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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지영 Feb 08. 2024

교사는 '무 한 개'도 돌려보내는데...

어느 '고위 공무원' 부인의 명품백 논란을 보며

루카치는 별빛이 길의 지도가 되던 시절이 행복했다고 추억했다. 의심할 여지없이 교사의 양심이 사도의 기준이 되던 시대도 행복했다. 어느 조직이나 기준에서 벗어난 이탈자가 있기는 했지만 교사는 대체로 양심적이었고 대체로 청렴했으며 사랑으로 교육했다. 그것은 교사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기도 했다. 비양심적이고 부패하며 학생을 사랑으로 대하지 않으면 나 자신이 초라하고 비참해질 거라고 여겼다. 바른 공무원으로서 올바른 교사로서 사는 것은 나의 인생철학이 되었다.


세상이 변하여 별과 지도 그리고 나침반 대신 스마트폰의 내비게이션이 길을 안내한다. 교육계를 비롯한 사회 곳곳의 조직이 관행을 벗어나 법과 제도로써 각각의 기능을 수행한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법과 제도는 더욱 촘촘해지고 있는 듯하다. 다소의 부작용이 있기는 하나, 사회는 밝은 쪽으로 발전해 나간다고 믿는다. 그렇게 교사 생활을 하던 중에 뜻밖의 일을 겪었다. 교사의 양심을 법으로 제재하기 시작했다. 기억을 쫓아가보면, 2016년 가을이었다. 해는 김영란법 일명 청탁금지법 시행이 시작되었다. 어느 대학에서는 교수가 학생으로부터 캔커피를 받은 일로 고발까지 당하는 일이 벌어지던 때였다.


어느 날 아침에 우리 반 강한이(가명)의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이의 교실 사물함에 무 한 개가 있을 테니 선생님의 집으로 가져가란다. 어찌 된 일인지 물으니, 지난 주말에 한이와 함께 농사일을 도우러 시골로 갔다고 한다. 한이가 커다란 무를 낑낑대며 뽑더니, 우리 선생님께 드리고 싶다고 하였다. 어머니는 한이의 마음이 너무 기특해서 그러라고 하였다. 물론 고마운 일이긴 하지만 나는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한이의 어머니는, 무 한 뿌리인데 뭘 그러냐고 꼭 받아달라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예전 같으면 무 한 개쯤은 받았을지도 모른다. 시절이 하 수상하니 이제는 기쁘기만 하지는 않았다. 


한이의 사물함을 열어보니, 검은 비닐봉지에 무가 들어 있었다. 들어보니 묵직했다. 초등학교 아홉 살 아이가 들고 오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한이에게 물어보니 엄마가 교문까지 들어다 주었다고 했다. 교문부터 교실까지는 한이가 들고 왔다. 고맙기도 했지만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 무 한 개 받고 고역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다시 집으로 들고 가라고 하기에는 미안했다. 그렇다고 받자니 껄적지근했다.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다가 학교 급식실로 보내면 어떨까 생각했다. 여러 사람이 먹는 급식의 식재료로 쓰면 되니까, 불법은 안되지 않겠나 여겼다.


그 당시 김영란법에서는 어쩔 수 없이 받게 되더라도 기관장에게 신고하라는 매뉴얼이 떠올랐다. 교무실에 가서 교감선생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급식실에 보내는 것도 적절치 않다고 했다. 일단 담임교사가 받은 게 문제가 된다고 했다. 고민할 거 없이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비정한 사회가 되어가는 것 같아 슬펐다. 그러기로 결정하고 교무실 문을 나왔다. 알아보니 고학년에 누나가 있다고 하여 방과 후에 무를 집에 가져가라고 부탁했다. 학부모에게 내 뜻을 전하니, 매우 섭섭하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가 밝고 투명한 쪽으로 발전해 가려는 시도이니, 김영란법에 대하여 학부모님도 협조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 일은 마무리가 되었다. 이렇게 하여 학부모의 말대로 나는 '매정한 교사'가 되었다. 


