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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뇨뇨 Feb 21. 2021

취향과 포장 사이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일상TMI


이천이십일년 이월 십팔일 아침 여덟 시.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억지로 책상에 앉았다. 나는 아침잠이 많아서 일어나는 일이 매번 고역이다. 이제 학교 수업도 없겠다, 기상의 이유가 하나 더 없어지니 더 못 일어날까 봐 기상 스터디에 들어갔다. 학교 커뮤니티에서 모인 모르는 사람들과 줌을 한 시간 가량 켜 두고 공부를 한다. 다 여자분들이기도 하고 손만 나오면 돼서 세수도 안 한 채 매일 일어나자마자 이들과 기상 인증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사진으로 인증하는 방식보다 훨씬 좋다. 사진 인증은 하고 다시 잘 수도 있고 나같이 나약한 인간은 어떻게든 편법을 강구하게 된다. 하지만 줌은 실시간으로 나의 모습이 화면에 잡히니 스터디를 하는 한 시간 정도는 절!대! 다시 잘 수 없다. 그리고 보통 일어난 15분이 힘들지 한 시간 가량 무언가 하면 어떻게든 잠이 깬다. 일어나지 않으면 내야 하는 천 원의 벌금을 이미 몇 번 낸 적이 있기에 아까워서 낮잠을 자는 한이 있더라도 우선은 일어나고 있다.

 


보통 이 시간엔 신문을 읽거나 하루 계획이나 스케줄을 점검한다. 하지만 오늘은 그러기엔 너무 졸렸다. 핑계를 대보자면 어제 친구와 공부를 하겠다며 오랜만에 가로수길에 있는 카페를 갔다. 매번 집에서 공부하는 게 지겹기도 하고 예쁜 카페에서 기분 전환이나 할 겸 해서 간 거였다. (나는 카페 가서 커피 마시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


그렇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어제는 내 기준으로 올 겨울 역대급 추운 날이었다. 정확히 몇 도인 지는 몰라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만큼 추웠다. 하필이면 기분을 내겠다고 또 춥게 입고 갔는데 가고 싶었던 카페는 닫아서 KBS 한국어 능력시험 책이랑 아이패드가 든 무거운 가방을 들고 20분을 뻘뻘거리며 돌아다녔다. 겨우 간 카페는 너무 넓은 탓에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충전기도 집에 놓고 와서 핸드폰 없이 하루를 보냈다. (물론 아이패드가 있어서 괜찮았다. 쓰다 보니 오늘 글은 티엠아이 파티다).


아침부터 진을 빼고 나니 공부할 의욕이 안 생겼다. 물론 핑계다. 하지만 집순이로 살다가 최근 학교도 가고 집 앞 카페도 가고 돌아다니다 보니 몸이 피곤했는데 날씨까지 추우니 공부가 더 잘 안됐다. 이리저리 핑계대면서 미루고 미루다가 드디어 시작한 한국어 시험공부였다. 시험 등록하면서 우스갯소리로 3일의 전사할 거야 했던 일이 현실이 되니 부담이 커져 더 하기 싫었다.


사실 쓸만한 점수가 있긴 한데 올해 K가 뜬다는 이야기에 연초에 점수를 더 올리고 싶어 의욕적으로 신청했던 시험이었다. 이렇게 공부 안 하고 볼 줄 알았으면 신청을 안 했을 텐데.... 흑. 아무튼 저런 이유들로 해야 할 공부를 다 못한 채 집에 돌아왔다. 집에서 더 하려고 했는데 너무 피곤한 바람에 화장도 지우지 않은 채 잠들었다. 잠깐 눈만 붙이고 새벽에 일어나자는 생각에 알람을 맞추고 자긴 했다. 하지만 새벽에 내가 일어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결국 오늘도 더 자고 싶다고 속으로 욕을 백번쯤 했을 때 겨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앉은 책상에서 한 오분 간 멍-했다. 뭐 해야 하지. 할 일은 사실 산더미처럼 많은데. 하기가 싫네.

그러다 카톡 창이 눈에 띄었다. 요즘은 전과 달리 도통 울리지 않는 카톡인데, 어제 일찍 잠들었더니 그래도 답장하지 않은 빨간 알림들이 있었다. 괜스레 기분이 좋아져 하나하나 답장을 하며 소소한 행복을 느꼈다. 요즘은 별일 아닌 것에도 예민해지고 짜증이 나지만, 또 별일 아닌 것에도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나는 올해 초부터 글쓰기 스터디를 하고 있다. 이 브런치에 올리는 글들도 스터디를 하면서 올린 것들이다. 종종 떠오르는 상념들을 발전시키고 정리하는 일도 공부이자 성장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는데, 글로 적어놓지 않으면 휘발되어 희미하게만 남는다. 그래서 매번 글을 써야지, 하면서도 강제성이 없으니 자꾸 미루게 돼서 스터디를 시작했다. (의지박약인 나를 잘 보여주는 지점이다..)


