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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수유 Aug 30. 2022

지리산에서

계절이 흘러간다


겨울 봄 여름 다시 가을, 시골의 삶은 연속된다

 나는 시골에서 5년을 살았다. 아버지가 일하던 곳의 사택에 불이 난 뒤로 언니와 나는 시골 할머니 댁으로 보내졌다. 할머니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할머니였다. 머리가 온통 새하얗고 머리 뒤로 비녀를 꽂아 넘긴 채 주름이 없는 곳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이마, 볼, 손등, 발목까지 주름이 가득한 할머니였다. 아빠는 6남매 중 다섯 번째였다. 우리를 몸도 성치 않은 할머니께 맡긴다는 소식을 들은 친척들의 성화가 빗발쳤지만, 할머니는 우리를 맡아 주셨다. 하루 버스가 한 대 다녔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게 영화 <집으로>는 현실이었기에 보면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언니와 할머니 몰래 아빠가 주신 돈으로 초코파이 하나를 사서 백과사전 위에 칼로 똑같이 반씩 잘라 나누어 먹었었다. 사택이 불타기 전 어린이집이 끝나고 집에 가면 외할머니가 준비해주신 소시지 하나와 우산 초콜릿을 먹곤 했는데, 친할머니가 계신 시골은 그런 걸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마트도 마을 이장님이 운영(?) 하시는 집에서 파는 과자 몇 봉이 전부였다. 장날에 할아버지와 한 시간씩 자전거를 끌고 나가면 그때 예쁜 캐릭터 운동화도 샀다. 그런 시골에서 보낸 시간이 5살 때부터 5년 정도다. 그런데 그 시간이 왜 불혹을 앞둔 나이가 되도록 왜 내 삶의 질기고 단단한 뿌리와도 같은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그때 치열한 삶 같은 것에서 자유로히, 나는 어렸고 하루가 즐거운 바가지 머리의 어린아이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어쩔 수 없이 이곳을 찾아 들어온 것이 내 삶의 연속인 것 같다고 생각이 든다. 꼭 이야기가 안 풀릴 때마다 주인공이 자신의 뿌리를 훑어 나가듯이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 왔다. 할머니 산소가 묻힌 상주는 아니다. 나는 지리산을 선택했고 이곳에서 어찌 됐든 사계절은 지내보자고 다짐했다.



지리산에서 

시골살이 로망현실이 되기까지순간이었다. 남편의 반대를 무릅쓰고 주말부부에 두 아이까지 끌고 내려왔으니 적응하기까지 녹록지는 않았던 거 같다. 그래도 겨울, 봄, 여름을 지나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이곳에서 6개월이 지났다. 의미 짓기 나름이겠지만, 이 삶은 내게 큰 변화이자 시도였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에 밤이 되면 끝없는 어두움이 당도하는 곳. 그곳에서 나는 무엇을 찾으려고 했을까. 나는 칠흑같이 어두운 이곳에서 마음 깊숙이 허기진 무엇을 채우려 했기에 이곳까지 찾아들어 왔을까. 지난 계절 동안 내게 문득 그런 질문들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여려 풋이 알 것도 같다. 이런 시간이 내 삶에 필요했다고,  잠시라도 마주하며 그곳을 회상할 시간이 필요했다고. 그간 너무 쏜살같이 달려온 것만 같다고. 그런 목소리가 저 깊숙이에서 조금씩 터져 오르고 있었다. 앞으로 남은 계절을 살며 나는 이곳 지리산에서, 라는 타이틀로 여러 이야기들을 써내려 갈 것 같다. 지리산은 멀리 보면 아름답다거나 부드러운 느낌의 산이 아니다. 때로는 벽 같기도 하고 아득히 먼 산 같기도 하다. 그곳에서 나는 굳이 답을 구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스미어 들 것이다. 누구나의 삶과 이야기, 그중에 소소한 이야기들로 조금씩 이 공간을 채워나갈 것이다. 그렇게 나는 이곳에서 벽을 허물고 보고 또 볼 것이다. 그런 다짐들이 남았다.


"그렇다고 네가 밭을 매고 농사짓는 시골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야. 나 역시 더 큰 도시, 더 시끄러운 시장, 그 번잡 속에서 소리치며 살아가는 문명의 아이로 키우고 싶었지. 다만 아주 잠시라도 좋으니 네가 철들기 전에 아무런 선입견 없이 네 부모가 자랐던 곳을 보여주고 싶었다. 작가 이상이 말한 것처럼 시골 풍경은 어디를 봐도 초록빛 일색이다. 도시 사람들 눈에는 권태롭고 심심해 보여. 그 초록색마저 밤이 되면 검은색 어둠으로 변해. 이따금 별빛이 보여도 그것은 가로등과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휘황한 서울의 야경과는 견줄 수가 없는 거야.

하지만 시골의 밤길을 걸어보지 못한 사람은 평생 자연이 무엇인지, 생명이 무엇인지를 잘 이해할 수 없을 거야. 나 홀로 새까만 어둠 속을 걷는데 먼 데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 다듬이 소리도. 그것이 얼마나 안도와 위안을 주었는지 모른다. 그래,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밤이 무엇인지를 몰라. 불야성(不夜成)이란 말처럼 밤을 없애야 우리는 그것을 도시라고 불러. 불타는 소돔의 성 도시를 잠시라도 빠져나와 어쩌다 작은 불빛이 새어 나오는 오두막집이라도 발견하면 사람이 얼마나 그립고 소중한지 알게 돼. 사람이 도리어 무서운 존재로 여겨지는 아스팔트의 밤길에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것이지.
나는 너에게 가난하지만 수백 년, 수천 년간 변함없이 살았던 너의 조상과 이웃들의 모습을 주석 없이 그대로 보고 듣기를 원했던 거지. 그래서 너의 손을 잡고 조금 불편하거나 참기 어려운 경우가 있어도 눈 딱 감고 그 여행길에 오르게 된 거란다."
​딸에게 보내는 굿 나이트 키스 | 이어령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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