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청은 지금 "미래"라는 단어에 매몰되어 있다. 관련된 사업을 진행시켜야 하는 나는 그 단어가 점점 부담스러워지고 있다. 올해 초, 관련 공문이 쏟아져내려오고 지원사업 대부분은 미래, 디지털 역량강화 쪽으로 편중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나는 고지식한 사람이라 내가 먼저 이해하고 설득되어야만 다른 사람에게도 권하고 같이 하자고 말할 힘이 비로소 생긴다. 그런데 그 힘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
왜 꼭 디지털이 미래가 되어야만 하는지
아이들은 지금 짧고 화려하고 자극적인 매체에 대부분 중독되어 있는데 굳이 디지털기기를 학교에서까지 들이밀고 사용하도록 강요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진정 아이들을 위한 일인가? 45분 짧은 수업시간에 교과서의 내용을 이해하고 생각하고 활동하기도 바쁜데 디지털기기가 들어와서 기껏 이끌어 놓은 생각의 맥락을 끊고 뭔가를 하려고 하면 사용자체의 여러 가지 오류와 문제로 많은 시간을 낭비하기도 한다. 수업 목적에 따른 기기사용이 중요한데, 돌아가는 방향은 마치 디지털을 위한 수업이 되어야 할 것 같은 강한압박이느껴진다.
디지털교과서, 과연 좋은가.
디지털교과서 도입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관련된 기사 하나를 우연히 읽었는데 교사로서 막연히 느꼈던 학교의 디지털화, 특히나 디지털교과서의 부작용을 똑똑히 꼬집는다. 디지털교과서의 사용은 이미 선진국에선 실패한 사업이고 사용하던 학교에선 결국 사용 중단 선언하기에 이르렀다고. 그런데 우린 왜 이런 사업에 충분한 논의 없이, 특히나 현장교사의 의견은 패싱하고 불도저처럼 제도를 도입하고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는 걸까.
가장 유명하고 투자를 많이 받았던 알트스쿨을 취재한 한 기자는 디지털 교과서 교육의 결과를 문맹자 양산, 피상적 기술의 습득, 사고력의 부재로 정리했다. 그녀는 교사의 철학적 안내 없는 혁신 기술의 적용은 교육 불가능 상태에 도달할 뿐이라고 첨언했다.
세상이 변한다고 AI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우린 그것을 익히고 배워야 한다고 그들은 말한다. 하지만 그것을 통한 교육의 효과는 미미하다. 챗GPT에서 정보를 얻기 위한 시간과 노력은 단 몇 분이고 그렇게 얻은 정보는 금방 휘발된다. 게다가 정보나 지식을 쉽게 얻으니 아이들은 더욱 깊게 생각하고 여유 있게 사물을 바라볼 이유도 생각할 목적도사라져 버린다. 쉽게 정보를 얻어내고 화려한 기술로 빈약한 생각을 치장하는 기술 몇가지와 그것을 소비하는 수동적인 학습자를 만들어낼 뿐, 사고력, 문제해결력을 향상 시킨다고 보기는 어렵다.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디지털 기기의 사용은 교사가 이를 통해 어떤 결과물을 만들도록 내도록 안내하고 준비하는지에 따라 효과는 달라진다. 교사의 단단한 교육철학과 교육 목적 없는 디지털 기기의 사용 그 자체는 교육적 효과를 장담할 수 없다. 아주 비싸고 편리한 도구일 뿐. 단지, 교육적 효과만 본다면 종이책을 읽고 충분히 생각하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적용시키는 것만 못하다. 그 과정의 한 부분에서 디지털을 일부 도입, 사용할 수도 안 할 수도 있을 뿐. 이 모든 것은 교사들의 노력과 안내로 성공이 되기도 실패가 되기도 한다.
일부 교사의 요청으로 교육청에서 지원하는 에듀테크 설루션 지원사업을 신청했고, 지원대상교가 되었다. 교육부가 전문가들에 의해 정해준 툴 중에서 튜닝, 팅커벨, 클래스툴 세 개를 신청했고 전교사가 해당 툴을 사용할 수 있는 지원을 받게 되었다. 새로운 툴의 사용을 위해 교사가 느끼는 부담은 크다. 이미 하고 있던 비슷한 효과의 툴에 익숙해져 있는데 새로운 것을 배워서 익히고 수업에 적용하기 위해선 시간이 걸린다. 그런 걸 알면서도 담당부장인 나는 이것의 좋은 점을 알리고 설득하고 다시 배우자고 선생님을 설득해야 했다. 발표를 끝낸 나는 내가 마치 영업사원이 된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 기기나 툴이 좋다고 사용해 보자고 효과가 짱이라며 과장하고 홍보하고 나를 발견했다.
내가 뭘하고 있는거지?
디지털 소비가 디지털 선도를 의미하는가.
학기 초, 하이러닝을 기반으로 한 수업활동 하라는 교육청의 권유의 그것을 수업에 도입한 한 선생님은 많은 시행착오와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해당 툴 관리자와 수십 번의 질의, 응답 과정을 통해 하이러닝이라는 툴을 겨우 사용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왜 아직 안정화되지도 않고 검증도 안된, 오류와 수정의 과정을 거쳐야만 쓸 수 있는 에듀테크 소프트웨어를 서둘러 도입하라고 하는 걸까. 그 모든 시행착오를 겪어내고 수정하고 정착시키는 모든 일을 교사에게 떠맡기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옛 정권의 사업이 남긴 업무가 그대로 산적한 가운데 또 다른 사업이 학교에 들어오고 늘어난 업무에 교사 본연의 업무, 진짜 가르치고 배워야할 것들은 기술, 에듀테크, 디지털의 문구속에 희미해져만 간다. 만일 이 사업이 또 실패한다면 교사가 변화, 혁신하지 못해서 그랬다고 그 책임을 돌릴 것인가. 그건 아니라고 본다.
잠깐, 멈춤!
에듀테크, 디지털 교육이 아이들의 교육의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지 충분히 검토해봐야 한다. 청소년기에 놓친 그 모든 과정과 시행착오는 그들의 인생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게 뻔한데 왜 그리 성급할까. 코로나 감염병을 거치면서 아이들은 온갖 디지털기기가 교육의 자리을 대신 했다. 그러나 그 효과는 참담했다. 그 이후, 아이들은 스마트폰 중독이 심해졌고 문해력이 떨어졌고 친구들과 대화하고 갈등을 처리하는 사회적 능력도 감소되었다.그걸 벌써 잊었을까. AI가 미래사회를 지배하고 직업을 빼앗는다고 우리가 다 그것을 배우고 소비하면 그 자리를 다시 찾을 수 있는 걸까. 그런 위기를 뛰어넘을 수 있는 사고력과 문제해결력을 AI를 배우면 얻게 되는 건 아닐텐데 답답한 노릇이다.
그것이 왜 필요하고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지금 디지털 기기의 과도한 사용으로 엄청난 부작용을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 또 다른 기기를 쥐어주는 게 진짜 필요한지에 대한 진지한 숙고의 과정이 먼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자리의 중심에는 반드시 교사가 있어야 한다. 교사의교육적 철학과 안내 없는 디지털 기기의 사용은 유명무실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