조금 더 설명하자면 저에게 돈과 명예를 가져다 줄 수 있는 기회요. 이기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우리가 무언가를 취하고 제공하는 모든 과정들도 결국은 다 이기적인 거에요. 가령 회사가 직원들에게 돈을 제공하는 것은 회사의 더 큰 번영과 성장을 위한 것이고, 회사의 번영은 결국 오너에게 더 큰 돈을 가져다 주잖아요? 직원들이 회사로부터 얻는 게 있듯이, 회사도 직원들로부터 얻는 것들이 있어요. 세상을 이타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건 다 거짓말이에요. 결국은 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굴러가는 게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동체란 무엇인가.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존재이고, 우리의 내면에는 어떤 집단에 소속되고자 하는 본능적인 욕구가 내재되어 있다. 이러한 욕구는 생존의 문제와도 직결되어 있으며, 삶에서의 불가결한 필요들을 충족시켜 주기 때문에 크고 작은 공동체를 만들어 내는 일은 인간이라는 동물의 타고난 습성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고도로 복잡화된 현대 사회에서 다양한 이해관계를 수반하는 공동체의 등장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한편 문명의 발달이 인간의 물리적인 존속을 보장하기 시작하면서 인류 공동체의 정체성은 단순히 생존을 도모하는 방향으로만 귀결되지는 않게 되었는데, 특히 정서적인 유대가 공동체의 형성과 유지에 있어 중대한 축을 차지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 보다 높은 수준의 관계성을 기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은영은 공동체란 어디까지나 개인의 이기적인 욕구로부터 발생한 개념이라고 주장하면서 공동체 자체에 유기체적인 힘을 기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즉,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집단으로부터 필요한 것들을 얻는 대신, 그에 응당한 대가를 내놓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개인이 집단에 대하여 소모하는 불필요한 감정들에 대한 직관적인 해소 방안을 제시한다. 우리는 종종 타인으로부터 필요 이상의 유대를 요구하거나 이러한 유대를 제공하기를 거부하면서 정서적인 스트레스에 노출되고는 한다. 그러나 '공동체의 본질은 개인의 이기적인 욕구'라는 은영의 주장을 이해하고 나면, 이러한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K 은영 씨에 따르면 세상은 결국 이익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자본주의네요. 그렇다면, 그러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김은영 계속 자기계발을 해야 돼요. 좀 더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쓸모 있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본인이 필요로 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본인을 필요로 하는 공동체에만 남게 되겠죠. 어쨌든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람들도 분명히 공동체에 속하기를 원할 거에요. 그런데 본인의 경쟁력이 떨어질수록, 선택할 수 있는 공동체의 수는 줄어들게 돼요. 쓸모 있는 사람이 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진짜 자기를 필요로 하는 공동체는 가족밖에 남지 않을 수도 있어요. 물론 그렇지 않은 가족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완전히 고립되는 거죠.
K 그렇다면 자기계발을 하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들은 내면적인 욕구로부터 비롯되어야 할까요, 아니면 공동체에 가치 있는 노동력과 지식 등을 제공해야 한다는 외부로부터의 필요에서 비롯되어야 할까요?
김은영 그 두 가지를 나눌 수는 없어요. 어떤 공동체에 쓸모 있는 것들을 제공하고자 하는 이유는 그 공동체에 속하고 싶기 때문이고, 고립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겠죠. 그렇지만 공동체 또한 구성원들에게 일정 부분의 기여를 요구합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요구에 걸맞는 것들을 제공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자기 발전을 하는 거에요. 그래서 구분할 수 없는 것 같아요. 결국 모든 것들은 다 내면적 욕구에서 출발해요.
은영이 바라보는 세상은, 철저한 이기주의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냉정하고 무자비한 곳이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필요로 하는 공동체에 속하기 위하여 그 공동체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산물을 환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금 무정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의 이러한 관점은 우리가 집단 내에서 특정한 지위를 성취하기 위해 어떤 메커니즘을 기반으로 행동하는가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우리는 어떤 공동체에서건 정당한 구성원이 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인다. 예컨대 우리는 높은 수준의 정서적인 유대 관계를 요구하는 집단 내에서는 타인에게 적절한 감정적 지지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며, 자본주의적인 이해 관계가 상대적으로 중시되는 되는 집단 내에서는 다른 이들과 차별화되는 고유의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즉,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우리가 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지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해야 함을 강조하며, 자신의 쓸모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는 스스로의 가치를 내면화할 수 있는 강력한 동기를 찾아 준다는 점을 암시한다.
K 본인이 최근에 가지고 있었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이었나요?
김은영 제가 과연 이 분야에서 재능이 있는 게 맞는지, 그래서 이 일을 계속 하는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요. 이젠 해결됐어요. 저는 스스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 일을 계속 할 거에요.
K 왜 그런 결론을 내리게 됐죠?
김은영 직접 해 봤거든요. 그 과정에서 전문가들의 평가도 들어 봤고, 스스로에 대한 평가도 내려 봤어요. 그리고 같은 분야의 사람들과 저를 비교해 보기도 했고요. 어차피 노력은 다 저에게 달려 있는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자체가 중요했어요.
K 자신의 재능에 대해서 고민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조언이 있나요?
