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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지영 May 31. 2024

딸의 제안

사람이 사람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아니,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슷한 상황을 겪게 되면 어느 정도는 가능할 수도 있다. 그걸 최근에 깨달았다. 우리나라 사람이 OECD 국가 중에서 독서량이 최하위라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보도를 접한 후에 주변에서 책을 읽지 않는 이유를 찾지도 않았고 묻지도 않았다. 대신 추측은 했다. 사느라고 바빠서였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다른 나라 사람보다 근로시간이 많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또는 학창 시절에 했던 공부에 질려서 책이라면 넌덜머리가 나서였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인터넷이나 TV가 잘 전해주어서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가 인터넷 강국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렇게 나름대로 분석도 해보았다.    

  

이 일이 있기 전에는 독서를 안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의 일을 겪으면서 책을 읽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하는 사람들 말이다. 또는 재해를 당해 삶의 터전을 잃고 천막생활을 하는 사람, 사정상 노숙 생활을 하는 사람의 처지를 조금이나마 공감하게 되었다. 먹고살기 바쁜 사람에게 책은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인지도 모른다.     


최근 두 달 가까이 책을 읽지 않았다. 명색이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내가 책도 읽지 않았고, 그렇다고 글 한 줄 쓰지 않았다. 그렇게 살아도 살아지기는 했다. 그렇지만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았다. 모든 것이 무의미했고, 삶이 허망하게 여겨졌다. 그동안 너무 가식과 허식에 매여 살았다는 자각이 들었다. 흔히‘먹물'이라고 하는 사람은 무슨 문제가 생기면 책을 먼저 찾는다. 나도 그랬다. 나의 뒷배는 책이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 중에 자폐증을 앓고 있는 학생이 있으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쓴 책을 찾아보았다. 인간의 뇌가 궁금하면 뇌과학 책을 구했다. 삶이 궁금하면 철학책이나 심리학책도 읽었다. 마음이 헛헛하면 수필을 집어 들었다. 한겨울 고독할 때는 소설을 읽었다. 그런데 이번 일은 책으로 해결이 되지 않았다. 

     

그간 내 방과 거실에 꽉 차있는 책들을 보면서 뿌듯했고, 제목만 보아도 가슴이 설레곤 했었다. 교사 발령을 받고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독서에 관심이 생겼더랬다. 그렇게 삼십 년 가까이 사들인 책을 한순간에 버려야 하는 일이 생겼다. 책을 버리면서 단단한 걸로 믿었던 내 마음은 물렁해졌다. 독서를 하면서 내 마음 근육이 탄탄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인간은‘물질'로 만들어져 있어서인지 정신력으로는 마음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      


32평 아파트 거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책들. 인터넷 검색을 해서 구입한 책들. 유튜브에서 본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추천한 책들. 교사 발령받아 월급 받아 열심히 모아 온 책들. 그 책들을 버렸다. 35년 교사 생활로 얻은 것은 아파트 한 채와 책, 그리고 딸 둘 대학졸업 시킨 거. 따지고 보면 많은 것을 얻었는데, 막상 책들을 버리고 나니 뒷배를 잃은 것처럼 힘이 빠진다. 퇴직하고 조용히 집 안에서 독서로 여유롭게 독서 생활을 하려 했던 꿈은 사치에 불과했다. 책에 묻은 소화기 분말과 그을음 때문에 만지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모든 책을 버렸다. 건축 폐기물 쓰레기 자루에 여럿 넣어 처리하였다.      


이 모든 일은 그날 일어난 일 때문이다. 2024년 3월 28일 밤 10시. 혼자 거실에 앉아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딸아이는 한 시간 전에 운동하러 헬스장에 갔다. 나는 잠시 안방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눈앞에 날파리로 보이는 것들이 왔다 갔다 했다. 순간, 이게 바로 비문증(날파리증)이라는 건가 보다 여겼다. 한 걸음 내디뎠다. 심해졌다. 그것은 날파리가 아니었다. 플라스틱 타는 냄새가 훅 들어왔다. 거실 천장에 있는 LED등 커버가 불타면서 녹아내리고 있었다. 불덩이가 뚝뚝 떨어지면서 거실 바닥에 있던 매트리스에도 불이 붙었다. 소화기 핀을 뽑고 손잡이를 세게 잡았는데 분말이 나오지 않았다. 발코니 문을 열고 ‘불이야!'를 외쳤다. 아파트 아래에는 놀이터가 있었는데, 아무도 없었다. 앞집에 가서 문을 두드리며 소리를 질렀다.   

