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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경 Nov 16. 2023

응급

가짜 환자는 있어도 가짜 기도는 없다

한 밤중부터 새벽까지 응급실에 있다 보면 조용하고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와 촌각을 다투는 급박한 상황이 오락가락하는 걸 알 수 있다. 진짜 응급과 가짜 응급도 보이는데 말이 많고 연신 의료진을 찾으면서 요구가 많으면 거의 가짜일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진짜 응급에는 의사들이 먼저 긴박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성인이 된 아들 보호자로 처음 응급실을 찾았을 땐 내 아들이 제일 응급 같았다. 다른 환자들 사정이 보이지도 않았을뿐더러 보여도 내 아들을 보러 오는 의사만 눈에 들어왔기 때문에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서성대며 의사 얼굴만 쫓았다. 당시 군입대를 앞두고 있어 나는 벌써 한참을 생각이 앞질렀다. 진짜 아픈 아들을 꾀병이라고 오해해 두들겨 패는 장면, 아픈 걸 참다 참다 중환자가 되어 누워있는 모습, 아픈 걸 말도 못 하고 우는 아들 모습이 상상되어 머릿속에선 벌써 영화 한 편을 다 찍어버릴 정도였다. 불안한 중에 앞 침대 아주머니는 계속 고래고래 의사를 부른다. 냄새만 아니었으면 딱 중한 상태 같아 속았을 것이다. 조금만 내 몸을 그쪽으로 돌려도 술냄새가 진동을 했다. 우리 아버지가 여기서 돌아가셔서 난 여기가 싫다( 왜 왔어 그럼), 왜 나를 못 나가게 하느냐(자기가 왔잖아), 담배만 피고 오는 것도 안 되냐(응급실이잖아), 집에 보내달라(오질 말지) 횡설수설 딱 머리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염려스러웠다. 링거를 빼려 해 간호사 분과 실랑이를 하면서도 의사 데려오라 난리를 친다. 수시로 똑같은 말을 화 한 번 안 내고 반복하는 의료진이 새삼 대단해 보였다. 무엇을 원하시냐, 머리가 아프시다고 해서 확인을 원하셨으니 검사 결과는 보셔야 할 거 아니냐, 그냥 가시고 싶으시면 서류에 사인을 하시고 나가셔야 한다 몇 시간을 높낮이 없는 말투로 설명하는데 존경스러웠다. 그날만 그런 분이 들어오신 줄 알았다. 하지만 웬걸, 응급실을 갈 때마다 술에 취한 가짜 환자가 꼭 한 명씩 있다. 술기운 때문인지 체력도 좋아서 술이 깰 때까지 소리 지르고 울고 막말을 해댄다.

8년째 다니는 응급실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술에 취한 가짜 응급 환자는 계속 소리를 질러대며 의사를 찾는다. 너무 발음이 꼬여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보호자로 함께 있는 남자분이 이상하다. 남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격식을 차리는 것 같고 친구라고 하기에는 친근함이 느껴지질 않는다. 사연인즉 술집에서 처음 만나 술을 마신 사인데 집에도 못 가고 보호자로 붙들려 진짜 보호자가 오기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여자와 술을 마실 땐 기분이 좋았을 텐데 술이 확 깨셨나 전혀 술 드신 분 같지 않았다. 이 남자분 재수가 없었다고 하려나, 웃기지만 응급실에는 진짜 술 취한 분들이 많이 온다. 그것도 그날 처음 만난 사이로 오시는 분들인데 이상하게 꼭 남녀다.

한 눈에도 딱 진짜 응급임을 알 수 있었다.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 피를 잔뜩 묻히고 한 손으론 옆구리를 부여잡고 걸어 들어온다. 길을 걷는데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찌르고 도망갔단다. 의료진들이 일사불란하다. 딱히 누가 뭐라고 지시 사항을 말하는 거 같지도 않은데 누구는 경찰에 신고하고 누구는 링거 꽂고 누구는 질문을 하면서 답을 적고 누구는 검사를 준비한다. 진짜 응급실 풍경은 이거구나 싶었다. 금세 경찰들이 오고 학생은 빠르게 응급처치가 이뤄졌다. 뉴스에만 나오던 묻지만 범죄를 직접 보다니 내 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실감이 났다.

외국인 근로자가 휠체어에 앉아 들어온다. 한국 사람은 직장 상사이거나 관리자일 것이다. 그런데 하반신을 전혀 쓰지 못한다. 어쩌다 저렇게 되었을까. 희망을 안고 온 한국행이었을 텐데 괜스레 한국사람인 내가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들으려 해서가 아니라 옆 침대에 누운 상황이라 커튼을 쳐도 소리가 들렸다. 하반신 마비인 건장한 성인 남자를 간호사 몇 분이 인상 한 번 쓰지 않고 후딱 기저귀를 갈아준다. 들리는 말로는 동행하는 사람이 없어 출국 거부를 당했고 있을 곳이 없으니 병원에 입원을 시키겠단다. 의사는 병원이 숙소는 아니니 다른 곳을 알아보시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틈새로 보이는 외국인 얼굴을 보니 모든 근심을 가득 안은 표정이다. 얼마나 비참할까. 굉장히 젊어 보이는데 그 와중에 너무나도 건강해 보이는 체격이 더 슬퍼 마음이 아팠다. 울아들보다 많아야 몇 살 더 안 많을 것 같은데 저분 어머니 마음이 어떨지 절로 한숨이 나온다.

12시에 들어간 응급실에서 아침을 맞이할 때까지 수많은 환자들이 오고 갔다. 그저 가만히 누워 링거를 맞고 있는 아들은 가짜일까 진짜일까. 생사 문제가 걸려 급하게 처치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은 아니니 가짜일까, 응급실이 아니면 증상을 호전시킬 방법이 없으니 진짜일까. 그런데 어떤 이유건간에 응급실을 찾는 사람들은 가짜일 수가 없다. 술에 취해서건 조금 아파서 건 당사자는 응급실을 찾을 만한 간절한 이유로 다른 곳이 아닌 응급실을 왔을 것이다. 그리고 이 수많은 환자들의 어머니들은 자식이 응급실을 찾은 그 자체가 응급이다. 자식이 응급실에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간절한 기도를 할 것이란 걸 안다. 어머니는 그런 사람이니까. 꾀병을 부려도 내 새끼를 진짜 걱정하는 단 한 사람이 엄마니까.

어릴 때 다니던 성당을 몇 십 년 만에 가보았다. 하얀 얼굴이었던 성모님 피부가 구릿빛이다. 청동상으로 바뀐 것이다. 더 친근하고 가깝게 느껴지는   피부색 때문만아닌 것 같았다. 기도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나이가 되었나 보다. 성모님을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이렇게 작았었나. 성모님을 안아주고 싶다. 어떻게 아들의 고통을 바라보셨을까, 어찌 견디셨을까. 절대 가짜가 없을 어미의 마음은 이제나 저제나 기도하는 마음뿐이다. 두 손을 모으고 계신 저 작은 분을 따라 나도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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