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이 Apr 04. 2023

개인파산 진행 중인 채무자와 파산관재인의 대화 3

채무자의 부채, 자산과 현금흐름

개인파산을 신청하는 채무자 중에 상당수는 자신의 부채가 얼마인지 모른다. 오랫동안 숨어살다가 세상에 나와서 과거의 자신을 마주하기 어려워서 일수도 있고, 채무자는 면책여부의 중심요소인 면책불허가 사유가 있는지 여부에 좀 더 관심을 보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조금 답답한 점은 그 후의 일이다.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으나 면책결정 확정 된 후에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 다시 개인파산 및 면책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다소 많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한번 개인파산을 해보았기 때문에 채무자가 부채 문제를 쉽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럴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조사를 하다보면 간혹 그런 사람으로 보여지는 채무자도 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부채와 자산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부족해서 근럴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채권자목록에 적힌 부채가 채무자의 현금흐름을 플러스로 만드는지 마이너스로 만드는지에 대한 깊은 생각이 없어서일수도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어느날 채무자는 면담과정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저는 할 수 없어요. 저는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이에요. 아시잖아요.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갈게 뻔하단 말이에요.' 


채권자목록을 펼치면서 채무자 말이 맞을수도 있다고 답을 했다. 채권자목록은 파산선고 결정 이전의 과거에 대한 채무자의 기록이다. 파산신청 사건의 기록에는 채무자가 '과거'에 누구에게 돈을 빌렸고, '과거'에 어디에 사용을 했고, '과거'에 누구에게 돈을 갚지 못했는지에 대한 내역이 나타난다. 이걸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의 시점은, 채무자의 시점은 대화하고 있는 '지금'이 아닌 바꿀 수 없는 '과거'에 집중하게 된다. 과거에 있었던 사실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법률적인 평가를 하고, 증거를 수집하고 소송을 준비하더라도, 그 모든 것은 과거에 있었던 일을 상대로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들여다보고 나면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지금 파산관재인 앞에 앉은 채무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한번에 얘기하고 있다. 조사과정에서 과거를 들여다 본다는 것은 채무자가 숨겨놓은 재산이나 면책불허가 사유가 있는지 여부 등을 조사하기 위한 것이다. 더불어 하나 더 의미를 부여하자면 채무자의 삶이 현금흐름이 플러스로 흐르는 것인지, 마이너스로 흐르는 것인지 살펴보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상 외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하여 자산관리가 필요하다는 메세지를 보내는 것이기도 하다.  


파산관재인의 조사과정에서 채무자들은 상당히 경직된 모습으로 앉아있다. 형사사건에서 수사단계에 피의자신문에 참여를 해보면 그때 조사받는 피의자들의 표정과 많이 닮아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면담과정에서 채무자가 했던 말 중 '저는 할 수 없어요.'는 과거의 경험에서 채무자 자신을 평가하는 것이고,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고'는 바꿀 수 없는 과거를 말하는 것이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갈게 뻔하단 말이에요.'는 다가오지 않은 모르는 미래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저 대화에서 현재라는 시점에서 채무자가 무엇을 하는지에 따라 변화될 미래는 주제로 등장하지 않았다.  


개인파산을 신청할때는 면책신청도 같이한다. 면책신청을 한다는 것은 과거의 채무를 '0'원으로 만들어 놓는다는 말이 된다. 그렇게 되면 면책결정 이후의 채무자는 자산과 부채가 0원인 사람이 된다. 그럼 면책결정 시점인 현재에서 만들어갈 미래의 현금흐름은 채무자가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이때 현금흐름을 플러스로 만드는 채무자도 있고, 현금흐름을 마이너스로 만드는 채무자도 있다. 그런데 채무자의 마음속에서 '과거' 자신의 소비습관과 자아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마이너스 현금흐름을 만들어낼테고, 자신의 소비습관과 자아상을 긍정 쪽으로 이동하는 채무자는 플러스 현금흐름을 만들어낼 것이다. 개인파산과 면책절차에서는 여기까지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다만, 자산과 부채를 0원으로 만들어서 세상에 덜렁 내려놓는다. 그럼 세상에 던져진 존재이면서, 그 다음을 살아가는 채무자는 삶의 방향에 대한 깊은 생각이 필요하게 된다. 


그래서 앞에 했던 채무자의 말은 '과거에 저는 할 수 없었어요. 그리고 지금 제 삶의 현재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개인파산과 면책을 신청했어요. 미래의 저는 다르게 살고싶어요.'라고 각색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작가의 이전글 개인파산 진행 중인 채무자와 파산관재인의 대화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