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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가의 꽃 Jun 30. 2022

징크스 부수기

  

어린 시절, 특정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날은 어김없이 좋지 않은 일이 생겨났었다.

내가 하지도 않은 일로 선생님에게 혼이 나고 벌을 받거나  친구들이 그날따라 나를 차갑게 대하거나 멀리하는 등등  매번 속상하고 슬픈 일이 일어났다. 그럼  옷을  입을 만도 한데  시절의 나는  엄마 말을 무조건 따르는, 하라면 하고 입으라면 입는 그런 착한 딸이었다. 엄마가  셔츠를 옷장 손잡이에 걸어놓은 날은 혹시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감을 속으로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서야만 했다.     나는 엄마에게 입기 싫다는  한마디도 못했던 걸까.  아마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성숙했던  같다.  옷을 입었던 날마다  내가 겪고 느꼈던  일과 감정들을 엄마에게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엄마는 내가 밖에서 별문제 없이  지내고 있을 거라고만 막연히 믿고 있을 텐데  엄마의  믿음을  저버릴  없었다. 그리고  내문제가 아니더라도 이미 마음과 머리가  복잡한 엄마의 심기를 건드려 혼이 나는 것이   두려웠던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부작용일까  지금의 나는 엄마가 내 옷에  간섭을 하거나  작은 지적만 해도 참지 못하고  불같이 화를 내며  분노를 쏟아낸다.  엄마는  내가 왜 이렇게 사소한 걸로  화를 내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결국 그때 하지 못했던 말을  비겁한 방법으로  복수하고 있는 심보 고약한  딸이 되어버렸다.

 

줄무늬 옷의 안 좋은 징크스는 교복을 입게 되며 자연스레 없어졌고 심지어 지금은 줄무늬 옷이 옷장 한가득 있는 스트라이프 마니아가 되었을 만큼 어른이 된 지금,  줄무늬 셔츠를 입어도 나에게는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다른 징크스가 나를 찾아왔다.

어떤 일을 열심히 하거나 특별히 기대하고 설레어하면 결국 그 일이 성사가 되지 않거나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가고 마는 그런 슬픈 징크스가 말이다.


특정 행동이나 물건에 대한 징크스라면 이제는  이상 착한 어린이가 아니기에  행동을 하지 않고  물건을 사용하지 않으면 그만인데 지금의 징크스는 해야  일을 열심히  해야 하거나  안되기를 바라야 하는 것일까?  라는 아이러니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바라지도 기대하지도 말고 행동하라' 이는 세상 모든 이에게  적용되는, 많은 현자들이 말하는 세상의 이치라지만 그 이치가 나에게 적용될 때는 받아들이기 힘든 법이다.


그렇다고 징크스를 언제까지 징크스로 남겨둘 수는 없기에 나는 징크스를 깨부수기로 결심했다.

그런 결심을 한다한들 내가 징크스를 정복하는 방법을 알리가 있을까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면승부, 계속해서 도전하는 것이었다.

잘되기 바라는 일을 시도하고 실패하고 또 도전하고 또 실패하며 그 간극들 속에서 그만해야 하나 아님 한번 더 해봐야 하나를 수백 번 고민했다. 자기 전에는 이제 그만해야 하지 하고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그래도 한번 더 해보자며 나를 다시 내던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수없이 주사위를 던졌고 어쩌다 한 번씩 내가 바라던 일이 성사되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그리고 그 과정들 속에서 이제는 매번 기대를  하기보다는 무의식적으로  그냥 하는 일,  아무 생각 없이 매일 하는 루틴이 되어버렸다.

 바라는 대로 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실패를 해도 괜찮고 잘되면 더 좋은, 될 대로 대라의 정신으로 징크스를 마주했다.

오늘도 나는 억수같이 퍼붓는 장맛비를 헤치며 그 징크스를 깨부수고 있는 중이다.


어린 시절의 줄무늬 옷도 어쩌면 더 자주 입으며 더 많은 일을 경험했었더라면 줄무늬 징크스도 생겨나지 않았을거라는 생각을 이제야 해본다.  내가 그날 다른 옷을 입고 갔더라도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나고야 말았을 텐데 말이다.


많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각양각색의 징크스를  그저 무서워  피하기만 하다 보면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의 더 많은 경험과 기회를 놓치고 말 것이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더 많이 경험하는 인생이 아무 경험도 해보지 못한 인생보다 우리를 더 단단하게 해 주리라 믿는다.


  굽이굽이 숨어 잇는 지뢰들을 밟지 않기 위해  두리번거리고 애를 태우며 살금살금 걸어가기보다는  일단은 과감히, 묵묵히 걸어가 려 한다. 징크스가  이상 징크스가 되지 않고 나를 훌쩍 성장시켜준 행운의 여신이 었다는 것을 아주  훗날 깨달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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