  

앞집 아주머니가 119에 신고를 하였다. 앞집 아저씨가 나와서 소화기전함을 열고 소화기를 꺼내서 완전히 불을 껐다. 잠시 후 소방관이 와서 화재 현장을 둘러보고 몇 가지 질문을 했고, 나는 몇 가지 답변을 했다. 현장 사진을 찍어갔다. (나중에 소방서에서‘화재증명원'을 떼어 보니,‘전기적 요인/절연열화에 의한 단락'이라고 하였다.) 모두가 돌아간 후 내 모습을 보니, 파자마 바람이었고, 얼굴은 그을음으로 뒤덮였다. 거실을 비롯한 방 세 곳에 그을음과 소화기 분말이 그득했다. 소파에도 침대 위 이불 위에도 그을음이 내려앉았다. 특히 거실이 심했다. 운동을 하고 돌아온 딸의 놀라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저려 왔다. 불타는 끔찍한 장면을 딸이 안 본 게 천만다행이긴 했다. 집에서는 앉을 곳도 누울 곳도 없어서 집을 나가기로 했다. 몇 가지 주섬주섬 가방에 넣고 딸의 직장 근처 호텔로 갔다. 딸이 직장에 출근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으니 결근을 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딸의 최소한의 일상을 지켜주고 싶었다. 의연하게 대처하는 딸이 대견했고 고마웠다. 자식이 없었다면 나는 무너져 내렸을지도 모른다.      


다음 날, 호텔 방에서 혼자가 되고 나니 참았던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어떻게 어디서부터 일을 처리해야 할지 막막했다. 우선 네이버 검색을 해보니 화재전문청소업체가 눈에 띄었다. 전화해서 청소를 주문했다. 거실 바닥에 쌓인 소화기 분말과 그을음을 제거해야 했다. 밤새 비워두었던 집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 책장의 책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책머리와 책등 부분에 그을음이 심하게 묻어 있다. 꺼내 보니 잘 보이지 않던 소화기 분말이 손끝에 만져진다. 밀가루 입자만큼이나 미세하다. 책머리에 하얀 소화기 분말이 그득히 내려앉았다. 손에 묻은 하얀 분말을 보니 더 이상 만지고 싶지 않다. 잠시 후 청소업체 직원들이 왔다. 다른 가재도구나 여러 물건은 털어내고 닦아낼 수 있는데, 책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책의 복구를 포기했다. 가죽소파에도 그을음이 묻었는데, 닦을수록 그을음이 스며든다. 소파도 버렸다. 옷장에 있던 옷에도 그을음이 묻었다. 세탁소로 몽땅 보냈다. 화재복구를 하는 열흘 가량 집 바깥 생활을 했다.      


화재 나고 이틀 째 되던 날 저녁, 갑자기 복통이 심해지더니 급기야는 배가 딴딴해지는 거였다. 허리를 펼 수도 구부릴 수도 없는 심한 복통. 병원 응급실에 갔다. 여러 가지 검사를 했다. 이상이 없단다. 진통제 주사를 맞아도 복통이 가라앉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가 번갈아 왔다. CT를 찍어보자고 했다. CT검사를 해도 이상이 없다고 한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배가 너무 아팠다. 검사상 이상이 없으니 치료할 수가 없다고 했다. 간호사에게 죽고 싶다는 말까지 했다. 의사가 와서는 어쩔 수 없이 마약성 진통제를 맞아야 한다고 했다. 그 주사를 맞고 나는 깊은 잠에 빠졌다. 새벽인가 아침인가 입원실로 옮겨졌다. 주치의가 와서는 좋아질 때까지 금식을 하라고 했다. 링거만 맞다가 입원한 지 4일째 되던 날, 죽을 먹고 퇴원했다. 진단서에는 ‘상세불명의 장폐색증'이라고 씌어 있었다. 네이버를 검색해 보니, ‘장폐색은 장, 특히 소장이 부분적으로 또는 완전히 막혀 음식물, 소화액, 가스 등의 장 내용물이 통과하지 못하는 질환'이라고 한다. 퇴원하던 날, 주치의는 내게 말했다. 스트레스 관리를 잘하라고.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라고. 화재로 인한 충격과 스트레스가 몸으로 나타난 거라고 했다. 몸으로 오는 증상은 내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지금은 집안 정리가 거의 다 된 상태다. 도배도 했고, 장판도 새로 했다. 청소기도 새것으로 바꾸고 밥솥도 새로 샀다. 전기레인지도 새로 구입했다. 여기저기 구석에 갈무리해 두었던 잡동사니들을 버리고 나니, 집안이 넓어졌다. 청소의 시작은 버리는 것이라고들 한다. 그간 버리지 않고 모아 두었던 것들이 많았다. 고추장을 사 먹고 남은 유리병도 잘 씻어 두었고, 참깨나 양념 등을 사서 먹고 남은 플라스틱 통도 버리지 않고 남겼다.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 것 같아서. 그런 자질구레한 것들이 내 공간을 너무 많이 차지했다. 이제 그런 것들 남겨놓지 말아야겠다고 마음은 먹는데, 잘 될지는 자신이 없다. 사람 마음은 늘 변하니까.     


  오늘, 텅 빈 책장을 보고 있는데, 딸이 등 뒤에서 나를 끌어안으며 말한다. 

  "엄마, 읽을 책이 없으면 읽고 싶은 걸 쓰면 되겠네!”

  딸의 제안으로 일평생 소망인 ‘내 책 쓰기’가 앞당겨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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