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에는 위계가 없다(상에 관한 이야기 1편)
가끔 학교에서 이런 질문을 받는다. "상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대회를 나갈 때 나만의 규칙이 있는데, 그것은 ‘광고에 경험이 없는 사람을 꼭 1명 이상 팀원으로 할 것’이다. 나 또한 어설픈 아마추어지만 처음 광고를 접하는 이들에게서 나오는 기분 좋은 날것의 기운과 생각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 생각들을 회 떠내듯 잔뼈를 발라내고 해체하여 접시 위에 정리하면 신선하고 즐거운 작업이 나오며 때로는 강력한 영감이 되어 다가온다.
얼마 전 이런 글을 봤다. ‘대회 참여하실 팀원 구합니다. 단, 수상 경험이 없으면 참여 불가.’
적지 않게 충격이었다. 상의 유무가 대회 참여의 잣대가 된 것이다. 물론 이해가 가지 않은 것은 아니다. 수상을 하려면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 경험이 있는 이들이 더 말도 잘 통하고 아이디어를 내는 스킬도 비교적 준수할 것이기 때문이다. 혹은 수상을 향한 간절함이 동반된 것일 수도 있고.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상의 개수와 종류가 상대방의 크리에이티브를 평가하는, 더 나아가 그 사람 자체의 가치를 평가하는 이상한 기준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권위 있는 대회에서 상을 많이 받는다는 것은 여러 방면으로 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의미일 수 있다. 하지만 세상엔 수많은 종류의 크리에이티브가 있다. 단지 그 대회에 어울리지 않았을 뿐 좋은 아이디어일 수도 있다.
배로 산에 오를 수 없다. 자동차로 바다를 건널 수는 없다. 누군가는 유쾌한 아이디어를 잘 내고 누군가는 진중한 아이디어를 잘 낸다. 대회에 맞는 아이디어가 있고 TV에 맞는 아이디어가 있다. 목표에 따라 알맞은 수단과 방법이 있을 뿐이다. 창의성엔 위계가 있을 수 없다. 단지 종류와 쓰임이 다를 뿐이다.
경력이나 이력이 없는 신입을 뽑지 않는다며 업계의 시스템을 욕하면서 그들끼리도 경험이나 상이 없는 이들을 배척하며 그 슬픈 관행을 유사하게 이어 나가려 한다. 그리고 성취의 결과물들을 마패처럼 사용하며 같은 팀원끼리 상하로 관계를 나누려 한다. 상이라는 색안경을 낀 채 상대방에게 프레임을 씌우고 구분하며 스스로를 우물 안에 가둔다. 흐르지 못한 채 그 안에서 함께 고여간다.
크리에이티브란 세상을 낯설게 바라보고 그것을 익숙하게 재조합하고 재편집하는 것, 혹은 반대로 익숙한 것들을 낯설어 보이게 만드는 것. 어쩌면 가장 낯설게 보는 눈은 그것이 익숙하지 않은 자의 눈일지도 모른다. 색안경을 끼고 단색으로 익숙한 풍경만을 바라보는 눈은 결코 낯선 세상을 만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