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이 ADHD를 겪어온 역사를 시간순으로 적으려던 다짐은 가뿐히 증발했다.
쓰고 싶은 이야기를 먼저 쓰고 싶은 욕구가 강했는데 이를 무시하고 다소 지루했던 역사를 적자니 나의 첫 매거진을 끝맺음할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이 생겼다. 지루함과 하기 싫은 일을 참아 내는 일은 너무도 곤욕스럽다.
나와 케미가 잘 맞는 나의 단짝 둘째 아들은 나와 성향이 비슷한 부분이 있다. 갑자기 무언가에 몰두하면 깊게 몰입해 적당함이란 없는 부분과 승부욕이 강하다는 것, 궁금한 것은 못 참고 알아야 하는 성격, 시도 때도 없이 궁금하고 실험해 보고 싶은 마음까지도.. 우리는 참 닮은 점이 많다.
하루는 아들이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왔다. 초등 5학년인 아들과 친구들은 그 나이대가 그렇듯 게임이 아니면 집에서 그다지 재미를 찾지 못하는 것 같았다. 돌아가면서 게임을 하다가 한 녀석이 집안 어딘가에 굴러다니던 어디서 생겼는지도 모를 만큼 우리의 관심 밖이었던 큐브를 찾아 쥐었다.
색깔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상태로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큐브였다. 조그만 녀석이 저렇게 뒤섞인 큐브를 풀까 싶은 생각에 헛웃음을 지었다. 그 입꼬리가 채 내려가기도 전에 내 생애 처음으로 큐브가 맞춰지는 과정을 보게 될 줄 몰랐다.
큐브도 공식이 있다는 것은 어렴풋이 들었지만 사람들이 맞추는 모습만 보아도 영 도전하고 싶지 않게 복잡해 보였다. 내게 큐브는 아주 귀찮아 보이는 하찮은 장난감에 불과했었다.
큐브를 맞춘 친구에게는 조금 미안한 표현이지만
다 큰 성인이 되어서는 너처럼 작은 녀석도 푸는 데 내가 못 할 리가 없다며 그렇게 내 인생 첫 큐브 배우기가 시작됐다.
아들에게도 너는 친구가 푸는데 풀고 싶지 않냐며 우리가 손가락이 덜 있는 것도 아니고, 무식한 것도 아닌데 왜 못 배우겠냐며 잠자코 있던 아들에게까지 입김을 불어대니 역시나 팔랑거리는 아들도 나와 큐브 배우기에 합류했다.
그렇게 우리는 갑자기 무언가에 꽂히고 흥미를 느꼈다. 큐브를 안 배웠으면 이 시간에 무엇이라도 했을 테고 해야 할 일들도 분명 있었을 텐데 할 일은 미루고, 어떤 일을 할 것인지도 싹 잊어버리고 새로운 취미와 배움이 원래 계획이었던 것처럼 자리를 꿰찼다.
유튜브를 틀고 초급 영상부터 보기 시작했다. 재생하고 멈추고 뒤로 감다가 두툼한 엄지 때문에 조금만 뒤로 갈 것을 더 많이 뒤로 가기라도 하면 서로 답답함과 짜증을 내뱉으며 배우다가 잘못 맞췄을 때도 짜증이 가득한 투정을 괜히 부리기도 했다. 아들 녀석보다 더 빨리 이해하고 단계를 넘어가면 한껏 신나서 "알려줄까? 이해했어?" 하며 초등학생을 앞에 두고 허세 가득 즐거워했다.
아들 친구들이 가고도 큐브를 해가 질 때까지 배웠다. 순서가 외워지지 않아서 동영상을 다시 틀고 노트에 그림과 글로 적어 놓고 챈트까지 외워가며 꽤 그럴싸하게 맞추는 장면이 내게 나올 때까지 며칠을 그렇게 연습했다. 큐브에 빠지게 된 그날도 점심때 다녀간 친구들을 보내고 새벽까지 큐브를 쥐고 있었으니.. 우리의 충동성은 정말 서로에게 즐거움을 주지만 둘 중 하나라도 자제하는 쪽이 없으니 이게 우리에게 좋기만 한 걸까 의구심이 든다.
결국 아들과 나는 큐브를 맞출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어찌나 뿌듯하던지.
종종 나의 학생들이 선반에 올려진 큐브를 보고는
"선생님 큐브 막 섞어도 맞출 수 있어요?"
, "우리 엄마, 아빠는 한 면은 다 맞춰요!" 하는데
"선생님은 한 면이 아니라 여섯 면을 다 맞출 수 있지. 어떻게 섞어도 결국 다 맞출 수 있어." 라며 그동안 큐브 맞출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했던 숱한 일탈들은 쏙 감추고는 어찌 보면 참 얄미운 내 모습을 발견한다.
최근 일화가 큐브였을 뿐 우리는 참 많이도 고삐가 풀렸었다. 수학 문제 풀기로 승부욕이 발동해 둘이 평일 새벽 3시 47분까지 수학과 씨름하기도 하고, 스도쿠나 노노그램과 같은 수 퍼즐에 빠지기도 하고 보드게임에 푹 빠져서 한동안 전략 보드게임을 섭렵하느라 꼬박 하루를 허비하기도 했다.
갑자기 영어 말하기를 해보자고 하거나 갑자기 경제 공부가 중요해진 것 같아 뜬금없는 경제 학습을 하다가 비트코인, 주식, 세금, 부동산까지... 우리는 둘이 함께라면 어디든 날아갈 것 같이 무엇이든 즐기고 또 자주 바뀌면서 맥락 없는 일상을 보내는 것을 즐겼다.
어떤 엄마가 초등학생을 새벽까지 잠 안 재우고,
같이 놀기를 좋아할까 궁금하다. 아침에 둘이 못 일어나서 담임선생님 전화가 부재중에 찍혀있기도 하고 차마 선생님께 애만 못 일어나는 게 아니라 사실은 저도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부끄러워 고백하지 못했다. 이런 경험은 정말로 너랑 나 Adhd 모자인 우리만 겪는 것 같아서 자책했다가도 돌이켜 생각하면 우리의 그 무모함과 충동들은 우리를 난처하게도 했지만 오래도록 키득거리고 끅끅거리며 웃을 만한 추억으로 남았다.
요즘도 아들이 내게 자주 말한다.
다른 엄마들 하고 다르다고 엄마처럼 웃기고 새벽까지 재밌다고 무언가에 빠지고 아들을 이렇게 키우는 엄마가 어디 있냐고 그래서 그런 엄마가 좋다고 말이다.
이런 말이 내게 힘이 되지만 그런 즐거움도 평범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되새기면 남들이 다 지키고 살아가는 아주 작은 것조차 해내지 못하는 좌절감은 나를 아프게 만든다.
아침에 따뜻한 밥을 주고, 같이 등굣길도 걸어주는 다정하고 성실한 엄마가 되는 것은 큐브 맞추는 것만큼이나 사실은 더 간절한 바람이었다는 것을 너희들은 알까.
정말이지 될 수 없을 것 같은 꿈을 가진 채로
그것을 매일 이루고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사는 것은 매일 작아지는 나를 억지로 끌어올리는 씨름을 끝도 없이 하는 삶이라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