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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뇨뇨 Mar 01. 2021

생일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2021년 2월 27일 토요일.

누군가에겐 이르게 찾아온 완연한 봄 날씨 때문에 행복했을 주말이었을 테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바쁜 현실 때문에 제대로 누리지 못한 주말이었을 테다. 나는 후자에 속했다.


전날에는 실무 전형 대비 스터디를 하다 밤늦게 잠들었다. 이주 내내 한국어 시험, 저널리즘 스쿨 시험, 언론사 필기시험 그리고 실무 전형이 있어서 매일 늦게까지 공부했다. 그래서 몸이 너무 피곤해서 시험을 포기할까 눈을 감고서 수십 번도 더 고민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나는 지하철에 앉아서 신촌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찌어찌 필기시험을 보고 집에 오니 엄마가 생일상이라며 갈비찜, 잡채, 미역국을 해줬다. 괜스레 눈물이 핑 돌았다. 시험 보느라 고생 많았다며 생일 축하한다는 엄마의 말에 묵묵히 밥을 먹었다. 맛있어서 밥을 두 공기나 비우고 난 뒤, 잠깐 눈을 붙였다. 그리곤 다시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고, 스터디를 했다.





사실 이 날은 내 생일이었다.

생일에 그다지 큰 의미부여를 하는 편은 아니지만, 성인이 된 이후 매 생일을 조용하게 보낸 적은 없었다. 매번 친한 친구들과 만나서 여러 번 파티를 하고 시끌벅적하게 생일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녔다. 이번에도 하려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친구들 대다수가 취업 준비 중인 상황이기도 하고, 5인 이상 집합 금지 조치 때문에 생일을 챙기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생일 당일에 한 일이라곤 하루 종일 시험 보고, 공부한 일 밖에 없었다. 하지만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앞두고 있는 전형이 없었더라면 되레 더 우울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면서 무언가에 집중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그렇게 하루를 마치고 핸드폰 카톡을 쭉 보았다. 정말 많은 카톡이 와 있었다. 친한 친구부터 연락이 뜸해졌던 친구, 스쳐 지나갔던 인연까지. (요즘은 카카오톡 생일 알람 기능 때문에 친구들의 생일을 챙기는 일이 편해졌다. 이전에는 페이스북으로 친구의 생일을 알곤 했는데, 이 기능 덕분에 주변인들을 잘 챙길 수 있어 참 좋다)


아무도 내 생일을 챙겨주지 않을 것만 같은 하루였는데, 오히려 작년보다 더 많은 연락을 받은 것만 같았다. 낮에도 친구 몇 명은 전화를 걸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기도, 안부를 묻기도 해 줬다. 이렇게 축하를 받을 때마다 내가 정말 잘 살아왔구나를 느낀다. 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참 많다는 점도.



카톡을 하나하나 읽으며 답장을 했다. 짧은 카톡부터 장문의 카톡까지 각양각색이었다. 흰색 배경에 검은색 글자들뿐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따뜻하고 애정 어린 말들이 가득했다. 생일 축하한다는 축하의 말부터 시작해서 안부를 묻고, 우정을 추억하고, 나를 얼마나 애정하고 내게 고마웠는 지를 이야기하고, 건강을 챙기라는 말, 또 힘든 시기를 위로해주는 말들로 가득했다.


게다가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많은 선물을 받았다. 카페와 치킨 기프티콘부터 시작해서 화장품, 영양제, 각종 소품, 초콜릿, 커피 등등.. 선물도 너무 고마웠지만 지인들이 선물을 고르는 과정에서 정말 많이 고민했음이 느껴졌다. 내게 어떤 선물이 필요할까를 신경 쓴 부분이 느껴져 감동이 컸다. 그 안에 담긴 짤막한 축하 메시지들도 마찬가지였다. 자랑 아닌 자랑을 하자면 백 명 가까운 사람들에게 카톡과 인스타그램 디엠으로 축하를 받았던 것 같다. (헤헤)





그날 하루가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루에 시험 하나만 봐도 진이 빠지는데, 오후엔 토론 논제 공부도 하고 이어서 바로 4시간 정도 토론을 했으니 모든 일정이 끝났을 때쯤에는 너무 지쳐있었다.


완연한 봄 날씨도 한몫했다. 시험을 보고 집을 오는 중에도, 커피를 사러 잠시 나갔을 때도 너무나 화창한 날씨가 좋으면서도 내 처지와 대비되어 괜스레 슬퍼졌다. 대체 언제쯤 이 지겨운 취준을 끝낼까! 나도 얼른 취뽀하고 (아직 없는...) 남자 친구랑 벚꽃 보러 가고 싶다! 예쁘게 꾸미고 사진 찍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수십 번도 더 외쳤다.



카톡을 다 읽고, 답장을 하고 나니 괜스레 눈물이 흘렀다. 그래서 오랜만에 펑펑 울었던 것 같다. 괜찮다고는 했지만, 생일날 시험을 보고 공부한 일이 내심 힘들었나 보다. 작년에 떨어졌던 곳들 중 한 곳에 합격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지금쯤 나도 며칠 전에 학교에서 봤던 사람들처럼 맑은 날 졸업사진을 찍으면서 행복해할 수 있었을까 싶었다.