김은영 말해봤자 뭐 해요, 어차피 사람은 다 다른데. 결국 자기가 직접 해 봐야 알 수 있는 거에요. 어떤 분야가 되었든, 많이 해 보면 본인 눈에도 다 보여요. 어중간하게 노력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에 대해 고민을 하죠. 그래서 저는 도와주지 않아요. 저는 직접 해 보라고 말합니다. 정말 노력한 사람치고 다시 그런 고민을 하는 경우는 못 봤어요.
'재능'과 '노력'에 대한 고민은 아직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한 모든 이들의 중대한 과업일 테다. 자본주의 사회의 철저한 분업 시스템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독자적인 집단의 구성원이 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회에 기여하는 거의 모든 요소에 있어 평가의 대상이 되며, 평생에 걸쳐 자신의 성과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재능이 어떤 종류의 것인가를 끝없이 고민하게 되고,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러한 고민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있다. 그런고로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현실을 치열하게 헤쳐 나가는 은영이 자신의 분야에서 재능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무척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과거의 자신처럼 스스로의 재능을 의심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직접 해 보라'고 말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분야에 있어 최선의 노력을 다해 보지 않고 자신의 재능이 없다고 속단하는 경우가 많다. 실패가 두려워서든 의지가 부족해서든, 충분한 노력 없이 스스로를 포기해 버리는 자세는 결코 아름답지 않다. 어중간하게 노력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고민한다는 그의 촌철살인은, 가만히 책상 앞에 앉아 스스로를 의심하는 수많은 이들에게 경각심을 줄 것이라 믿는다.
K 본인만의 힐링 방법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김은영 힐링이 필요할 때, 미술을 해요. 그림을 그리면 거기에 집중하게 되잖아요? 그러면 마음을 다스리게 돼요. 제 안에 있는 어두운 것들을 전부 캔버스에 옮겨 놓는 거죠. 그래서 그림의 내용물들은 우울하고 폭력적이며 잔인한 것들이 많아요. 그게 카타르시스잖아요. 전에는 글을 쓰기도 했는데, 글은 과격하면 아름답지가 않더라고요. 직관적이고, 위협적이니까요. 그런데 그림은, 아무리 어두운 것들을 담고 있어도 예술로 승화가 돼요.
K 그림 한 편을 완성하는 데 얼마나 걸리죠?
김은영 저는 그림을 완성하지 않아요. 딱히 완성하고 싶다는 느낌이 안 들거든요. 그림들을 다 간직하고 있기는 합니다. 저는 제가 그린 그림들을 절대 버리지 않아요. 하지만, 완성은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제 그림에는 완성이라는 게 없어요. 예를 들어 초상화를 그린다고 하면 그것은 실체가 있는 거니까 목표점이 있겠지만, 제가 그리는 것들은 제 감정이잖아요. 그래서 도달해야 할 실체가 없어요. 저는 화가 나서 그리거나,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린 그림들은 절대 완성하지 않아요. 어차피 화는 또 날 것이고, 스트레스는 또 찾아오겠죠. 그러면 그 때 그림들을 다시 터치하기도 하는 거에요.
K 그러면 그림을 그리는 과정 자체에 의미가 있는 거네요?
김은영 그렇죠. 그 과정에서 저는 감정을 덜어 낼 수 있고, 마음이 편해지잖아요.
사람은 누구나 치유의 과정이 필요하고, 우리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 과정을 수행하면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를 영속한다. 개별의 인간들이 수행하는 치유의 방식은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상이한 형태를 띠고 있다. 어떤 이들은 숙면을 취하는 등의 직관적이고 정적인 치유의 방식을 선호하는 한편 스포츠와 같은 사회적이고 동적인 치유의 방식을 선호하는 이들도 있고, 예술 작품을 창작하면서 고통스러운 치유를 경험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러나 스트레스의 양태는 다양하고, 그 해소법 또한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러므로 타인이 스트레스를 다루는 방식을 자신의 삶에도 적용해 보려는 자세는 일상을 보다 풍요롭게 만드는 비결이 될 수 있다. 은영이 택한 치유의 방식은 '그림'이다. 예술의 여러 장르 중에서도 가장 순수하고 원초적인 형태를 띠는 미술은 실제로 정신과에서 심리 치료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가 언급했듯 자신의 고뇌를 덜어 내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행위에 몰입을 하다 보면 강렬한 카타르시스의 순간이 찾아오게 되며, 이는 비일상적인 정화의 경험을 우리에게 선물한다. 그는 또한 '완성하지 않는' 그림을 그려보기를 우리에게 제안한다. 도달해야 할 실체가 없는 감정들을 종이 위에 자유롭게 표현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도 우리에게 치유의 효과를 주지만, 또 다른 치유의 경험에 대한 연속적인 가능성을 열어 주기도 한다. 인생에서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가 찾아올 때마다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무형의 공간 속에 옮겨 놓으면서 현실로 되돌아갈 힘을 얻어 보는 것은 어떨까.
K 삶은 살 가치가 있을까요?
김은영 가치가 없지는 않죠. 그런데 가만히 있으면 미미해져요. 그래서 그 가치를 증대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해야 해요. 가만히 있으면 우리는 존재로서의 가치밖에 없어요. 거기에서 점점 더 그릇을 키워 나가야 해요. 존재 자체로서의 가치는 나 자신보다는 남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 같아요. 부모에게 자식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처럼요. 하지만 자꾸 스스로의 가치를 창출해 내야 본인도 자신의 가치를 피부로 느낄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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