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사리 May 09. 2022

별거 없는 인생

행복하다가도 불행해지고 불행하다가도 행복해지는 것

 인간의 은 유한하다는 말이 자주 맴돈다. 지금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시간은 가고 있고 삶도, 시간도, 어쩌면 생의 끝자락에 다가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작고 유약하던 내가 유한한 시간을 셈하기 시작한 것은 죽음이란 단어를 실감했을 때였다. 6살 무렵 뭐가 그리 서러운지 얼굴 눈물 콧물범벅이 되도록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는데, 어쩐지 어른들은 "울 것도 더럽게 없다 크면 울 일이 얼마나 많은데" 라며 이해 못 할 말들로 나를 달래곤 했다. 그때의 나는 그랬다. "지금 내가 이렇게 슬픈데 커서 우는 게 다 무슨 소용이야." 사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6살의 나라면 왠지 그랬을 것 같다. 22년이 흐른 지금은 그 의미를 알 것도 같다. 옛 어른들 말씀 중에 틀린  하나도 없다더니 크니까 울 일이 왜 이리도 많은지 하루하루 눈물 마를 날이 없는 게 또 슬퍼서 눈물이 났다.


 작년에는 두 번의 청첩장을 받았고, 두 번의 부고장을 받았다. 단 몇 달 사이에 누군가의 행복을 빌어 주었고, 다른 누군가의 이별을 애도했다. 삶이란 참 별거 없구나. 행복하다가도 불행해지고 불행하다가도 행복해지고 그런 거구나. 그때 알았다. 이렇게 아등바등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처음으로 오랜 직장을 관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던 내가 스트레스로 시름시름 앓는 날이 늘수록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짧다면 짧은 인생에 돋친 뾰족한 가시들을 이제는 뽑아내고 싶었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백수가 된 나와 그나마 조금 더 여유로워진 나 나쁘게 말하면 조금 더 게을러진 나와 마주할게 뻔하지만 상상만 해도 묵은 체증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걸로 됐다. 상상만큼 행복해진다면 상상을 현실로 만들면 된다.


  한참 후 또 한 번의 부고를 들었을 때는 출근 후 점심시간이 되어서였다. 9층에 있는 구내식당에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탄 순간 동생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언니... 우리 할머니 돌아가셨대" 떨리는 목소리와 숨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정적 속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울지 마" 한마디뿐이었는데, 어떻게 끊었는지도 모를 전화를 붙들고 나는 한참 동안 소리 없이 울기만 했다. 그렇게 꼬박 3일간 장례를 치르고, 어떻게 이렇게 슬플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울고 나니 발인날이 되었다. 나의 기억 속 따뜻했던 우리 할머니는 볕 좋고 공기 좋은 어느 수목원에 흙이 되고 땅이 되고 나무가 되었다. 꽤나 오랜 기간 울던 엄마는 "그것 봐 아득바득 아껴서 뭐해 죽으면 아무 소용없는데" 라며 울음 섞인 그리움을 아프게 얘기했지만 그 모든 말들이 '보고 싶다'로 들리는 걸 보면 엄마도 엄마의 엄마를 많이 사랑했나 보다.


 문득 언제 어른이 된 것 같으냐.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남의 행복에 진심으로 기뻐하는 사람이 되었을 때, 남의 슬픔을 같이 슬퍼하고 함께 아파하는 사람이 되었을 때, 나의 가족이 내 주위에 누군가가 혹은 그 외의 누군가가 이 생을 무사히 마치고 떠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슬픔이 되었을 때, 그때 나는 '내가 잘 자란 어른이 되었구나'라고 여기리라 다짐한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고 그 안의 인생은 길지도 짧지도 않으니 남은 시간은 행복으로 채워보련다. 오늘은 걸로 됐다.

매거진의 이전글 50세 엄마의 끈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