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응급실을 자주 갔던 환자가 의료대란을 보면서
몇 년 전 일이다. 장이 마비되는 증상이 왔다. 복부가 단단해지면서 심한 복통과 구토 증상까지 동반했다. 배를 움켜 잡고 119에 전화를 걸었다. 어김없이 119에서 전화를 받았다. 응급대원은 친절했다. 구급차를 타고 인근에 있는 응급실로 갔다. 응급대원이 접수를 하고 바로 의사가 달려 나왔다. 급한 환자로 분류되었는지 즉각 처치에 들어갔다. 간호사는 링거 주사를 놓고 채혈을 했다. 엑스레이 사진을 찍고, CT를 찍었다. 온갖 진료가 숨 가쁘게 진행되는 사이에 복통 증상이 멎었다.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가 일어나서 택시를 타고 새벽에 귀가했다. 다음 날 내과에 가서 응급실에 갔던 상황을 얘기하고 약을 받아 멀쩡한 몸으로 일상에 복귀했다. 병명은 '기능성 장 마비'. 소장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생기는 질병이다. 오래 전 개복 수술을 한 적이 있는데, 그런 환자에게서 주로 오는 합병증이라고 했다.
어느 날엔가, 인후통이 와서 식사를 하는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 상황에서, 직장에서 민원이 들어왔다. 스트레스가 심해졌다. 다음 날에 인후통이 악화되었다. 식사를 할 수가 없었다. 또 밤을 지새웠다. 눕기만 하면 숨이 막혀왔다. 병원에 갔다. 편도선이 심하게 부었다고 한다. 입원을 했다. 엿새가 지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응급차를 타고 서울의 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다. 검사를 마친 후, 의사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편도선이 심하게 부었고, 염증이 기관지까지 내려와서 농이 생겼다고 했다. 시간을 지체했다면 폐까지 농이 내려갔을 위험한 상황이라고 했다. 응급 수술을 받고 또 살아났다.
그러고 몇 년이 흘렀다. 어느 날 새벽이었다. 잠자리에서 뒤척이는데 갑자가 어지럼 증상이 왔다. 이상하다 싶어 억지로 눈을 떠보니 천장이 빙글빙글 돌았다. 아무리 정신을 차려보려고 해도 당최 예전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일어나 앉으니 구토 증상까지 왔다. 마치 멀미를 하는 것처럼 속이 심하게 울렁거렸다. 119에 전화했고, 차가 우리 아파트에 막 도착했다. 응급실에 갔다. 구토 증상이 있어서 비닐봉지를 입에 대고 검사를 받았다. 링거 주사를 맞고 까무룩 잠이 들었다. 서너 시간 후, 검사 결과가 나왔다.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이석증 같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다음 날 이비인후과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이석증이 맞다고 했다.
최근의 의료대란을 보면서 지나간 일이 떠올라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보건복지부의 고위 공무원의 말대로라면, 그 당시 나는 경증 환자였다. 119에 전화를 걸 정도는 되었으니까. 요즘 이런 병이 왔다면 응급실은 가지도 못 했을 것이다. 119차를 타고 몇 시간을 '뺑뺑이' 치다가 치료도 못 받고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든다.
곧 있으면 추석이다. 예전 같으면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등의 덕담을 나누었을 명절이다. 하지만 이번 추석 명절에는 '아프지 말아요!'가 대표적인 인사말이 되었다. 연휴에 아프면 응급실에 가기 힘드니까. 특히 고령의 어르신이나 어린아이가 있는 사람은 긴장감과 불안이 심할 것이다. 엊그제 약국에 갔다. 나처럼 가정용 상비약을 구비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는 약국 직원의 말을 들었다. 마치 재난 상황을 만난 듯한 분위기였다.
건강하게 오래 산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테지만, 아프면서 오래 사는 것은 재앙이라고들 한다. 100세 시대가 되었다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재수 없으면' 100세까지 살아야 한다고 걱정하는 이도 있다. 만성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 나처럼 잔병치레를 많이 하는 사람은 100세까지 산다는 것에도 걱정이 된다. 마음 놓고 아플 수도 없는 시절이 되었다. 아픈 것도 힘든데, 치료받을 일이 순조롭지도 않기 때문이다. 100세까지 살 염려는 없을 것 같으니, 대통령에게 감사를 해야 할까.
보건복지부는 지난 13일부터 비응급 환자와 경증 환자의 권역응급의료센터 등 응급실 진료비 본인부담률을 현행 50~60% 수준에서 90%로 올린다고 밝혔다. 중증응급환자가 제때 진료 받을 수 있게 응급실 과밀화를 막고, 줄어든 의료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라고 한다. 그런데 경증과 중증을 어떻게 가려내는가. 의료진들의 판단을 믿어야겠지만, 심각한 상황임에도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이 심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보건복지부의 이런 정책이 우려스러운 이유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본인이 병원에 전화할 정도의 상태는 '경증'이라고 했다. 경증과 중증을 환자 본인이 판단하고 응급실에 갈 것인지 말 것인지 정하라는 얘기로 들리는데, 경증으로 봤는데 알고 보니 중증인 경우도 있음을 간과한 말이다. 또 의료비가 부담되는 환자가 내원하지 않고 참다가 위급해지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그리 말했다면 나쁜 사람이고, 모르고 있었다면 국민을 위해 일할 공무원으로서도 부적합하다.
지난 12일 오후, 대정부 질문에서 한덕수 총리는 국회의원들이 '응급실 뺑뺑이'로 숨지는 사례를 지적하자, '가짜뉴스'라고 호통을 쳤다. 의료대란의 책임을 묻는 국회의원의 말에도 단호한 어조로, 이번 의료대란의 첫 번째 책임은 전공의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건 진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의료대란으로 불안과 걱정으로 고통스러워하는 국민에게 정부 책임은 없다니, 이게 무슨 궤변인가. 그 말을 듣고 소름이 끼쳤다. 몸이 아파 맘대로 병원에 가지 못 하는 아픈 사람들을 생각하니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보건복지부나 총리의 그 윗선에 누가 있는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사람이 누구인가. 부디, 정부 관료들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