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미손과 매드 크라운 - 본캐와 부캐

배달노동자의 교육학 수업

by 명중호


2021년 6월 초, 모 방송국 이정O 작가로부터 연락이 왔다. <부캐로 돈버는 법>이라는 주제로 촬영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하고는 싶었으나 간단한 전화 인터뷰만 하고, 여러 사유를 들어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방송을 통해 하고 싶은 말, 보여주고 싶은 장면들이 많았었지만,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나는 자연스레 '본캐'와 '부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본캐'란 '본(本) 캐릭터', 즉 '본래의 자아, 본래의 직업' 등을 뜻한다. 영화나 드라마로 말하자면, 주역, 주연, 주인공 쯤 될 것이다. '부캐'란 '부(副) 캐릭터', 즉 '부차적 자아, 부차적인 직업(가외의 직업)' 등을 뜻한다. 영화나 드라마로 말하자면, 조역, 조연, 엑스트라 쯤 될 것이다.


나는 부캐란 말을 들었을 때, 먼저 '매드 크라운'이 생각났다. 힙합씬에서는 꽤나 알려진 인물이지만, 그를 대중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건 분홍색 비니 가면을 쓴 '마미손'이라는 캐릭터였다. 마미손은 말하자면, 매드 크라운의 '부캐'였다. 그런데 방금 말했듯, 부캐였던 마미손은 매드 크라운을 보다 힙합적인 존재로 자리매김 시켰고, 많은 동료, 선후배 힙합가수들에게 용기와 희망의 캐릭터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예상과 달리 마미손은 초반에 탈락하였고 그를 알아챈 사람들은 뜨악해 했다. 그러나 마미손은 쿨하게 경연 무대를 떠났다.


마미손의 등장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매드 크라운은 마미손이라는 부캐를 본캐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 수행하였다. 아니 마미손 그 자체가 힙합 경연장에 나온 본캐였고,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힙합 가수 동료와 선후배들은 매드 크라운의 그런 도전에 큰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다른 동료 연예인들도 이에 화답하고 열광하였다. 대중들의 시선도 자연스레 그에 따랐다.


성동일과 이일화. 젊은 시절에는 잘생긴 외모와 예쁜 용모로 주인공의 자질을 갖춘 촉망받는 배우들이었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두 사람은 주인공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고, 오랜 동안 아프고 쓰디쓴 좌절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주인공으로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지만, “응답하라” 시리즈와 여러 드라마를 통해 인상 깊은 조역을 소화하면서 계속해서 대중의 사랑을 받는 배우로 살고 있다.


유해진. 각종 범죄 영화의 씬스틸러로 출연해서 코믹과 진지를 넘나드는 배우로 영화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 나에게 유해진이라는 배우가 인상 깊었던 것은 영화 <주유소 습격 사건>의 한 장면이었다. 중국집 배달원으로 나와서 폭주족 친구들과 랩을 신나게 부르던 유해진. 젊은 시절 엑스트라나 다름없는 조연으로 영화에 발을 들여놓았던 그의 모습이었다.


사실 부캐, 조역과 관련해서는 영화 말고도 이런 저런 예들이 많지만, 이와 관련해 끊임없이 뇌리를 스치는 질문은 이랬다. '우리들의 삶에서 본캐와 부캐란 무엇을 뜻할까? 나는 본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부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내가 살아온 삶을 돌이켜보면, 내가 맡은 역할이 본캐인지 부캐인지가 그렇게 중요했던가 싶다. 물론 본캐로 승승장구한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러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본캐보다는 부캐를 해야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이다. 그리고 긴 인생 여정을 통해 보면 본캐나 부캐나 스쳐지나가는 한 때의 역할일 뿐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에서 스스로를 본캐(주인공)로 자리매김하였는가, 그렇게 살아왔는가 하는 점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제 한 가지의 것으로 나를 규정하는 시대도 아니라는 점이다. 예전보다 오랜 동안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직업이든, 사회적 관계든, 한 가지 캐릭터로 나를 규정할 수 없게 되었다. 수많은 부캐의 역할을 수행하며 우리는 인생의 길목 길목을 지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사실이 있다. 어쩌면 본캐는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윤리성이나 진정성'이 아닐까 싶다. 본캐의 자아정체성, 도덕적 정체성을 유지하며 다양한 부캐들을 최선을 다해 수행하는 것이 우리들의 몫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항상 자신의 본캐에 다양한 부캐들를 비추어 성찰하고 분발해 나아가야 하는 게 우리들 삶의 목적이라는 점이다.


어느 이름으로 살든 나의 본 모습, 본캐란 삶을 영위해가는 태도, 자세, 노력, 정성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 자전거를 타고 내달리며 '지금'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내 본캐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직한 땀을 흘리며 1분, 1초를 아껴 도로를 달려 음식과 물건을 나르는 모습이 내세울만한 본캐가 아니고 무엇일까?' 그런 생각을 품었다.


이제 지면을 빌어 방송국의 이정O 작가에게 고마움을 전히야할 것 같다. 작가가 던진 화두로 인해 나는 많은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었고, 내가 걸어온 길, 현재 걷고 있는 길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일의 가치, 삶의 가치, 인간의 가치를 가늠해볼 수 있었다. 모두 이정O 작가 덕분인 것이다.


모쪼록 내가 가졌던 이 생각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되든 계속 이어지길 바래본다. 도로를 내달리며 느끼고 깨달은 본캐의 자랑스러과 대견함을 잊지 않고 간직했으면 하는 것이다. "나는 현재를 열심히 최선을 다해 정직하게 달려가고 있는가?" 앞으로 살아가며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볼 질문이 될 것이다.


#해커스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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