수많은 이들이 나의 행복과 성공을 짧고 긴 말들로 기원해주었다. 꼭 잘 될 거라며 힘든 시기를 잘 견뎌내길 응원해주었다. 그 말들 속에서 감정이 복받쳤다.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아마 복합적인 감정이 뒤섞였기 때문일 거다. 숱한 탈락 속에서 괜찮다고 잘 버텨왔었는데, 지인들의 애정 어린 위로 속에서 그 감정이 폭발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십여 분을 울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처음 준비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내 능력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나는 잘 될 것이라는 확신. 그리고 조급해하지 않고 여유롭게 준비하자는 마음도 갖고 있었다. 필기의 벽을 생각보다 빨리 허물고 나니 그 확신이 더해졌다. 어? 나 좀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메이저 언론사도 금방 합격했으니까 다음 회사에선 붙겠지?


하지만 이건 경기도 오산이었다! 생각보다 고차의 벽은 더 견고했고 나는 정.말. 많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연달아 붙던 필기도 불성실하게 공부하니 연달아 떨어지기 시작했다. 12월 첫째 주에 하반기 공채 마지막 면접을 보고 난 이후부터 1월 말까지는 처절한 반성과 후회의 시간이었다.


실패의 이유를 찾았다. 처음에는 외부 상황 탓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더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아직 능력이 부족했음을 느꼈다. 스스로 얼마나 오만했었는지 깨달았다. 덕분이 더욱 겸손한 자세로 공부하게 됐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스스로 끊임없이 반성하고 성찰했다.



하지만 그러면서 내 능력에 대한 확신이 부족해졌다. 과연 내가 가고 싶은 회사를 갈 수 있을까. 내가 회사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나를 선택하는 것이라는 교수님의 말씀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공부밖에 없으니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였다.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은 계속 들지만, 따라주지 않는 몸과 해야 하는 수많은 일들이 나를 자꾸 지치게 만들었다.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고 생각했던 공부였는데, 해도 해도 부족한 점들만 자꾸 보이는 것도 한몫했다.



이런 상황에서 위로해주는 수많은 지인들의 말들 때문에 참 많이 울었던 것 같다. 나도 나를 못 믿고 있는데, 오히려 남이 나를 믿어주고 잘될 거라고 응원해주니 그게 고맙기도 하면서 이럴 수밖에 없는 내 상황이 싫기도 했다. 혼자라고 느끼는 순간들이 많았던 요즘인데,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엄청 친했다가 오해로 멀어졌던 친구가 다시 연락이 왔기도 했고, 최근에 또 예민해져서 제일 친한 친구와 마찰이 있을 뻔 했던 일도 한몫했다. 인간관계에 지쳐 스트레스받다가도 또 나를 행복하게 하는 건 결국 사람인 것 같다. 사실 친구 관계도 그렇다. 일대일의 연인 관계가 아니라 다대다의 관계인만큼, 내가 친구에게 있어서 Best가 될 순 없다. 이걸 잘 알면서도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 내가 One of them이라는 걸 인정하기가 싫었나 보다. 내가 아직 미성숙하다고 느낀 게, 친했던 친구 몇에게 축하 연락이 오지 않아 괜히 서운했다. 오히려 그다지 친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이들에게 연락이 와 더 그러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인간관계가 항상 일정할 수 없다. 성인인 만큼 각자의 사정이 있을 테다. 알면서도 그런 생각이 드는 날 보고 아직은 참 미숙하구나 싶었다.



사실 생일이 뭐라고 이렇게 큰 의미부여를 하나 싶기도 했다. 나 역시도 그러하듯 당사자한테나 중요한 날이지, 타인에게는 별 거 아닐 텐데.. 그런 점에서 생일을 축하해준 이들이 더 고맙기도 했다. 시간을 내서 선물을 고르고, 축하 연락을 해주었으니ㅠ.... 주변인들에게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커진 하루였다.


그리고 이렇게 응원받고 있으니까 더 열심히 하고 성공해서 베푸는 사람이 되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 능력에 대한 확신도 조금은 생겼다. 이렇게 감정 동요를 겪고 나니 분명 공부를 좀 더 하고 자려고 했는데 그냥 누워버렸다. 오늘은 충분히 이래도 될 것만 같아서!






이번 주는 공부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글을 쉬어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생일날 받은 감흥이 잊힐 거란 생각에 차마 넘어갈 수 없었다. 글 안 쓰는 시간에 내가 공부를 더 할 것 같지도 않았다^^.. 이 글도 토론에서 탈탈 털리고 멍 때리다가 쓴 것이니 말이다 ㅎ.. 암튼!!! 비록 지인들은 이 글을 못 보겠지만, 정말 주변인들의 크고 작은 관심에 감사하고 있다. 이렇게 나를 애정하고 아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도 힘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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