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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eak Nov 29. 2024

타 지역 발령으로 친구를 떠나보내며

일상 속으로

 2년 전 이 즈음이었다. 간혹 소식을 듣던 대학교 친구가 대구로 발령이 나서 근무하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일찍 결혼하고 서울에 터를 잡고 생활하면서 부모님들도 모시고 올라가 근거리에 같이 살면서 대구를 내려올 일이 없어져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살던 친구였다. 4-5년 전인가 큰 행사에서 한 번 본 것을 제외하면 오랜만에 만남이었고 근무하는 곳도 집과 가까워 자주 만나며 지냈다. 가족들은 수도권에 남겨두고 혼자 생활을 해서 휴일을 맞아 집에 올라갈 때를 제외하고는 시간이 많아 자주 만나게 되었다. 백화점에 근무하는 터라 휴일이 들쑥날쑥하여 주말을 같이 보내지는 못했지만, 날을 맞춰 등산도 하고 바다낚시도 떠나며 친구가 외롭지 않게 신경을 쓰곤 했다. 5명이 간혹 대화를 나누던 채팅방은 어느새 9명이 되었고 하루하루 다양한 주제와 넋두리로 알림음이 조용할 날이 없었다.


20년이 만들어 놓은 간극

 사람들은 생각과 행동이 다르다. 이제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살아오다 보니 타인을 바라보는 관점과 시각도 다양해지고 어떻게 보면 무던해지기도 했다. 그런 무던함의 가장 끝에 있는 친구가 바로 나였다. 오래된 친구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과 가치관이 달라지고, 이런저런 작은 오해들이 쌓이면 만나기가 불편해졌다. 30대만 하더라도 오해보다 즐거움이 컸고, 작은 오해 정도는 앉고 가는 것이 진정한 우정이라 생각해서 오해를 풀기보다는 외면하거나 묻어두고 사는 것을 택했다. 하지만, 묵혀놨던 오해들은 삭아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차곡차곡 쌓인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인간관계에 무던한 혹은 인간관계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으로 변해갔다. 모든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이 변했다기보다는 전략적으로 에너지를 함께 나눌 사람을 나눠서 살아온 것이다. 이런 나의 삶에 20년이 넘게 간간이 소식을 전하던 친구가 같은 인간관계 속으로 들어와 작은 파장을 일으키게 되었다.

 처음에는 오랜만에 만난 기쁨으로 몇 개월을 수시로 만나며 20년이란 간극을 메워 나가며 비어있던 시간들을 채워 나갔다. 대화를 하면서 그 시절의 동질감으로 기쁨을 느끼곤 했지만, 20년이란 세월 동안 만들어진 다름이란 모습은 가끔 우리들을 멋쩍게 만들었다. 9명이 있는 채팅방 친구들 중에서 어쩌면 친구라는 주제에서 그 친구와 나는 양 극단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적당한 거리와 정서적 거리가 있는 친구관계를 원하는 반면, 그 녀석은 친구면 많은 부분을 같이하고 배려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나는 나랑 뭔가가 안 맞는 친구들은 잘 만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불편함이 있는 것은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작은 오해들로 가끔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풀리지 못한 오해는 맘속에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냥 혼자 술을 마시거나, 가까운 곳에 있는 친구들과 갑자기 연락해서 한 잔씩 하곤 했는데, 따로 자기들끼리 논다는 인식을 심어줬는지 이런 행동에 기분 나빠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9명이 있는 채팅방에서 서너 명이 만나면 채팅방에 그 사실을 알리거나 전화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친구들도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걸로 삐치거나 하지도 않는다.


나의 삶이 만들어 놓은 간극

 사춘기를 지나면서 사람은 자기만의 정체성을 가지게 되고 독립적인 존재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한다. 그전까지 살아온 길과 앞으로 살아갈 길이 합쳐져 그 사람의 정체성이 된다고 한다. 그렇게 친구들이 많던 청소년기를 지나고 중장년기로 들어서면 친구들이 점점 사라진다고 한다. 나 역시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을 만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살고 있지만, 예전같이 열정적인 인간관계를 하진 않는다. 이제 열정이 사라진 것이다. 작은 오해에도 힘들어하고, 불필요하다 생각하는 갈등을 바라보고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렇게 하나 둘 관계들이 멀어지고 어느샌가 그런 관계를 청산하기도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렇게 관계가 점점 축소되는 것은 나의 에너지(열정)와 관계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는 과도한 넋두리나 오해들로 나의 에너지를 소비할 만큼 나에게 에너지가 많지 않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차라리 노년이 되어 복잡한 판단이 흐려지고 감각이 둔화되면 작은 오해도 느끼지 못하고, 에너지가 부족해서 관계에서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며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도 없어지면 오히려 편해질지도 모르겠다. 중장년이란 것은 청소년기처럼 예민하지만 넘치는 에너지로 오해를 극복하고 관계를 이어가지도 못하고, 노년처럼 관계에 둔감해지고 얍삽해지지도 못해 갈등이 일어나지 않는 시기도 아닌 어중간한 시기이다.


멀어지면 보이는 것들

이제 또 친구가 떠난 지 시간이 지나고 나니, 티격태격 다퉜던 기억보다 좋은 기억이 더 남는다. 친구가 근무하는 백화점 앞을 지날 때, 그와 함께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셔대던 술집에서 잔을 기울일 때 불현듯 생각이 올라온다. 그래도 다행이다. 친구가 떠났는데 시원함만 남아 있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도 그럴 것이다. 헤어짐의 시원 섭섭함이 공존하는 이 기분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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