그래도 스터디 덕분에 매주 글을 꾸준히 쓰고 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던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쓰는 연습을 해서 너무 좋다. 또 다른 사람들의 글을 보며 배우는 점도 많다. 경직된 사고에서 벗어나 다양한 생각과 세상을 접하는 느낌?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확실히 타인과의 소통은 사람을 유연하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브런치라는 플랫폼이 너무 맘에 든다. 자주는 아니지만 틈틈이 들어와서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는다. 나는 글을 읽는 걸 좋아한다. 영상도 좋지만 누군가의 글을 읽을 때면 글에서 그 사람의 향기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이야기가 담긴 글에서는 특히나 그 사람의 취향이나 감성이 더 짙게 느껴진다. 그 사람을 직접 만나본적도, 알지도 못하지만 이상하게도 글을 읽으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가 그려진다. 소설보다는 에세이류의 글을 더 좋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글에서 사용하는 단어, 표현, 내용 등에는 그 사람만의 취향이나 감성이 짙게 담긴다. 평소 생활에서 베여 나오는 것들이라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글은 아무리 예쁘게 포장하려 해도 포장할 수 없는, 어찌 보면 가장 솔직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브런치는 유명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글을 쓰고, 또 그걸 공유한다는 점이 참 매력적인 것 같다. 나도 언젠간 브런치 북을 발행해보고 싶다는 작은 소망도 생겼다. 달력을 볼 때마다 뭐했다고 벌써 2월 중순이야!라고 괴로워하지만, 그래도 브런치에 쌓이는 글들을 보면 나름대로 무언가를 꾸준히 해 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아진다. (스스로 칭찬해주어야지..)


항상 고마운 응원해주는 사람들, 인상깊은 말, 좋아하는 책, 음식 앞에 다소곳해지는 내 손 ..


요즘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내 삶을 잘 꾸려나갈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다. 그리고 이건 자존감의 문제와 연결된다. 주변의 것들에 흔들리지 않고 내 삶을 잘 살아가고 싶다. 지금까지의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잘 모르고 살아왔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어디서나 잘 적응하고, 누구와도 잘 지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내 뚜렷한 주관이 있다기보다는 '이것도 괜찮고 저것도 괜찮아'라는 스탠스로 살아왔다. 내가 그동안 나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살아왔음을 보여주는 부분인 것 같다. 내 주관대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돌이켜보니 세상의 잣대와 기준에 맞춰 사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풍파가 닥칠 때마다 흔들리고, 또 흔들렸다.


이런 생각이 더해지자 주변에 자신의 주관이 확실한, 향이 강한 사람들이 부러워졌다. 그 사람에게서 풍기는 향이 강할수록 그 향이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특유의 여유로움과 매력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주변의 것들에 연연하지 않는 단단한 자존감을 갖고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기분이 왔다갔다 하고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극예민 상태인 지금, 나도 저런 사람들처럼 되고 싶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높은 자존감 없이는 내 인생이 아무리 잘 풀려도 멋진 어른이 되지 못할 것만 같았다. 내면의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좀 더 행복한 인생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의 나는 무색무취의 사람인 것만 같다. 상황에 따라 변하는 연약한 자존감에 뚜렷한 취향도 취미도 없는 사람(취준을 하다 보니 인생을 반추하고 자신을 정~말 많이 되돌아보게 된다. 원래 생각이 많은 사람인데 시간이 많다 보니 더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어렸을 땐 분명히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또 싫어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동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없었다. 외부의 시선과 기준에 맞추어 살아왔기에 그렇겠지.


한 번은 향이 강한 친구에게 이러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물어본 적이 있었다. 친구는 내게 나만의 개성이 뚜렷한 사람이라고 했다. 전혀 그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때 문득 아, 나는 포장을 잘하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급급한 인생이었구나 라는 생각.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결과론적으로 보면 난 남들에게 내가 보여지고 싶은 모양대로 포장한, 속 빈 강정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글을 더 열심히 써야겠다. 아직 너무 많이 부족한 글이지만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나를 위해서 글을 써야겠다. 원래 나는 글쓰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학교 주관식, 논술형 시험이나 겨우 쓰는 정도..(하지만 평생 글쓰는 일을 업으로 삼는 직업을 희망한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오히려 누군가와 대화하는 일을 훨씬 좋아했다. 전혀 안 그럴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지만 생각도 많고 철학적이거나 심오한 얘기 하는 걸 좋아한다.(...) 감사하게도 나와 잘 맞는 진지한 대화를 하는 친구 몇 명 있다. 그래서 그 친구들과 종종 서너 시간 동안 전화를 하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말은 휘발되는 반면 글은 기록으로 남는다. 말로 내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좋지만, 글로 쓰고 남겨두고 이후에 읽는 일도 중요하다. 하나의 완성된 글을 쓰기 위해서 문장을 써내려가는 과정에서 말하기와는 또 다른 생각의 정리와 확장이 일어나는 것 같다. 새 글쓰기 주제를 선정하고, 글을 쓰고, 고치고, 또 누군가와 이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그리고 내 생각을 정리한 글을 나중에 읽다보면 나에 대해서 조금은 알게 되는 것 같다. 포장에 그치는 내 취향이 아닌, 진정한 내 취향을 찾아서 단단한 어른이 되고 싶다.



+브런치 꼭 꾸준히 써야지... ㅎ 맨날 마감 시간 직전에 쓰다보니 글 구성력이 떨어진다ㅠ 완성도 있는 글 쌓기 !! 여행 에세이도 바쁜 일만 끝나면 꼭!꼭! 시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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