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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 Dec 20. 2020

"변함"에 대해서_느린마을 막걸리

술에서 길을 찾다_酒道


"너, 변했어..."



여느 연인의 사랑싸움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이 말을 꺼내는 사람의 심정은 가슴 한구석이 텅 빈 것처럼 허전하면서도 아프도록 시릴 것이다. 

하지만 가슴 아파할 것 없다. 

당연한 것이다.


연애 초반에 열정적으로 불타오르던 사랑의 불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레 서서히 잦아든다.

슬픈 일이지만 연애에 있어서 '변함'은 자연의 섭리처럼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살아있는 한 우리는 모두 시간의 흐름을 타고 움직이기 때문에

계절이 변하고 나무들이 옷을 갈아입듯이 모든 것은 변한다.


다만 이 "변함"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어서,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긍정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

 부정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술'하면 떠오르는 것은?
출처: 현대 경제 연구원 creativeTV '세계의 술 이야기' 커버


보통 "술"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와인이고, 그다음은 사케, 고량주, 위스키, 보드카 등이다.

이 술들은 거의 살균을 하거나 도수가 높아 유통 시 변질의 위험이 적은 것들이다.

그래서 세계 각국에 변질 없이 유통할 수 있었던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세계인의 술이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술은 예로부터 계절의 흐름에 따라 그때그때 알맞은 레시피로 술을 빚어왔다.

억지로 자연을 거스르려 하지 않고 그 흐름에 따라 다양한 맛을 즐겼다.

이렇게 이어진 현재의 우리술은 

각 지역마다, 계절마다, 그리고 가문마다 다양한 모습을 띄고 있다.

이것은 우리술의 큰 장점이지만, 거의 생주이기 때문에 맛이 변하기 쉬워 폭넓은 유통이 어렵다. 

또한 국내에서의 유통 과정에서도 종종 맛이 변하여 소비자에게 혼란을 주곤 한다. 

살균을 하면 해결될 문제이지만, 그럴 경우 우리술 고유의 맛과 각각의 개성이 사라지게 된다.


우리술의 이 변화무쌍함은 많은 양조자와 업계 종사자들에게 해결해야 하는 숙제가 되었는데,

이 숙제를 역발상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낸 양조장이 있다.


  




사계절을 품고 있는 '느린마을 막걸리'.


경기도 포천의 '배상면주가'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배상면주가는 '느린마을 막걸리'를 통해 이 숙제를 유쾌하게 풀어냈다.


시간이 지남에 따른 우리술의 변화를 마케팅적 요소로 활용하여 

소비자로 하여금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요소로 느낄 수 있게 하였다.


출처: 배상면주가홈페이지


배상면주가에서는 느린마을 막걸리의 맛을 시간이 지남에 따라 4가지 계절로 표현하였다.


병입 한 지 1~3일 차는 신선하고 달콤하며 가벼운 탄산미를 가진 '봄'처럼 포근하고 달콤한 막걸리로 표현하였고,

4~6일 차는 신선하며 상콤하고 풍부한 탄산미를 가진 '여름'처럼 경쾌하고 프레쉬한 막걸리로 표현하였고,

7~9일 차는 잘익은 담백하고 부드러운 신맛을 가진 '가을'처럼 담백하고 감성적인 막걸리로 표현하였으며,

10일 차는 단맛이 줄고 쌉쌀함이 올라온 '겨울'처럼 씁쓸하면서 시원한 막걸리로 표현하였다.


사실 이러한 맛의 변화는 효모가 살아서 활발하게 대사활동을 진행하며 발생하는 작용이다.

이 당연한 작용을 계절에 빗대어 표현함으로서 

소비자가 취향에 맞게 골라 먹을 수 있게 하여 폭넓은 타겟층을 확보할 뿐만 아니라,

 효모가 살아있다는 이미지를 주어 신선한 생막걸리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도록 하였다.

뿐만 아니라 많은 양조 공간이 필요하지 않은 '생쌀발효법'의 장점을 활용하여 전국 각지에 

'느린마을 양조장&펍'을 만들어서 매장에서 바로 만든 막걸리를 계절에 따라 골라서 먹을 수 있도록 했고, 

그 결과 소비자의 머릿속에 '프레쉬하고 골라먹는 재미가 있는 막걸리'라는 인식이 단단히 자리 잡히게 되었다.


