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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퉁퉁증 May 12. 2022

일본에서 만난 대구 출신 룸메 동생을 찾습니다

보고 싶은 O윤아! 지금 어디 있니

대구에서 온 단발머리가 귀여운 동생,

2009년 10월에 일본에서 만난 조O윤을 찾아요

 



대학을 휴학하고 1년 동안의 일본 생활이 시작되었다. 학교는 수업 시수가 긴 전문학교였고 일본 학생들도 다니고 고등학생들의 예비교(입시 학원)를 겸하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레오팔레스라는 부동산 임대업체의 방을 여러 개 빌려 2인 1실의 기숙사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빌려주었다. 나도 이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되었고 여기서 O윤을 만났다.


일본으로 출발하기  인터넷 카페에서 학교 정보를 찾아보다 쪽지를 주고받은 학생이 있었는데, 그게 O윤이었고 신기하게도 룸메이트가 되었다.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기숙사에서 처음 만난 날이 생생하다. 나는 첫날부터 알고 지내던 일본인 친구를 만나러 나갔고 저녁 무렵에야 O윤을 만나 동네 구경을 하고 백엔샵에 가서 그릇 몇 가지를 사서 돌아왔다. 주방과 방이 나누어져 있었고 방은 복층 구조인 그 집에서 나는 일층을, O윤이는 복층으로 자리를 잡았다. 한 살 차이인 우리는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나와달리 O윤은 일본에서 대학을 가기 위해 왔다. 그만큼 나보다는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같이 핸드폰을 개통하러 갔을 때 O윤은 만 나이로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내 이름으로 2대를 개통을 했다. (몇 달 후 O윤의 생일에 명의변경을 했다.) 그때 내 딴에는 한 살 차이지만 왠지 O윤을 더 챙겨야 할 것 같았다. 평일 저녁에는 편의점을 털어 주전부리를 삼아 tv를 보며 같이 떠들었고 주말엔 같이 놀러 다녔다.


그러나 곧 나의 혼자만의 출타가 잦아졌다. 내향적인 성격이지만 쉬운 기회가 아닌 만큼 일본을 만끽하고 싶었다. 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내 성격이 많이 바뀌게 된 것도 이때였다. 사람을 만나러 나갔고 뭔가 재밌는 게 없을지 어딘가에 기회는 없는지 찾으러 다녔다. 아르바이트도 바로 구했다. 그만큼 O윤은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나보다 더 내향적인 O윤은 밖으로 나갈 때까지 시간과 자신감이 필요한 듯 보였다.


5개월이 지날 무렵 저렴하게 혼자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기숙사를 나왔고 O윤에게는 새로운 룸메가 생겼다. 그 전만큼은 아니었지만 O윤과는 여전히 시간을 맞춰 놀러 다녔다. 1년은 짧았고 나는 먼저 돌아가야 할 시기가 되었다. 귀국 전날 O윤과는 역시나 내가 좋아하던 요코하마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고, 일 년 동안 나에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꺼내놨다. 자신이 어떻게 일본에 오게 되었고 여기에서 대학 가려는 이유와 가족들과의 관계, 쉽지 않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후에 O윤은 도쿄의 여대에 입학했고 나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했으며, O윤은 학비를 벌겠다며 휴학을 하고 한국에 돌아왔다. 오묘하게도 나는 다시 일본으로 가게 되었다. 내가 다시 일본에 갔을 무렵까지만 해도 O윤과는 연락을 주고받았다. 다시 와서 집 구할 때까지 만이라도 우리 집에 있으라고도 얘기해 주었는데, 그렇게 마지막이었다. 


O윤의 성격을 봤을 때 연락이 끊긴 이유는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일방적으로 끊긴 연락처는 찾을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언젠가 연락이 오지 않을까 하고 기다렸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사는 지역도, 공통적으로 아는 사람도 없어 수소문도 불가능했다. 혹시 있을까 하고 페이스북을 몇 번이나 찾아봤지만 헛수고였다. 찾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가끔 O윤이 생각나고 보고 싶다.





O윤아 그거 아니?

내 인생에서 가장 보고 싶고 궁금한 사람을 뽑으라면 바로 너야.

너에 대한 이야기를 쓰며 기억을 더듬으니 잊고 있었던 추억들이 떠오른다. 같이 살았던 레오팔레스와 학교까지 걸어가던 지하상가, 파칭코 소리가 울리던 상점가가 생각나. 우연히 동네를 걷다가 큰 마트를 발견하고 거기에 자주 갔던 것도 떠올랐어. 편의점에서 저녁마다 간식을 사다 먹던 것도 참 재미있었는데..


니가 잠깐 귀국했을 때 너를 만나러 처음으로 대구에 갔었잖아. 그때 참 반가웠는데 생각해보면 너를 본 게 그때가 마지막이었더라. 10년이 지났는데 너는 어떤 모습일까. 아직도 귀여운 단발머리 그대로일까. 얼마 전에 파일을 정리하다 그 시절 사진이 잔뜩 나왔는데 그때는 나도 어려서 몰랐는데 너 정말 귀여웠더라.


언젠가 널 만나면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어. 내가 한국에 돌아오기 전날 너의 이야기를 해줬잖아. 그때 내가 힘든 얘기 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못 했던 것 같아. 그때는 나도 애기였다는 걸 이해해줘. ㅎㅎ 그리고 너의 이야기를 몰라 같이 지내면서 알게 모르게 상처를 준 건 아닌지도 묻고 싶어.


우리 다이칸야마 놀러 갔다가 2천 엔하는 밥값에 놀라 동네로 돌아왔던 거 기억하니? 밥때를 한참이나 지나서야 카츠동 한 그릇을 먹었는데, 그때는 환율까지 높아서 한 끼에 2천 엔이 얼마나 크게 느껴졌던지. 지금 다시 만나면 그거보다 훨씬 비싼 것도 사줄 수 있는데.


나만 사투리를 쓰는 것 같다며 귀여운 소리를 하고, 언니가 제일 예쁜 것 같다며 말도 안 되는 칭찬도 해줬지.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소식을 듣고 대성통곡하던 나를 위로해줬고. 이런 걸 추억 보정이라고 하나? 같이 지내면서 불편했던 기억은 잘 떠오르지 않네.


이 글이 너에게 닿을까?

잘 모르겠다.

그래도 너의 자리에서 행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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