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ADHD로 살아가며 겪는 일들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ADHD 자녀의 부모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우리 부부가 ADHD라는 것을 알지도 못했다. 자녀를 셋이나 낳고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갈 때까지도 우리는 꽤 오랜 세월을 모르는 채 살았다.
가장 먼저 진단을 받은 사람은 엄마인 나였다.
나를 시작으로 둘째 아들, 남편 그리고 막내가 ADHD 판정을 받고 치료를 시작했다.
그러한 현실이 갑작스럽지만 그리 놀랍지만도 않았다. 우리에게 있었던 수많은 시간들 속에서 모두 언급할 수 조차 없었던 해변의 모래알 같은 끝없고 까스름한 불편함들을 이제야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었기에 세상의 난제를 푼듯한 개운함마저 들었다.
다만, 내 삶에 드리워진 새로운 항로가 퍽 운이 없다는 생각이 가장 처음 스친 생각이라는 것은 꾸밈없이 인정하고 싶다.
나의 ADHD를 병이 아닌 하나의 나로 받아들이고 싶어 ADHD가 나쁘고 부정적이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하면서도 이것이 내 자녀의 일이 되었을 때는 완치시키기 위해 내가 할 역할들을 찾기 분주했다. 어떻게든 치료하겠다는 집념까지 생겼으니 내가 얼마나 간사한 사람인지도 알아버린 셈이다.
새삼스럽게도 진단명을 들으니 더욱이 들쑥날쑥한 감정과 생각의 범위가 고정되지 않고 더욱 날뛰는 듯했다. 내 뇌는 겨우 멜론 한 통만 한 곳에 있으면서 무엇이든 한계 없이 넘나드는 것이 뇌 속에서 빅뱅이 일어나 우주를 창조한 것만 같았다. 늘 그렇게 선을 넘었지만 진단명을 육성으로 들은 이후로는 봉인해제의 주문이라도 든 것처럼 정신없이 쉴 줄 모르고 튀어댔다.
세상의 물리 법칙을 벗어난 우주를 머리에 담고 산다는 표현은 내가 얼마나 ADHD가 스스로를 속일 만큼 버거웠던지를, 또 아이들의 상태를 덤덤한 척해나갔던 일도, 그러다 진정으로 덤덤하고 받아들인 줄 알았던 무수한 착각과 혼란함을 서투르게나마 내색할 수 있는 표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