김영란법 이전에 돈을 받은 적도 있다. 물론 구구절절 편지를 써서 돌려보내기는 했지만 말이다. 따지고 보면 이것은 흔히 말하는 촌지는 아니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교육 후원금' 정도가 아니었나 싶다. 사연을 밝히자면 이렇다. 우리나라 초등학교 3학년에 영어과목이 정규교과로 채택되던 해였다. 학부모의 지대한 관심이 컸던 터라 학부모를 초청하여 공개수업을 하였다. 많은 학부모가 교실 뒤편을 가득 채우고도 늦게 오신 학부모는 복도에서 교실 수업을 참관하였다. 영어로 수를 세는 단원이었다. 나는 사과, 당근, 토마토 등의 과일과 채소를 준비하였다. 수 세기에 앞서서 구체물의 이름을 알고 수 세기 수업을 진행해 나갔다. 


수업이 끝나고 할머니 한 분이 두 번 정도 접은 돈뭉치를 내밀었다. 6만 원인가, 7만 원인가로 기억한다. 할머니는 아들 내외가 맞벌이를 하는 관계로 공개수업에 참여하지 못해서 할머니라도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왔노라고 말했다. 손자가 어떻게 영어 공부를 하는지 궁금했는데 오길 잘했다고 흡족해하였다. 그런데 수업 참관을 해보니,  애들 공부 가르치는데 돈도 많이 들겠다고 하였다. 내가 준비한 과일과 채소를 염두에 둔 말이었다. 예전처럼 책과 공책만 가지고 공부를 하던 시절과는 딴판이라고 말하며 할머니의 '쌈짓돈'을 내게 건넸다. 받아라, 안 받겠다 실랑이를 벌일 수도 없어 일단 받았다. 그리고 할머니께 편지를 쓰고 돈과 함께 밀봉하여 손자에게 주고 할머니께 잘 전해드리라고 했다. 


다음 날, 할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받아주셨으면 좋았는데, 아쉽다고 하였다. 할머니의 마음만 받겠다고 하고 감사의 말을 전한 후, 전화를 끊었다. 내가 할머니의 진심을 알고, 할머니가 나의 진심을 알아주어서 고마웠다. 그리고 뿌듯했다. 그 후로 수업에 더욱 열심히 임했다. 촌지든 교육후원금이든 기부금이든 명칭이야 무엇이건 간에, 이제는 이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져서 홀가분하다. 구구절절 편지를 쓸 일도 없으니 얼마나 평온한가 모른다. 


요즘, 한 정치인의 아내가 고가의 물건을 받은 것을 두고 논란이 많다. 뇌물인가 선물인가 말도 많더니, 이제는 국가기록물이라고 한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대대손손 '청렴'을 교육하기 위한 보존자료로 활용해도 될 듯하다. 국민들은 무 한 개도 받지 않을 만큼 법을 따르려고 하는데, 고위 공무원이 그래서는 안된다. 이건 '경우'가 아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우리네 속담을 상기해 보자.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어젯밤 늦게 그 공무원은 고가의 물건을 두고 입장 표명을 하였다. 사과와 반성을 기대했으나 그것은 과분한 바람이었다. 간단한 경위 설명과 해명뿐이었다. 그의 아내가 '매정하지 못해서' 그 물건을 받은 것이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들으면서 무를 돌려주고, 돈을 돌려주었던 나는 얼마나 매정했던가. 교대를 졸업하고 발령을 받을 때 교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공무원의 최대덕목은 '청렴과 공정'이라고 하였다. 어떠한 유혹에도 넘어가지 말고 청렴해야 하며, 학생들을 대하면서는 편애하지 말고 공정하게 모든 학생에게 사랑으로 가르치라고 했다. 그 말을 새기며 30여 년을 교사로 일해왔다. 진짜 매정한 것은 국민 대다수의 바람을 저버린 그 공무원의 발언이 아닌가 한다. 


부패, 멈춰 (사진 출처 : Pixabay)
(출처 :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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