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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까솔 Aug 08. 2022

성취와 경쟁의 중독

대회라는 강박에 대하여(상에 관한 이야기 2편)


광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화려한 시상대 위에서 수상하는 자신의 모습을 꿈꿀 것이다. 크리에이티브를 뽐내어 그것을 인정받고 흔적을 남기는 것은 커다란 보람이며, 동시에 취업과도 면밀한 관계가 있는 일종의 등용문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 또한 화려한 트로피를 높게 치켜들고 성취를 거머쥔 이들의 열정 어린 모습을 동경하며 맨땅에 헤딩하듯 대회 전선에 뛰어들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듯 당연히 첫 대회에서 낙방했다. 수상에 실패해도 성취에 도전하는 그 느낌 자체가 즐거웠다.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 밤을 지새우며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듯 작당모의 하던 그 설렘이 좋았다. 그렇게 여러 차례 탈락하면서 좌절과 실패의 반복 속에 성장해가며 작은 상을 받게 되었다. 나를 포함한 팀원 모두 광고 경험이 적었기에 더 값지게 다가왔다. 그날 밤 두근거림에 심장이 너무 뛰어 잠을 잘 못 잤던 것 같다. 나도 가능성이 있구나, 우리의 생각이 먹히는구나. 이 일은 본격적인 대회 활동의 원동력이 되었고 다음 대회에서도 수상하게 되었다. 그다음에도 다음다음에도 연속으로 성과를 내며 흡사 수상 릴레이가 이어졌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하였나. 거기서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크고 더 많은 상을 받고 싶었다. 성취는 인간의 본능이지만 그것을 넘어 어느 순간 상이란 것에 강박감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더 많은 밤을 새우며 건강을 담보 삼아 무리하게 대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성취의 즐거움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성장을 위한 것이 아닌 그저 경쟁에 중독된 것이었다. 그런 생활이 계속 이어져갔고 어느 순간 뭔가 툭-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번아웃이었다. 자신을 혹사해가며 마약 같은 경쟁의 맛에 취해 눈을 감고 목적 없이 앞으로만 달려간 자의 최후였다.


그렇게 모든 대회 일정을 취소하고 꼬박 1년 동안 아무 활동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경쟁이라는 것에 거부감이 생겨 경쟁 예능 프로그램이나 스포츠와 같이 승부를 해야 하는 콘텐츠들을 잘 못 보게 되었다. 성취는 값지고 고귀한 것이지만 모두가 그것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고배를 마신 자의 슬픈 뒷모습을 볼 때마다 크게 감정을 이입하게 되어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다. 순위 매기기라는 잔인한 시스템에 신물이 났기 때문이다. ‘노력의 과정도 성취다!’라는 말은 좋은 위로처럼 보이지만 당사자에게는 위선이고 뜬구름처럼 느껴진다. 어느 순간 나는 경쟁에 지쳐 도전 자체의 아름다움을 잊어버린 채 망가져갔다.


누군가 ‘제일 값지고 기뻤던 상이 무엇인가요?’라고 묻는다면 단언컨대 처음 받았던 작은 상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어떤 큰 상보다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도전이라는 행위 자체의 즐거움과 숭고함을 알려줬기 때문에, 그리고 가장 반짝이던 눈으로 뚜렷하게 목표를 응시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최근엔 대회에 잘 나가지 않는다. 대신 그 아이디어들을 경쟁이 아닌 실질적인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꺼내고 있다. 강박에서 벗어나니 다시 심장이 뛰고 눈이 반짝인다. 더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얼마나 물질적인 성취에 집착하고 경쟁에 중독되어 있는가. 그리고 얼마나 자신을 몰아치고, 상처 주고, 과열시키는가. 때로는 잠시 쉬어 가며 호흡을 가다듬고 열기를 식혀 줘야 한다. 목표를 잃지 않았는지 주위를 둘러봐야 한다. 처음 도전하던 그때 그 마음을 온전히 간직하는 힘을 잃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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