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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 Oct 12. 2020

내 손 안의 작은 전시회 -희양산 막걸리-

청년 전통주 큐레이터의 우리술 이야기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바라보고, 그것에 대한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견뎌낸다.

 그건 달력 속 빨간 숫자, 또는 설레는 데이트 날일 수도 있고, 저녁에 먹기로 한 맛있는 음식일 수도 있으며, 꿈꿔왔던 회사로의 첫 출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우리의 일상에 설렘을 주는 것은 "택배"가 아닐까.

 하루하루 배송 현황을 확인해보며 택배가 오길 기다리는 설렘, 택배가 잘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았을 때의 두근거림, 그리고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 때의 긴장감!

 특히 그 박스 속의 내용물이 정말 마셔보고 싶었던 술이라면, 나는 그 택배를 기다리며 일주일도 하루처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그래서 술담화가 사랑을 받는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모든 술 택배가 이런 행복을 주는 것은 아니다. 출근 후 직장에서 보는 그것은 그냥 업무일 뿐이다.

 "드르륵"

 창고의 셔터를 올리면 탑처럼 쌓여있는 술 박스들이 나를 반겨준다.

 "어서 와. 술 탑은 처음이지?"    

 그 광경을 보고 있으면 한숨이 푹 나오면서 퇴근이 간절해진다.

 그래도 이런 술 탑 가운데 택배와 같은 즐거움을 주는 박스가 있다.


그건 바로 두술도가의 "희양산 막걸리"이다.


 열심히 술 탑과의 사투를 마치고 조심스럽게 희양산 막걸리의 박스를 뜯어보면 알록달록 개성 있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 라벨과, 양조자의 따스함이 느껴지는 빼곡한 손글씨의 엽서가 놓여 있다. 가끔 전미화 작가의 작품으로 만든 달력이나 포스터 같은 것이 같이 들어있는 경우도 있다.


 매번 선물과 같은 즐거움을 주는 막걸리이다.






 2013년에 최초로 한국 작가인 "이우환 화백"과 콜라보한 라벨의 와인을 출시하여 화제가 된 보르도의 샤토 무똥 로칠드는 매년 출시되는 와인의 가치를 높이고자 당대 최고의 예술가와 콜라보를 해왔다. 이미 해외에서는 이와 같이 술과 예술가의 아트 콜라보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우리술과의 아트콜라보가 이루어지고 있다. 호랑이 배꼽 막걸리로 유명한 평택의 밝은 세상 영농조합의 소호 소주는 "이계송"화백과 콜라보하였고, 네이버 웹툰 "호랑이 형님"과 "플래티넘 맥주 크래프트 맥주"가 cu와 함께 아트콜라보를 하여 "무케의 순한 IPA"를 출시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문배술의 경우에는 대한민국 각 분야를 대표하는 장인들의 만남을 주제로 "장욱진" 화백과 콜라보를 했다.


 막걸리의 경우 아직 아트 콜라보의 사례가 없다. 보통 막걸리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초록색 병에 정겨운 라벨이 붙여져 있는 것이고, 그 막걸리병은 마시고 나면 바로 버려지기 때문에 주 깊게 막걸리의 라벨을 살펴보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희양산 막걸리는 막걸리를 마시는 동안에라도 라벨 속의 그림을 감상하거나, 그것에 대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주고자 작가와의 아트 콜라보로 라벨을 제작했다고 한다.


전미화 작가님의 작품 "으랏차차"


으랏차차!!


 한 해의 농사를 시작하는 농부의 힘찬 발디딤, 단전에서 끌어올려 힘껏 외치는 듯한 역동적인 글씨체의 "으랏차차",  굳게 앙 다문 입에 비해 살짝 벌어진 콧구멍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찬 발디딤으로 인한 숨결, 호문쿨루스가 연상되는 역동성을 더해주는 거대한 손, 그리고 이러한 힘찬 시작에 어울리는 쨍한 파란색의 라벨.

 올해 4월 새로 바뀐 희양산 막걸리 라벨의 그림이다.

 
 이 작품은 전미화 작가가 새로운 농사가 시작되는 봄에 힘을 내자는 의미로 희양산 마을 소식지에 올렸던 그림이다. 코로나로 인해 희망을 잃어가던 시기에 모두 다시 힘차게 이겨내자는 양조자의 마음이 담겨있는 라벨이기도 하다.


 전미화 작가의 작품은 힘차고 거침없는 선으로 그려져 있지만 그 속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보면 볼수록 개성 있는 그림체 뒤로 따뜻함과 왠지 모를 먹먹한 감정이 느껴진다. 그래서 전미화 작가의 그림은 막걸리 라벨에서도 빛을 발한다. 오래, 자세히 볼 수록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는 이 그림은 혼자 마실 땐 천천히 막걸리를 홀짝이면서 그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고, 누군가와 함께 마실 때는 그림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건전하고 의미 있는 술자리를 즐길 수 있게 해 준다.


