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윤경 Jan 28. 2024

빈 의자

아버지의 의자

캔디였던가, 베르사유의 장미였던가 어릴 때 신나게 베껴 그리던 만화책이 있었다. 장미 숲이 항상 뒷배경으로 화려하게 등장했었는데 그땐 예뻐서 그런 줄만 알았다. 찬란한 5월의 장미 울타리를 보고 내가 눈물을 흘리기 전까지는.

자기 성찰은 관계라는 거울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관계가 그리 돈독하거나 살뜰하지 않았는데도 왜 나는 병든 아버지에게 그리 헌신적이 되었던 걸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장미를 그려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장미가 활짝 피는 5월은 아버지 생신이 있는 달이다. 그래서 장미가 피면 모두들 아버지 생신이 이맘때쯤이라고 말하곤 한다. 아버지가 가꾸던 화단 울타리에도 장미가 한가득 펴 장미를 뒷배경으로 빨간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나를 기다리던 아버지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그 모습을 눈을 감고 떠올린다.

데생으로 완성하려고 연필을 꺼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의미 있게 담고 싶었고 이미 이 세상 분이 아님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에 색을 입히지 않으려고 했다. 색상이나 채도를 가지지 않는 회색의 단계로만 표현하기에는 연필이 최고다.물감은 검정과 흰색을 섞거나 초록색 + 빨간색 or 보라색 + 노란색 or 파란색 + 주황색 을 같은 비율로 섞으면 회색이 나온다. 물론 수채화는 물로만 조절할 수도 있지만 섞이는 과정에서 왠지 오염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연필 하나만으로 강약을 조절하면서 내 마음도 함께 조절하기로 한다. 기다랗게 심을 깎아놓은 연필을 가지런히 옆에 놓고 의자에 앉았다. 데생을 좋아하는 이유는 마주함이다. 이젤에 종이를 덮고 마주하면 마치 대화를 하려고 앉은 기분이다. 눈 맞춤을 하고 이렇게 그리는 게 좋아 저렇게 그리는 게 좋아 소통하는 느낌. 머릿속 장미 숲을 보이는 대로 스케치하기 시작한다. 깊고 서늘한 그늘이 만들어질 정도의 장미가 보인다. 꽃은 작은 송이가 아니다. 큼지막한 빨간 장미 꽃들이 피어있는 그 꽃그늘 아래 아버지가 앉아 계신다. 나를 보고 웃는다. 잔잔한 미소로 기다렸노라 말씀하시는 것 같다. 다 커서 결혼까지 한 딸이 지극정성 아버지에게 올인한 것은 효도만으로 설명하긴 마땅치 않다. 아버지와 나의 관계를 설명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회색 단계를 선택했다. 추상적인 의미다. 종이 자체로 비워두는 흰색은 영적인, 슬픔, 공허함을 나타내고 연필 선이 덧 대 진해질수록 점차 단계별 그라데이션이 나타나면서 더 이상 칠하지 못하는 진함까지 연필선을 힘 있게 누를 생각이었다. 아무리 힘을 줘도 연필로는 물감처럼 검은색을 표현하기는 힘든데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연필을 택했다. 검정으로 끝내기는 싫었다. 이 그림은 살아있는 나의 감정을 달래는 의식이 될 테니까 말이다. 장미가 조금씩 피어난다. 장미꽃이 많이 피어날수록 나는 더 많은 생각을 떠올린다. 생각났다. 한 장면에 멈춘다.

그림을 그리던 어린 나를 보고 아버지는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우리 형이 화가였어. 그림을 정말 잘 그렸지. 네가 우리 형을 닮았어. 아버지의 그 눈빛, 그 표정이 오래오래 나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으로 행복하게 만들어 줬다. 하지만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사는 게 힘들어 그림을 포기했다고 안타까워하셨다. 그리도 자랑스럽던 딸이 당신 때문에 그림을 포기했다고 내내 미안해하셨다. 장미는 예쁜 꽃만 피는 것이 아니라 뾰족한 가시도 많다. 장미를 만지려면 조심조심 살살 다뤄야지만 가시에 찔리지 않는다. 나는 아버지의 장미에 가시를 그리지 않았다. 상처를 치유해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색으로 나의 우울을 달래려던 마음을 바꾸어 화려하고 찬란한 빨간 장미로 과감하게 색을 덮었다. 아버지가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내게 사랑하는 마음을 남기고 가신 아버지를 사랑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상처를 주는 가시가 없는 빨간 장미 아래에 아버지가 항상 앉아서 나를 기다리던 빨간 플라스틱 빈 의자를 그려 넣었다. 나는 조용히 말한다. 아버지 이 의자에 앉아서 조금만 기다리세요. 우리 나중에 만나요. 아버지가 아프신 동안 저는 아버지를 보며 세상을 배웠어요.  


찬란한 5월 크고 탐스럽게 피는 장미꽃을 보면 아버지 생각이 난다. 나는 이 장미꽃을 그림으로써 나만의 의식을 치렀다. 긴 시간 삶과 죽음 사이에서 의연함을 보여주던 나의 아버지. 그 자체로 가장 든든한 아버지의 모습은 나를 지켜주던 울타리였다. 나의 남은 시간도 그렇게 보내리라 늘 생각할 정도로 평온했던 아버지가 앞으로도 나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행복 기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