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얼마나 배려하는 사람인지를 알고 싶다면 '내가 얼마나 주위 사람에게 묻고 듣는지를 점검' 하라고 한다.
참 말이란 게 어렵다. 살아가면서 안 할 수는 없는데 이게 강력한 자산이 되기도 하면서 상대방을 찌르는 칼이 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말을 아끼는 성향이다. 극단적으로 말을 하는 것보다는 안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말 중에 정약용 선생께서 이런 말을 하셨다. 다만 글 안에서는 '말'이 아니라 '편지'다
편지를 한 장 쓸 때는 두 번, 세 번 읽어보면서
이 편지가 사통오달 한 번화가에 떨어져 나의 원수가 펴보더라도 내가 죄를 얻지 않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써야 하고, 또 이 편지가 수백 년 동안 전해져서 안목 있는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어도
조롱받지 않을 만한 편지인가를 생각해 본 뒤에야 비로소 봉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군자가 삼가는 바
항상 말이나 글을 쓸 때는 신중하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나는 완벽히 신중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가능하면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말을 정말 필요하다. 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이, 가까운 사이에 말을 하지 않아도 아는 것이 분명히 있지만 그것이 전부가 될 수는 없다. 특히 사회생활, 지인들과의 관계는 그렇다.
그래서 노수현 님의 책을 통해 말의 민주주의를 실현해보고자 한다.
1. 퍼실리테이터의 존재
생소한 개념이다. 굳이 정의를 하자면 '대화나 토론을 지휘하는 사람'으로 볼 수 있다. 더 세부적으로는 토론 전부터 참여자들에게 어떤 멍석을, 어디에, 얼마만큼 깔아줄 것인가를 먼저 고민하고, 참석자들이 약속된 절차에 따라 참여와 소통을 통하여 논의를 전개하도록 모임의 모든 과정을 기획하고 관리하는 사람을 말한다.
리더는 퍼실리레이터가 될 필요가 있지만 퍼실리레이터가 리더일 필요는 없다.
2. 말의 독재자와 말의 사기꾼 통제
어딜 가나 '호사가'는 있다. 이미 내가 부정적인 의미로 말해버렸지만, 그들은 훌륭한 아이스브레이커이자 기꺼이 광대를 자처한다. 하지만 그뿐이다. 어느 정도 모두가 친해지고 나서는 모두가 어색했던 처음의 그 역할을 고마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편해한다.
그래서 반드시 말의 독재자는 통제받아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이다.
대화의 규칙 분명하게
규칙을 제시하여 따르도록
시간 통제
(끝내 안될 때) 말 자르기
어찌 보면 애석하지만 건강한 대화는 모두가 말하는 것이다. 유창할 필요는 없다. 자기 이야기를 담백하게 하면 된다.
3. 시공을 초월하는 경청
진부할지 모르겠지만 잘 들어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눈으로 잘 들어야 한다. 교육 방식이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남이 얘기할 때 듣지 않고 내가 할 말을 준비한다. 우리는 그렇게 컸다. 잘 들었다는 것은 내가 잘 말하는 것이 되어 있다.
말의 민주주의는 이렇게 말한다.
듣기와 경청의 차이는 집중력에 있다. 들으면서 다른 생각을 하거나 내가 할 말을 준비하고 있다면 ‘듣기’다. 경청은 상대에게 오롯이 집중한다. 고도의 집중에 내가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너무 집중한 나머지 시간과 공간이 사라진다.
경청은 그래서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 이해가 필요하다. 이제는 더 이상 말하는 사람도 상대방이 말이 없음에 재촉하지 않아야 한다. 그는 너무 경청한 나머지 다음 말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말을 하나의 무기로 하는 사람과의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은 쉽지 않다. 그들은 말을 잘한다는 의미를 '임기응변에 능하다'로 착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말의 민주주의를 지켜 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든다. 이미 시작점부터가 다르고 그들은 말을 말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의 무기이자 기술이다. 그런 사람들과의 민주주의가 가능할까라는 생각을 한다.
세상에는 나쁜 의미(?)로 말을 막하는 부류가 있다. 하나는 정말 대화 중에 말을 점유하는 말의 독재재, 다른 하나는 말을 하나의 무기로 활용하는 말의 사기꾼이다.
사기꾼의 말은 독재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말의 정의와 그들이 생각하는 말의 정의는 엄연히 다르다. 말로써 사람을 속이고, 말로써 사람을 홀린다. 그것이 본인들의 자랑이자 무기이다. 안타까운 점은 우리 사회가 그렇다는 것이다. 그 상황에서 미꾸라지처럼 얼마나 잘 벗어나느냐가 그 사람이 ‘말’을 잘하느냐 아니냐에 갈라진다. 말을 임기응변에 집중하면 한 없이 가벼워진다. 종국에는 본인이 본인의 말에 매몰된다.
우리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조금만 모두가 조금씩만 말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일 수 없을까. 아니면 말을 한마디씩 줄여보는 것은 어떨까. 경청하는 마음.. 듣기가 아닌 경청을 하면 스스로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지 않을까.
우리는 상대방이 말하는 동안 너무 많은 생각을 한다. ‘경청’이 아니라 ‘듣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다음 말을 준비하고 고민한다.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마냥 들어주는 것이 그렇게 힘들까. 현명하고 명석한 게 뭘까. 듣고 바로 받아치는 것?
듣고 또 가만히 정적을 가지는 것이 말, 그리고 말의 민주주의가 아닐까.
우리 모두 말을 준비하지 않고 경청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