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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부모님에게 500만원짜리 선물을 하는 날이 왔다. 전셋집을 제외하면 내 인생 가장 큰 플렉스. 물론 물질적인 선물 (예를 들면 명품백) 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내 기준으로는 값은 값이면 물질 보단 경험이 더 큰 자산으로 남기 때문에 다른 선물을 하기로 했다. 내가 다 쏘는 효도여행.
어느 날 문득 나만 너무 놀러다닌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체 여행과 드라이브를 좋아하기 때문이지만, 다녀올 때마다 너무 좋은 에너지를 얻고 오는데 이 좋은 걸 좀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달까. 여행이 가져다주는 힘을 강하게 믿는 편이라서.
그래서 엄마아빠에게도 일상을 떠나 근심, 걱정 다 덜고 자유를 만끽하는 경험을 선물하고 싶었다. 1분 1초, 하루하루가 더 소중해지고 소비에는 더 관대해지는 일종의 일탈. 여행을 떠나면 새삼 더 느껴지는 시간의 소중함과 노동의 가치. 분명히 다 계획을 하고 가도 마주하는 예기치 못한 이벤트와 뜻밖의 배움들. 그리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추억. 그래서 명품백 대신 해외여행을 선물하기로 했다. 가자, 싱가폴로.
이것에도 꽤나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1) 일단 나는 한 번 다녀온 곳이라 욕심이 덜했다: 즉, 부모님 맞춤 코스가 가능하다. 그래서 이미 다녀온 여행지를 목적지로 삼는 것은 효도여행 팁이기도 하다. 8년 전에 다녀온 것이긴 하지만, 생각보다 해외여행별 명소는 시간이 오래 지나도 크게 바뀌지 않는다. 당시 나는 센토사가 너무 재밌는 기억으로 남아있는데 (유니버셜 스튜디오, 난생 첫 루지 타보기, 해외 해변 등), 엄마아빠 취향을 고려하면 그다지 흥미있는 코스는 아닐 것 같아서 이번엔 제꼈다. 그래도 아쉽지 않다는 게 장점.
(2) 깨끗하고, 편하고, 안전해서 좋았던 기억 때문이다: 8년 전 방문했을 당시, 싱가포르는 청결도 다른 나라에 비해 훌륭했고 치안과 편리한 인프라 등의 면에서 굉장히 발달되었다. 고로 효도여행에는 제격이지 않을까 싶었다.
(3) 길지 않은 일정, 3박으로 해결 가능하다: 휴가를 길게 낼 수는 없었고, 정해둔 예산은 있었고, 3박으로 알차게 다녀올 수 있는 곳. 싱가포르. 그리고 항공권도 대한항공 사이트에서 직접 구매했다는 걸 생색낼 겸 적어두어야겠다.
(1) 택시를 자주 타게 된다 : 술도 잘 안 마셔서 한국에선 택시 탈 일이 거의 없는데, 외국에 나가서 엄마아빠랑 같이 다니니 지하철 버스 보다는 택시를 많이 이용하게 되더라. 돈은 더 들었지만 간만에 나도 편하게 여행했다. 역시 여행 가면 소비에 더 관대해진다. 좋다. 이럴 때 해보지.
(2) 더운 나라라서 낮에는 무조건 실내로 : 와, 싱가포르가 이렇게 더운 줄 거기 가서야 실감했다. 나도 더위를 못 참겠던데 엄마아빠는 오죽했으려나. 1일차엔 뭣도 모르고 계속 걸어다녔다가 너무 힘들어서, 2일차부터는 낮에는 실내 코스 위주로 짜서 다녔다. 크루즈라던지, 실내 온실이라던지, 쇼핑몰이라던지. 더운 나라에서 더운 나라로 여행갔던 게 조금은 억울하기도 했는데, 1년 내내 여름 날씨라는 걸 장점으로 살려 도심 곳곳에도 흔히 볼 수 있던 초록색 풍경은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3) 쇼핑이 목적이면 조금 아쉬울 수 있는 여행 : 싱가폴에서 꼭 사야 하는 이것! 할만한 유명 로컬 브랜드가 많지 않은 느낌이었다. 8년 전엔 찰스앤키스 가방을 사오긴 했는데, 지금은 그다지 트렌디한 브랜드도 아니라서 구경만 하고 나왔다. 그나마 싱가포르 고급 커피 브랜드로 유명한 바샤커피만 잔뜩 사왔다. (최근 국내 청담점도 오픈하긴 했는데, 쉑쉑버거가 들어왔을 때처럼 굳이 한국에서 방문해보진 않을 것 같다)
(4) 카페를 자주 가게 되는데 오히려 좋아 커피의 국가 : 나이와 체력 때문인지 (이제는 나도) 우리는 여행 중간중간 카페를 계속 들리게 되었다. 잠깐 쉬어야 하고, 뭐 마셔야 하고. 근데 싱가포르엔 유명하고 이색적인 커피 집이 많다보니 오히려 좋았다. 바샤커피, 응커피, PS카페, 폴로랄프로렌카페 등.
(5) 싱가포르는 역시 야경 보는 맛에 간다 : 물론 낮의 싱가폴도 정말 아름답다. 알록달록 명소들이 많아서 인생샷도 많이 건졌으니까. 하지만 대체로 밤에 더 빛이 나는 나라인 것 같다. 유명한 레이져 트리쇼가 펼쳐지는 가든스바이더베이부터, 매일 저녁 분수쇼가 열리는 마리나베이샌즈, 클럽과 밤 문화로 유명한 클락키까지. 야경 보는 맛에 여행을 다니는 여행자라면 싱가포르를 추천한다.
부모님 여행 10계명이 온라인에서 핫할 정도로, 자녀와 여행 가서 하면 안 되는 말이 있다고 한다. 나도 읽어보고 웃었던 게시글인데 참 공감도 된다. 출국 전 엄마아빠한테도 공유해서인지, 정말로 엄마아빠는 여행 내내 저 십계명 중에 단 하나도 언급하지 않았다. (ㅎㅎ) 세대가 다르고 취향이 달라서 어쩌면 참 어려울 뻔한 여행인데, 그래도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굳이 하지 않고, 조금은 달라도 서로를 이해하고, 인내하고 하는 과정들이 있었기에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감사요!
▼ 마지막으로 여행 중 엄마아빠와 내가 각각 뽑은 최고의 명소들은 아래 영상에 담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