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례식을 싫어한다. 장례식을 좋아할 이가 누가 있겠느냐만은 삶을 어느 정도 채우고 떠난 노인의 장례식이 아닌,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은 젊디 젊은 청춘이 생을 마감해 치러지는 장례식을 다녀온 후로는 더 그렇다. 자식 잃은 부모의 눈물은 이 세상 그 어떤 눈물보다 가슴이 아프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지난해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을 때 사고 현장에, 환자가 이송된 병원에, 장례가 치러진 빈소에 있었다. 끔찍한 사고 현장보다도, 처음 보는 죽은 이의 모습보다도 더 뇌리에 깊게 박혀 날 힘들게 했던 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이들의 모습이었다.
나와 연관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지만 자식 잃고 목놓아 우는 부모를 보면 정말인지 온몸에 힘이 쭉 빠지면서 나도 모르게 울게 됐다. 정신이 나갈 것처럼 울고 짐승처럼 운다는 게 어떤 건지 그때 처음 깨달았다.
기자로 일하면서, 특히 사회부 사건팀 기자로 일하면서 수많은 죽음을 목격했다고 생각했다. 그래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됐지, 하면서 사람이 죽는 것에 대해 내 스스로 조금은 무뎌졌구나 이제 이전처럼 힘들어하진 않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절대 이건 익숙해질 수도 무뎌질 수도 없는 거였나 보다.
또 허망한 죽음을 목격했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차로 사람을 치고 칼로 사람을 찔러 2명이 죽고 여러 명이 다쳤다. 죽은 이유도 없었다. 그저 그 시간에 그 공간에 있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죽었다 그들은.
사고가 터지고 현장에 달려가 취재를 했다. 너무 끔찍하고 잔인한 일이었지만 내 일이기에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믿었다.
그때 한 중년의 남녀를 봤다. 전화를 받고 그 자리에서 쓰러져 오열했다. 여자는 믿을 수 없는 듯 정신을 놓았고 남자는 그런 여자를 겨우 달래며 부축해 끌고 나갔다. 아직도 나는 그 장면이 생생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극도로 고통받는 사람의 표정은 이런 거구나 알 수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나는 차마 말을 더 걸 수도 그들을 따라갈 수도 없었다. 내 일을 제대로 못했다는 것에 대한 실망감보단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아픔을 겪었을 이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컸다. 인간으로서 그들의 고통에 공감한다면 난 더 무언갈 할 수 없었다.
어찌어찌 시간이 흘러 모든 게 희미해졌을 때쯤 피해자가 사망했다는 속보가 나왔다. 아, 잔인한 세상아. 기사를 보는 순간 생때같은 자식이 다쳐서 뇌사 상태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소식을 들은 그 부모의 표정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잊고 있던 자식 잃은 부모의 울음소리와 표정이 떠올랐다. 그때 그 빈소의 공기까지도 생생히 기억나버렸다.
아 이 잔인한 세상아. 하늘도 무심하시지. 정말 어째서.. 오늘 같은 날이면 신을 원망하게 된다. 도대체 왜 이들에겐 저렇게 잔인한 운명이 주어진 건지. 대체 왜. 그리고 누군가의 평범하지만 행복했던 삶을 망쳐놓은 이들은 왜 그런 짓을 한 걸지. 왜 매번 이런 비극이 반복되는 건지.
슬픔은 곧 분노로 바뀌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무언지 되새기게 하며 해이해졌던 마음을 다시금 다잡게 한다. 누군가의 슬픔이 당연해지지 않는 사회가 되도록 또 그 슬픔이 잦아지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방식이 무엇이 됐든 더 이상 누군가의 허망한 죽음이, 그로 인한 슬픔이 생기지 않도록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겠다.
그게 내가 이름도 알 수 없는 그들의 슬픔을 지켜본 대가를 치르면서 슬픔에 공감하는 방법이지 않을까.
서현역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