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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Nov 24. 2024

동지가 있다는 것

라라크루 10기 신청서

아니, 지금 그게 말이 돼요?
우리가 일 년 동안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그렇게 말하냐고요?


하마터면 넋 놓고 당할 뻔했다. 그녀는 내 말의 의도를 잘못 이해한 것 같았다. 내가 말한 단어 하나를 좁게 해석하고 화를 내고 있었다. 강하게 쏘아붙이는 그녀의 말투에 당황스러워진 나는 안절부절못했다. 주변 사람들도 그게 아니라고 몇 번을 설명했지만 소용없다. 상황을 목격한 다른 사람들이 없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 누군가가 같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든든하다는 느낌,  내 의도를 잘 이해하고 당황스러움을 공감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억울하고 불편한 감정이 조금 누그러진다.


부족한 말

가끔 이렇게 말이 의도와 진실을 담아내기엔 턱없이 부족할 때가 있다. 때로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신중하게 말할 걸,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 걸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누구도 공격할 의도가 없었지만 아니, 반대로 돕고 싶었지만 역효과가 나고 말았다. 내 말이 누군가에겐 상처가 되고 돌이킬 수 없는 화살이 되는 불편한 상황.  의도가 아니라고 오해하지 말라고 몇 번 말했지만 상대는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한 마디 더 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이미 나를 떠난 말이었다. 해석은 오롯이 상대의 몫일뿐. 요즘 그녀는 힘든 일이 있었을까. 쓸데없는 생각이 또 꼬리를 문다.



글을 써야겠다.

글을 쓰면 내 안의 것을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다. 뭉쳐있고 혼란스러운 것을 풀어내고 정리할 시간이 생긴다. 적당한 단어와 문장으로 복잡했던 생각이 가지런해지고 다듬고 고치는 과정을 거쳐면 비로소 글이 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

지금처럼 답답함이 차오를 때, 애매하고 모호한 감정, 불편한 느낌들을 탐색하고 정리하고 싶을 때 글쓰기라는 과정을 거치곤 한다. 그런데 그렇게 쓴 글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오로지 혼자만의 글로만 남긴다면 어떨까. 아마도 글이 더 다듬어지거나 읽기 편한 형태로 발전되긴 힘들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독자가 내 의도를 이해해 주길 바라면서 조금 더 나은 글이 되도록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고 있다.


그래서 같이 글쓰기는 든든하다.

혼자 쓰기의 편협함은 공공의 글쓰기로 딱딱한 관점의 벽을 허물 수 있다. 누군가에게 내 글을 보여주려고 하는 과정에서 내 생각은 객관화되고 조금 더 멀리 자신의 생각을 바라볼 수 있게 되면서 발효되고 숙성되곤 한다. 이런 과정은 글뿐 아니라 나 자신도 성숙시킨다. 그런데 글을 쓰고 나누어 읽을 동지가 있다면 어떨까. 동행이 있어 길고 더딘 글쓰기의 정이 즐겁고 신나는 여행되기도 하고 힘들 때에는 쉬어가는 편안한 안전기지가 되기도 한다.


글 쓰는 모임 안에서는 모두가 친구고 동지다. 그래서 미숙한 글을 꺼내놓을 용기가 생기가 생긴다. 그리고 계속 쓰는 것, 그것이 다인 글쓰기의 여정에서 동지와 굳은 약속을 한다. 일주일에 두번 꼭 글을 쓰기로. 그 소중한 약속을 지키려고 정해진 시간, 정해진 양의 글을 기어코 완성해내고야 만다. 그것이 바로 글쓰기모임, <라라크루>의 힘이다. 모임은 꽁꽁 숨겨둔 미발행 글을 탁탁 털어 펼치고 다듬어 기어이 끄집어낼 수 있게 하는 산파가 되기도 하고, 글쓰기의 고단함을 나누거나 미약한 글을 꺼내놓고 말할 수 있는 비빌언덕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다시 시작

5기부터 시작한 라라와 글쓰기의 여정은 잠깐 쉬었던 9기의 시간을 거치고 다시금 10기 여정의 출발선 앞에 와 있다. 바쁘고 힘들고 아프고 피곤하고 등등등~ 글을 못쓰는 다양한 이유와 상황을 물리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게 하는 라라의 힘"을 믿기에 토요일 아침 싸늘한 공기를 뚫고 한적한 커피숍 구석에 앉아 주저리주저리 장황하게 신청서를  있다.


다시 시작할게요.
 가늘고 긴 글쓰기의 여정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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