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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뇨뇨 Jan 18. 2022

처음 그때처럼-기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우연히 기자 준비생이었던 작년 여름께 모 종합지 전환형 인턴 활동을 마무리하며 작성했던 소감문을 발견했다. 처음으로 제대로된 취재를 해보고, 그 내용으로 기사를 썼다. 지면에 내가 직접 취재한 내용이 실렸던 참 소중한 경험이었다. 전형 중에 다른 회사에 합격해 현재는 다른 언론사에 재직하고 있지만 그때의 경험이 참 많은 도움이 됐었다. 어떻게 취재해야 하고, 취재할 때 무엇이 중요한 지를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무섭다고 유명한 선배 밑에서 일하면서 많이 힘들어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더 많이 배웠던 것 같다.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주신 덕분에 그때 배웠던 걸 바탕으로 지금도 일하고 있기에.


글을 읽으며 나태해진 내 모습을 되돌아보고 마음을 다잡았다. 본래 기자의 삶이 하루살이 인생이라곤 하지만, 최근에는 편안하게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열정을 살짝 잃었다. 쉬운 기사만 쓰면서 하루하루를 어떻게 떼울까 고민하기 일쑤였다. 처음의 마음을 잊는 순간이 조금은 이르지만 내게 찾아왔었다. 하지만 이러기 위해서 기자가 된 것은 아니다.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그걸 이루기 위해 다른 직업도 아닌 기자를 택했다.


인생에서 참으로 치열했고 간절했던 시기에 많은 배움을 얻고 난 뒤에 쓴 소감문을 보니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글을 올려본다. 처음 기자의 꿈을 꾸게 됐던 순간을 되새기며.







“얼마 전 지인이 자살했다. 마지막 유언이 뭔지 아나? 상속 포기하라는 거였다. 빚더미 가족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거다. 나 같은 하꼬방(1인) 자영업자였다. 나도 얼마 전 유언장 작성했다. 이게 지금, 우리 소상공인들의 현실이다.”


수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눴지만,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는 한 자영업자의 말이다. 6주간 족히 50명 가까운 자영업자를 만났다. 의도치 않게 이들을 취재할 기회가 많았다. 상점가나 시장을 방문해 직접 상인을 만나기도 했고, 메일을 100통 넘게 보내 연락이 닿은 이들과 전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질문의 요지는 같았다. 정부가 펼치고 있는 각종 코로나19 대책으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를 물었다. 대다수는 탈출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 터널에 갇혀 있었다. 혹자는 대출 이자를 갚지 못해 고금리의 대부업으로 내몰렸고, 혹자는 폐업할 돈도 없어 유지라도 하고자 매일 손님도 없는 가게를 열고 노후 자금을 모두 처분했다.


자영업자의 어려움은 이미 많이 보도됐다. 하지만 현장에서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니 드러나지 않은 문제도 많았다. 피해 업종에게 지원하겠다던 재난지원금은 3차 때는 단순 누락으로, 4차 때는 매출 산정 기준의 허점으로, 5차 때는 현실과 괴리된 업종 코드 기준 때문에 피해 입은 이들에게 지원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했다. 대출 지원도 마찬가지였다. 탁상행정의 가장 큰 피해자는 사회의 약한 고리에 있던 소상공인이었다. “어쩔 수 없다”고 공무원들은 대답했지만 정부 지원 여부는 벼랑 끝에 몰린 소상공인에게는 곧 생존의 문제였다.


가지각색의 사연을 듣다보면 마음이 참 힘들었다. 부모님, 조부모님뻘 되는 이들이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할 때면 도저히 대화를 끊고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그래서 보고 시간을 넘겨 선배한테 혼나는 일도 있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이면 복잡한 마음에 쉽사리 자리를 떠나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어려움을 듣는 일만으로는 부족했다. 아무리 하소연을 들어준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탈출구는 결국 제도였다. 잘못된 정책과 제도를 지적해 그들의 삶이 직접적으로 바뀔 수 있도록 변화를 이끄는 일이 더 중요한 것 같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기자의 보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선배 기자들의 기사로 정책이 바뀌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잘못된 제도가 한 개인의 삶을 얼마나 무너트릴 수 있고, 또 동시에 살릴 수 있는지 사람들을 만나며 배웠다. 아마 인턴을 하지 않았더라면 깨닫지 못했을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인턴 활동은 내게 어떤 기자가 되어야 하는지, 또 기자란 무엇인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주는 과정이었다. 약자의 아픔을 찾아 이를 단순히 공감하는 일을 넘어서 허울 좋은 말들만 내뱉는 정치인들의 정책, 편의만 생각하는 탁상행정을 지적하는 일이 더 중요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철저한 팩트 체크가 필요함도 배웠다. 취재 보고를 하면서 매번 팩트 체크에 신경 쓰는 선배들을 보았다. 취재원의 말이 이해가 안 되어 찾아보니 팩트가 아니어서 기사화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사소한 팩트 하나 놓치지 않는 선배 기자들의 열정과 전문가 의식을 보며 많이 배웠던 것 같다.


항상 누군가의 불행이 당연해지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양한 방법 중 기자가 되어 이러한 일을 수행하고 싶었다. 아직 부족한 언론인 지망생인 내게 이런 기회를 준 ㅇㅇㅇㅇ사에 감사하다. 덕분에 왜 기자라는 직업을 해야 하고, 또 어떤 기자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앞으로의 인생에 있어서 활용할 수 있는 많은 걸 배운 6주였던 것 같다.






얼마   의원실로부터 연락이 왔다. 내가 썼던 기사를 보고 이런 문제가 있었냐면서 정책 조언을 원한다고 했다.  신기했다.  글을 작성할 때만 하더라도 한낱 인턴 기자에 불과했던 나는, 선배들이  기사로 바뀌는 제도를 나도 언젠간 그러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기사를 사람들이 읽고, 분노를 이끌어 내고, 결국  분노가 정치인과 공무원에게 가닿은 것을 보니  뿌듯했다. 자소서를  때마다 분노를 이끌어 변화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썼었다. 그게 바로 내가 기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이기도 했고.


그래서 더 처음 그때의 마음을 잊지 않아야겠다. 더 많은 사회 변화를 일으킬 수 있도록 빈틈을 찾아서 지적하는 기자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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