 소믈리에의 입장에서도 손님에게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을 제공할 수 있으며 눈에 띄는 그림 덕분에 옆 테이블의 추가 소비도 불러일으킬 수 있어 애정이 가는 제품이다.


출처: 한국 전통주 백과

 새, 도깨비, 낙타에 이어서 농부까지.

 주기적으로 변화되는 희양산 막걸리의 라벨은 지속적인 소비를 불러일으킨다.


 이렇게 술과 예술과의 아트 콜라보는 서로의 가치를 올려주기도 하고, 지속적인 소비를 부르는 특별함을 부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아트 콜라보의 가장 큰 의미는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느라 예술과 감성 하고는 담을 쌓아두고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일상 속에서 가장 쉽게 예술 작품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해주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희양산 막걸리는 양조 스토리 또한 특별하다.


 희양산 막걸리가 생산되는 문경 희양산 자락에는 청년 농부들과 귀촌 농부들이 모여 "희양산 공동체"를 형성하여 유기농 우렁이쌀을 재배하고 있다. 희양산 공동체 구성원들은 줄어드는 쌀 소비에 대한 새로운 소비처로써 술을 빚기로 하였고, 평소 술을 좋아하던 김두수 대표가 술을 만들기 시작했다.
 김두수 대표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반도체 관련 회사를 다니다가 도시가 싫어져 전국을 주유하다 희양산 자락에서의 귀촌을 결심하였다.
 그는 평소 양조를 해본 적 없었지만 고 배상면 선생님의 책을 보면서 술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통해 희양산 막걸리가 탄생하였고, 김두수 대표의 이름을 딴
"두술도가"가 문경 아자개장터에서 시작되었다.
출처: 한국 전통주 백과

 작은 공동체에서 시작된 아기자기한 매력의 막걸리, 양조자의 술에 대한 순수한 마음이 담겨있는 희양산 막걸리는 마시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따뜻한 웃음을 짓게 만든다.




 보통 우리가 술을 처음 배울 땐 희석식 소주, 즉 참이슬이나 처음처럼 같은 술으로 시작한다. 그러다가 각자 취향을 찾아가게 된다. 막걸리를 좋아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특유의 달달하고 진한 음료수 같은 느낌 때문에 막걸리를 마시기 시작한다. 하지만 달달한 막걸리는 처음엔 맛있지만 마시다 보면 질리게 되고, 결국 마시다 마시다 점점 드라이한 막걸리를 찾게 된다.


 드라이한 막걸리는 보통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특히 달달한 막걸리만 마시다 담백한 막걸리를 처음 접하면 굉장히 혼란스럽고, 적응하기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희양산 막걸리는 다르다. 분명 드라이한 막걸리인 편이지만, 달달한 막걸리만 마시던 사람도, 드라이한 막걸리를 좋아하는 사람도, 누구나 맛있게 마실 수 있는 막걸리이다. 담백한 막걸리 속에 여러 가지 맛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사실 글쓴이 본인도 달달하고 진한 막걸리만 마시다가 희양산 막걸리를 통해 드라이한 막걸리의 매력에 빠진 사람 중 하나이다.


 "희양산 우렁이쌀"이라는 유기농 쌀으로 빚은 희양산 막걸리는 쌀의 캐릭터가 확실하게 살아있는 막걸리이다. 갓 지은 맛있는 밥을 짓자마자 주걱으로 퍼 입안에 가득 머금고 우물우물 씹었을 때 입안에 퍼지는 구수한 쌀의 향미가 희양산 막걸리에서 느껴진다.

 쌀의 구수함만 있으면 느끼한 막걸리가 될 수 있는데, 신선하고 푸릇한 과실 향과 채소향, 그리고 적당한 산미가 어우러져 조화로운 맛을 낸다. 호두와 아몬드 같은 견과류 향도 끝 맛에 나면서 고소하게 마무리된다.  

 이러한 여러 가지 다양한 맛들이 튀지 않고 서로를 보완하며 완벽한 하모니를 보여준다.

 그리고 적당히 밀키한 질감이 희양산 막걸리의 다양한 맛들을 입안 곳곳에 묻혀주어 목으로 넘긴 후에도 기분 좋은 후미를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9도라는 알코올 도수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전혀 알코올취가 느껴지지 않고 부드럽게 꿀떡꿀떡 넘어간다.

 기분 좋은 과음(?)을 부르는 막걸리이다.


출처: 누루커스 nurukers


 희양산 막걸리는 9도와 15도가 있는데 앞서 설명한 것은 9도이고, 이런 다양한 맛들의 장점을 극대화시키면서 좀 더 진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이 15도이다.


9도는 가볍게 다양한 음식들과 마시기에 좋고,

15도는 강하지 않은 음식과 함께 마시거나, 술 자체의 맛에 집중하며 마시는 것이 좋다.


15도를 마시면서 입가심으로 9도를 마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문화 예술과 술을 사랑하는 양조자의 마음이 담겨있는 희양산 막걸리.

지친 하루의 끝, 희양산 막걸리 한 잔을 홀짝이며 예술 작품과 함께 감성적으로 하루를 마무리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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