'변함'을 기회로 만든 가장 좋은 예이다.





'느린마을 막걸리' 한잔을 기울이며


출처: 미래식당


개인적으로 배상면주가의 이 시도가 전통주 업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우리술의 자연스러운 맛의 변화에 대한 이러한 해결책을 떠올리지 않고

첨가물을 잔뜩 넣어가며 인위적으로 맛을 잡으려고 하거나,

있는 그대로 방치했다면

소비자는 우리술에 대한 기대감이 하락하여 잘 찾지 않았을 것이고,

전통주 업계의 성장이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도로 인해 새로운 방향성이 잡혔고,

무첨가이면서도 일정한 범위 내의 변화를 가지고 있는 프리미엄 술들이 하나 둘 나오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무조건적으로 첨가물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무첨가 술의 성장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배상면주가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변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


'변함'이라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좋다, 나쁘다라는 이중잣대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변함'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두 얼굴을 만날 수 있다.


배상면주가처럼 '변함'을 긍정적으로 활용한다면 성장으로 가는 기회를 얻을 수 있지만,

'변함'에 좌절한다면 쇠퇴의 길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인간과 인간의 관계의 맺음에서 변화는 당연한것이다.

서로를 알아가고 서로에게 익숙해지면서 점점 처음과 달라진다.

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변화를 어떻게 대처하느냐이다.


서로에게 익숙해지면서 소홀해지는 연인도 있는 반면,

서로에게 익숙해지면서 더욱 소중한 사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에겐 이러한 익숙해지는 시간들이 지루한 시간이 아닌 소중한 시간이다.

서로에게 더 의미가 있는 사람이 되고, 서로가 서로의 삶 속으로 스며드는 소중한 시간이다.


서로의 변화에 서운함이 드는 연인들,

자신의 나이 듦에 한탄하는 사람들,

초심을 잃고 좌절하는 사람들.


'변함'에 고통받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느린마을 막걸리 한잔을 하며 그 부드러운 달콤함에 위로받으며 

'변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았으면 좋겠다. 


물론, 나도 아직 그 해답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느린마을 막걸리 한잔을 기울인다.




느린마을 막걸리

출처: 대전 투데이
 느린마을 막걸리는 경기도 포천의 '배상면주가'에서 만들고 있는 무첨가 생쌀발효 막걸리이다. 
 일체의 첨가물 없이 자연발효했을 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살아있는 효모로 인하여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생막걸리의 특징을 마케팅 요소로 활용하여 "사계절이 있는 막걸리"로 출시하였다. 
 故배상면 회장이 개발한 특수 누룩을 사용한 생쌀발효법을 사용하여 특유의 부드러운 목 넘김을 가진 막걸리를 탄생시켰고, 증자과정이 필요 없는 발효법이기 때문에 양조 공간이 크게 필요하지 않아 전국 각지에 "느린마을 양조장&펍"을 만들어 일반 대중에게 바로 만든 막걸리를 마실 수 있다는 것으로 홍보효과를 노리고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맛이 약간씩 변하지만 기본적으로 부드러운 질감과 중간 이상의 바디감을 가지고 있고, 바나나, 사과, 배, 참외 등의 달달하면서도 과즙이 풍부하고 시원한 잘 익은 과일향이 풍부하게 느껴진다. 당도가 조금 있는 편이지만 산미가 받쳐주어 밸런스가 우수하고 끝에 약간의 씁쓸함이 느껴진다. 
 기본적으로 바디감도 있고 당도도 있는 술이므로 너무 가볍고 담백한 음식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 대신 맵거나 양념이 강하면서도 무게감이 조금 있는 음식과 잘 어울린다.
(ex) 두부김치, 두루치기, 감자를 넣은 걸쭉한 국물의 닭볶음탕)
 그리고 당도가 있기 때문에 짭짤하면서 당도가 있는 la갈비 같은 간장 양념의 음식 하고도 잘 어울린다. 

- 수상이력: 2015년 우리 술 품평회 대상 / 2016년 주류대상 대상 / 2016년 몽드 설렉션 은상 / 제4회 한국 전통주 베스트 트로피



酒道 with 느린마을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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