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출처: 매일경제)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남들과 같아지는 것과 남들과 달라지는 것이다. 심리학 개념으로는 전자를 사회화(socialization)라고 하고, 후자를 개별화(individualization)라고 한다. 분석심리학을 만든 칼 융이 말했듯이, 인생은 사회화와 개별화의 시소게임이다.
크게 본다면, 인생의 전반부에서는 사회화가 더 중요하고, 후반부로 갈수록 개별화가 필요하게 된다. 다시 말해, 어릴 적에는 남들과 똑같아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누구든 여덟 살이 되면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하고, 2학년 1학기에는 구구단을 외워야 한다. 의무교육이란 그 나라 사람이라면 알아야 할 내용을 정해서 모두에게 똑같이 가르치는 것이다. 모두가 똑같은 것을 하고 있기 때문에 경쟁이 불가피하고, 그 경쟁에서 이기고 인정받는 것이 핵심이 된다. 따라서 사회화에서의 성공은 '잘한다'는 평가를 듣는 것이다.
하지만 대략 40대 중후반 정도부터는 개별화, 즉 남들과는 다른 자기만의 스타일과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 그런 개별화는 남들이 볼 때 좋아 보이는 것들을 모아 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되돌아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미 다 가지고 있다. 자기 성찰을 통해, 스스로도 미처 몰랐거나, 애써 감추었거나, 덜 사용했던 내면의 자원들을 하나하나 재점검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더욱 분명하게 만들고,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개별화의 성공지표는 '나답다'이다.
사회화와 개별화 관련해서, 2004년 가수 조용필의 콘서트도 좋은 예시가 되는데, 당시 콘서트 제목은 '나는 조용필이다'였다. 데뷔 몇십 주년 기념, 음반 몇백만 장 판매, 이런 거 없다. 그냥 나는 조용필이다. 당시 심리학자로서 참 멋진 표현이라고 생각했는데, 2013년 신곡 '바운스'가 히트했을 때 기자가 조용필에게 "가왕, 국민가수, 영원한 오빠 등 많은 별명들 중에서 뭐가 제일 좋은지"를 물었더니, 조용필이 답하기를 "그 호칭들에 다 감사하지만, 사람들이 조용필이라고 불러줄 때가 가장 좋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개별화의 정점이다. 그 정도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다움'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남과 같아지는 '사회화'
남과 달라지는 '개별화'
개인·기업·국가에 적용
기존에 있는 룰 안에서
보다 빨리 성공했다면
나다움 찾는 노력 해야
성장하는 회사 원하면
장단점·가치 등 파악후
구성원과 공유할 필요
이는 조직 생활에서도 유사하다. 입사해서 사원, 대리, 과장, 차장을 거치는 기간에는 사회화가 더 중요하다. 그 조직에서 정한 규칙, 프로세스, 매뉴얼을 남들보다 빨리 잘하는 것이 승진의 비결이다. 우리나라 대기업 기준으로 보자면, 팀장이 될 때까지는 사회화가 개별화보다 더 중요하다. 남들과 똑같은 것을 남들보다 빨리, 남들보다 잘하면, 그 자리에 간다.
하지만 팀장 이후의 시간부터는 상황이 달라진다. 그때부터는 사회화는 당연한 것이고, 오히려 남들과 다른 나만의 것을 만드는 개별화를 해야 한다. 팀장이 되어서도 여전히 사회화 게임을 하고 있다면, 다시 말해 계속해서 다른 사람과 다른 팀을 이기려고만 하고, 자신만의 존재 이유를 만들지 못한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왠지 모르게 피폐해진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사회화를 잘했던 사람일수록 개별화로 나아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뛰어난 사회화가 자신의 성공방정식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유효했던 방식을 바꾸는 것은 당연히 쉽지 않다. 하지만 지금 변화를 시작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남는 것은 쇠퇴뿐이다. 더군다나 우리는 부모님 세대와는 달리, 정년 이후에도 30~40년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 인생 후반전에 자신의 페이스를 잃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개별화를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사정은 국가도 동일하다. 후진국에서 중진국을 거치는 동안은 사회화가 중요하다. 다른 나라보다 빨리 잘하는 나라가 성공한다. 우리나라는 사회화를 엄청나게 잘해서, 후진국에서 단번에 선진국까지 달려왔다. 다른 선진국들이 최소 150년 정도 걸렸던 성취를 불과 30~40년 만에 이루었다. 최고의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였던 것이다.
본인이 속한 회사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회사는 사회화 단계에 있는가, 개별화 단계에 있는가? 여전히 외국의 퍼스트 무버(First Mover) 회사가 만든 제품을 쫓아가는 데 급급한지, 아니면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물론 업종에 따라, 업력에 따라 아직은 사회화 게임이 유효한 회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화 단계에서는 노동 시간의 양이 중요하다는 것을 고려해 보면, 개별화로 나가지 못하는 회사의 몰락은 불가피할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과 비교해서, 우리나라 노동 시간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회사들이 미래 전략과 신사업을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 차원에서의 개별화와 마찬가지로, 회사의 미래 전략 역시 최근 유행하거나 전망이 좋다고들 하는 아이템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회사만의 정체성을 정리하는 데서 시작한다. 우리 회사가 어떻게 성장했고, 잘하는 것은 무엇이고, 가장 힘들었던 상황은 언제였고, 반드시 지키고 싶은 가치가 무엇인지 등을 냉정하게 검토하면서 선택지를 줄여 나가야 한다.
방향이 정해지면 구성원이 한곳을 바라볼 수 있게 공유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그래야 속도를 낼 수 있다. 그렇게까지 해도 성공하기 어려운데, 다른 회사들도 할 수 있는 아이템을 경영층에서 숫자 게임으로 회의만 하고 있다면, 차별화는커녕 사회화조차 망가질 가능성이 높다.
개인이든 회사든 국가든, 사회화에서 나아가 자신만의 차별점을 만드는 여정은 결코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개인 차원에서도 최소 3~4년의 시간이 필요하고, 혼란과 시행착오도 불가피할 것이다. 그런데 개별화가 정체성에 기반했을 경우에만, 그런 시간의 시련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글은 트라이씨 심리경영연구소 공동대표 김도환 박사가 매일경제(숫자경쟁은 그만! 미래전략은 정체성 확립부터 [트라이씨 기업심리학] -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