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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경 Feb 10. 2024

당신을 응원합니다

오늘 하루도 잘 살아내셨습니다


새벽 3시. 야반도주를 했다. 행복했던 집에서 도둑고양이처럼 몰래 빠져 나오던 그 길을 매번 꿈 속에서 헤맨다.   


IMF로 많은 회사가 문을 닫았고 대기업 부도는 그 하청업자들의 연쇄부도로 이어졌다. 물품 대금은 한낱 휴지 조각에 불과했고 평생을 바친 회사 역시 부도처리됐다. 개인의 의지와는 별개로 인생이 뭉뚱그려 잘려 나갔고 계속 계속해서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IMF는 아버지를 기소중지자로, 아버지 사업에 연대보증을 선 나는 신용불량자로, 아버지 사업에 동네 돈을 빌리고 갚지 못한 엄마는 도망자로 주홍글씨를 새겨놓았다.


이른 새벽 도착한 곳에는 광활한 논을 배경으로 덜렁 창문 하나가 달린 컨테이너 박스가  있었다. 벽돌공장의 숙소로 쓰이던 컨테이너는 예전에 아버지에게 도움을 받았던 분이 쓰라고 내 준 곳이다. 문을 열면 부엌으로 쓸 수 있는 꽁꽁 언 수도가 달린 작은 공간과 한 턱을 높여 만든 방이 있는데 방이라고 해야 밖과 다르지 않았다. 이불을 꼬치처럼 둘둘 말아 몸 전체를 아무리 숨겨도 기어코 속으로 속으로 들어오는 추위에 몸서리가 처진다. 밤마다 들려오는 귀신같은 바람 소리는 눈물을 감추기에 충분했다. 왜 그렇게 오줌은 자주 마려운지. 둘둘 만 이불을 힘겹게 떨치고 일어나면 칠흑같은 어둠 속을 후레쉬 하나에 의지한 채 미끄러운 길을 더듬더듬 기어간다. 화장실 안에서도 초긴장이다. 자칫 잘못했다간 똥통에 빠지기 십상이다. 바람에 무방비로 까진 엉덩이가 째질 듯 따갑고 아파도 그 짧은 사이 쭈그려 앉으면 별의별 생각이 다 난다. 가난을 두려워 해 본 적이 없었다. 질병, 사고, 실패, 죽음, 가난 등을 책으로 읽고 드라마로 감상했으니 두려워 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현명하고 멋진 나의 모습은 그저 상상이었다.


“ 내…가 낸 세…금이 얼만데…내….가…일해서 돈을 벌면….지들이 얼마를…가져갔는데….”


아버지가 쌓은 신용과 성실하게 낸 세금, 만약을 대비한 보험은 망하니 다 무용지물이었다. 아버지는 빠르게 술에 잠식되었고 점점 미쳐가는 것 같았다. 아무나 붙들고 술을 마시자며 매달렸다. 아무데서나 술을 들고 나와 아무데서나 술을 마시고 아무데서나 쓰러졌다. 아버지가 그러면 그럴수록 엄마는 쫒겨나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공장 사람들 밥을 해대고 커피를 타주고 온갖 궂은 일들을 쉬지 않고 했다. 터져가는 손으로 얼음장 같은 물에 빨래를 하면 금방 모양대로 빨래는 뻣뻣하게 언다. 한겨울에 녹았다 얼었다를 반복한 마른 빨래는 엄마가 견뎌 낸 고통이다. 하루종일 비척대며 흰소리를 해대는 아버지에게 어려울 때 신세 져 고맙다던 공장사장은 슬슬 본색을 드러냈다.


하지만 두 분이 들고 나온 건 달랑 3백만원이 다였다. 무일푼의 아버지.수없이 많은 선택과 의지가 만들어낸 결과가 삶이라면 아마도 분명 그때 아버지의 선택은 나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흔히 사람들은 견딜 수 있을 만큼 시련을 준다고 말하지만 아니다. 견디기 때문에 그만큼의 시련을 느끼는 것이다. 그 시련에 무너지지 않아야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끝까지 살아낸 아버지를 진심으로 한 번쯤은 제대로 응원하고 싶었다. 아무도 모르는 아버지의 지난 인생을 누군가 인정해줘야 한다면 그건 바로 나여야 하니까. 이리저리 들락날락 대던 나의 마음 때문에 항상 서성였을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처음 태어났고 처음 부모가 되어보고 처음 인생을 살아본건데. 모든 잘못도 후회도 들었다면 이미 지난 후에나 들었을텐데 그땐 몰랐다. 표현하지 않은 감정은 절대 죽지 않는단다. 죽지 않던 내 감정은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귀에 대고 속삭인 말로 비로소 가라앉았다.


“ 아버지, 잘 살아 내셨어요. 정말 잘 사셨어요. 저도 아버지처럼 잘 살아낼게요. 감사해요. 아버지가 잘 버텨주셔서 저도 버틸 수 있었어요.”


아무도 모르게 도망쳐 나온 그 길을 하염없이 헤매던 꿈을 나는 이제 더 이상 꾸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잘버티고 잘 살아 낼 것이다.



 <당신을 응원합니다>라는 꽃말을 가진 꽃 프리지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일상은 개개인의 사건이나 슬픔, 우울을 외면한 채 여전히 언제나 그렇게 돌아간다. 모든 것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삶을 당신의 감정을 당신의 생각을 당신의 노력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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