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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선생 Mar 29. 2023

지난 10년간의 시간을 정리했다.

시간을 정리하는 시간



2023년. 한국 나이 41살. 동갑인 아내와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이 있다.



올해는 미루고 미뤘던 지난 10년간 사진 파일을 정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불필요한 사진들은 지우고, 추억하고픈 사진들은 추려내서 '포토북'으로 제작을 할 계획이다. 말하자면 서랍 속 사진을 꺼내어 '포토북을 제작'하는 일종의 프로젝트인 셈이다.



"누구나 컴퓨터 하드디스크 한 곳에 정리 못한 사진들을 수북이 쌓아놓고 있지 않은가?"



내 컴퓨터 속 사진 폴더, 2010년,.. 2012년… 2015년,… 2019년.. 정리해야지 마음먹었지만 미뤘다.

코로나로 사진 정리를 미웠다가 다시 정리를 반복했더니 또 몇 년이 흘렀다. 그랬더니 2022년..

그리고 어느덧 2023년. "이젠 더 이상 미루지 않겠다."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연도별 사진 폴더


아내와 연애한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진을 차곡히 정리해 두었는데 그 용량이 760GB. 사진 파일로 만 10만 장이 넘었다. (*실제 스마트폰을 사용한 시점부터 사진을 컴퓨터에 정리를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저장된 사진의 총 크기




당신이라면 어느 쪽인가?


"10년간 매년 새로운 곳을 여행하는 것 vs 10년간 매년 같은 곳을 여행하는 것"



내가 첫 번째로 제작할 포토북은 우리 가족의 '비밀여행지'로 정했다.


새로운 곳을 찾아가는 탐험가 기질의 여행자들에게는 아쉽게 들리겠지만, 우리 가족은 매년 같은 여행지 <온천이 있는 리조트>에서 시간을 보낸다.


아들이 첫 돌이 되던 2012년 아기띠와 유모차를 갖고 여행을 했다. 그다음 해에도 그리고 그다음 해에도 같은 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비밀스러운 곳에서 조용한 휴가를 보냈다. 그런 시간에 점점 익숙해져 있었다.



사진을 정리하는 동안 나는 마치 시간여행을 다녀온 느낌이었다. 그곳의 모습은 매년 그대로였다. 변한 것은 아이의 커가는 모습과 지나간 우리의 30대 시간이었다. 친절한 직원들도 몇몇 바뀌었고, 리조트의 오너의 모습에도 세월이 흘렀다. 유일하게 공간만큼은 변하지 않고 우리를 지켜주고 있었다.


태어난 지 12개월이었던 사진 속 아들은 어느덧 걸어 다니다가.. 뛰어다녔고, 스스로 수영도 하며 물속을 즐겼고, 그리고 함께 골프도 치고 있었다.






사진 속 시간여행이었다.


자, 그럼 어디서부터 어떻게 사진들을 정리해 볼까..


포토북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대략 1만 장의 사진을 150장으로 줄여나가야 했다. 소중한 사진들을 지워나가는 게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나만의 기준을 정했다.


먼저, 공간을 기준으로 사진을 분류했다.

(예를 들면 우리가 매년 묵었던 숙소, 식사를 함께 했던 식당, 물놀이를 했던 온천..)


다음, 시간을 기준으로 사진을 이어 붙였다.


즉, 배경은 같은데 점점 커가는 아이의 모습과 우리의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마치 시간 파노라마 쳐 럼 이어졌다.


사진을 정리하는 것인지,

시간을 정리하는 것인지,

묘한 이 기분.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렇게 1만 장이 넘는 사진을 지워가며 분류하고 스토리에 맞게 페이지 수를 채워나갔다.


희미하게 남아있던 아들의 아장아장 걷던 시절, 유치원 때의 모습, 초등학교 저학년의 모습들이 이젠 머릿속에 또렷하게 그려졌다.


잊혔던 추억을 되찾은 느낌이랄까?


사진을 통한 시간의 편집.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후련함 그리고 아쉬움


긴 선처럼 이어져 있던 10년간의 시간을 정리했다.


포토북 제작업체에 정리한 사진을 모두 보냈다. 그 쌓였던 짐을 정리했더니 마음이 후련해졌다.


그리고 며칠 뒤 아주 멋진 여행잡지 스타일의 표지와 함께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의 편집본을 받았다.

표지의 사진도 직접 찍은 사진으로 채웠다.


짧은 최종 마무리 편집 후 책으로 제작을 했다.


세상에 하나뿐인 포토북이다.


포토북 제작은 스로빙 (THROBBING)에서

 

 

긴 시간 여행을 다녀왔다.


행복했던 순간에 떠났던 여행도 있었다.

하지만, 힘든 시기에 힐링의 시간을 갖기 위한 때도 있었다.

그런 시간들이 차곡히 쌓였던 세월들

긴 연속된 시간의 길 위를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기 같던 아들의 모습이 어느 순간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성장해 있었다.

도대체 사진 속 이 모습이 몇 년도였지? 사진을 역 추적하며 봤다.

, 6살 때 아들이 많이 성장을 했구나. 8살부터(앞니 빠진 후)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구나.

다행이다. 아직 예전 어릴 때 모습이 남아있어서.




편집본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기분이 마냥 좋지 않은 쓸쓸한 감정이 올랐다.

10년의 시간이 너무 순간의 찰나 같이 지났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진첩을 볼 때는 그 10년간의 시간들이 긴 하나의 선으로 느껴졌었다.

하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는 마치 그 시간들의 쌓임이 하나의 점에 불과했다.


존재가 너무 작게 느껴졌다. 머릿속을 어지럽게 하는 생각들이 부질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이 시간들조차도 또 앞으로 10년 뒤 그러니까 2030년대에서 바라보면 하나의 점에 불과할 것이다.

 


지난 10년간의 시간

하나의 긴 선인 줄 알았더니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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