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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dro Nov 21. 2021

9. 개고생 시작

대리 1 퇴사와 업무 인수인계

8 글에서 설명한 대로 대리 1 선배가 퇴사하였다. 업무는 자연스럽게 나에게 넘겨졌다. 대리 1 퇴사하기 전 개발 중인 프로그램에 대한 구조  내용은  파악한 상태였기 때문에 기존 내용을 몰라서 업무를 이어나가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기존에 개발해 놓은 프로그램이 너무 허접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앞으로 추가해야  기능도 많이 있었다. 코드를 분석하면서 얻게 된 결론은 프로그램을  엎고 처음부터 다시 개발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이제  분야가 명확하게 있고  계획하에 주도적으로 일을   있게 되었다.


회사에서 나의 분야가 명확한 것(소위 말하는 구역)은 매우 중요하다. 내 업무의 경계가 불명확하거나 누구나 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라면 직장상사나 회사 상황에 의해 많이 휘둘리게 된다. 하지만 내 업무가 명확하고 로드맵이 명확하면 나의 일을 내가 계획해서 진행할 수 있고 직장상사도 크게 간섭하지 않고 믿고 맡기기 때문에 업무 스트레스가 많이 줄어든다. 물론 내가 맡은 과업을 문제없이 달성해야 가능하다. 따라서 내가 나를 잘 관리하면서 일을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프로그램 개발의 방향성이 명확해진 후 개발 로드맵을 구성했다. 그리고 이에 맞게 프로그램 개발을 시작했다. 이제는 부서장이나 대리 2의 괴롭힘이 크게 줄어들었다. 그분들이 시키지 않아도 눈에 불을 켜고 일을 했기 때문이다. 일에 가속도가 붙으니 개발이 재밌었고 내가 생각한 대로 결과가 나오는 것을 보니 수학 문제를 풀고 정답을 맞혔을 때의 기분 좋은 쾌감 같은 게 느껴졌다. 하지만 업무가 취미생활이 아니고 과제의 다른 업무와 엮여 있기 때문에 납기를 맞추기 위해 야근과 주말 출근이 일상이 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분위기 자체가 업무강도가 굉장히 높았던 시기였던 것 같다. 소위 말하는 과로사회였다. 1년 걸릴 일을 6개월 만에 해내는 것이 우리나라에 속한 우리 회사의 경쟁력이었다.


일에 가속도가 붙고 퇴사한 대리 1 선배의 프로그램에 비해 더 나은 퀄리티의 결과물이 나오기 시작하자 나를 보는 눈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에게 명확한 일이 없었을 때는 구박덩어리 정도였던 걸로 느꼈다. 하지만 결과를 내고 과제에 한 축을 담당하게 되자 별다른 터치 없이 지낼 수 있었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칭찬의 강도가 높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처음 입사 때의 허접한 태도와 겉모습을 보고 업무에 대해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쨌든 조직에 연착륙은 하고 있었지만 업무 강도는 점점 세지고 있었다. 그 당시의 나는 대부분의 에너지를 회사에 빼앗긴 것 같았다. 다른 일에 신경 쓸 여력이 별로 없었다. 퇴근도 9시를 넘기기 일수였고 집에 가면 그냥 곯아떨어져 버렸다. 그 당시 그렇게 업무에 몰두하며 배운 것은 한 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끈기를 배운 것 같다. 사실 그때 배운 기술은 지금은 그다지 소용이 없다. 단지 업무에 대한 태도를 그때 완성시켜 나가고 있었다. 일을 흐지부지하게 진행시키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매듭을 짓는 법을 배웠다. 어찌 보면 회사 생활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젊을 때 그러한 경험을 한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 회사 생활의 좋은 자양분 같은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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