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신 편향, 금융시장의 가장 큰 시스템적 리스크
내 책 <퀀트의 정석> 에필로그 부분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우선 1980년대 이후 과거 40년간의 기간 동안 글로벌 경제는 지속적인 금리 하락 기조를 경험했었다. 이러한 금리 하락 기조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높은 자산의 실질수익률을 제공해주었는데,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자산 가격 결정 원리의 분모에 할인율, 즉 금리가 위치해 있기 때문이며 이 분모가 40년 동안 지속적으로 낮아져왔다는 사실은 자산을 보유하기로 결정한 시점보다 할인율이 더 많이 하락하여 자산의 밸류에이션이 증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러한 금리 하락 기조가 끝이 나면서 이제는 더 이상 금리 하락으로 인한 밸류에이션 상승의 추가적인 순풍 효과를 기대하기가 어려워진 상황이 되었다. 더군다나 시계를 좀 더 넓혀 과거 100년간의 금리 추이를 살펴보았을 때 우리가 경험했던 최근 40년간의 금리 하락 기조는 사실 매우 특수한 경우에 불과했다. 다시 말해, 40년 동안의 금리 하락 기조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 예상하는 것은 전형적인 '최신 편향의 오류'라는 의미이다. 실제로 1940년부터 금융시장에 몸을 담갔던 사람이라면 이후 40년 동안 금리가 계속 오르기만 하는 상황을 지켜봐야만 했을 것이다.
- <퀀트의 정석> 中
실제로 아래의 그래프를 보면 '밀림사자'식 스타일의 채권 투자 방식이 얼마나 편향된 시각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최근 40년은 금융 역사 전체 기간 중 자산 가격이 역대급으로 가장 많이 상승한 시기였다. 지난 100년간의 기간 중에서 전통적인 주식-채권 (60/40) 포트폴리오의 상승분 중 무려 91%가 1984년부터 2007년까지, 즉 단 22년 동안에 발생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전통적 포트폴리오가 사실은 그렇게 전통적이지 않다는 의미다. 이러한 전통적 포트폴리오야말로 대표적인 최신 편향의 산물이다.
결국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것이 모든 시대에 걸쳐 통하는 보편적인 진리라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우리가 다른 세대에 살았더라면 우리는 위험 자산에 대해 완전히 다른 감정적 성향을 가졌을 수도 있다. 역사상 중요한 시장 움직임의 이면에서 그 당시 사람들은 어떤 감정의 변화를 겪었을지 상상해 보자.
가령 당신이 1945년을 살고 있는 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라고 생각해 보자. 만약 그 당시의 환경과 입장에 처해있다면, 당신은 금융시장을 그저 실패할 수밖에 없는 도박처럼 느꼈을 것이다. 당신의 부모님은 1930년대 대공황으로 인해 부동산을 포함한 모든 것을 잃었고, 주식 시장은 지난 십몇 년간의 손실을 아직도 회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그 당시 금리는 거의 제로에 가까웠기에 채권 시장 또한 기대수익률이 매우 낮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산배분이라는 것이 의미가 있었을까? 언감생심이다.
# 금융의 역사를 배울 것
모건 하우절의 <돈의 심리학>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우리에게 이 문제가 쉽지 않은 이유는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하고 마음을 열어도 공포와 불확실성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갖는지 제대로 재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공황기에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게 어떤 뜻인지 책으로는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일을 실제로 겪은 사람들에게 남은 정서적 흉터는 나에게 없다. 그리고 그 시대를 직접 겪은 사람은 나 같은 사람이 왜 주식을 보유하고도 무사태평해 보이는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 다른 렌즈를 가지고 세상을 본다.
- <돈의 심리학> 中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갈 수 있다면, 나는 1930년대 대공황 시절로 돌아가 그 당시 매우 참혹했던 경제 상황을 직접 목격하고 싶다. 1929년 말 검은 목요일로 인해 촉발된 경제 대공황은 3년간의 기나긴 하락장을 만들어냈고, 심지어 30포인트였던 지수는 5포인트까지 하락해 무려 -80%가 넘는 손실을 기록했다. 직접 경험해 보지 않는 한 우리는 꿀꿀이죽을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던 그 당시 사람들의 비참함에 절대로 동감할 수 없다. 그렇기에 워런 버핏 할아버지가 직접 경험했던 자그마치 90년이 넘는 세월은 그래서 그 어떤 것보다 값어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제대로 된 투자를 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바로 금융사(金融史)에 대한 깊은 공부를 하는 것이다. 역사를 계속 반추하면서 우리는 간접적으로나마 역사를 오롯이 느끼려 해야 하며, 또 그 흐름을 짚어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우리는 미래가 어떤 방식으로 펼쳐질지 절대로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 옛날부터 지금까지 전개되어온 금융의 역사, 돈의 역사를 통해 역사가 계속해서 비슷한 패턴을 반복적으로 보여주었다는 것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
물론 누군가는 이미 세상은 바뀌었으며 인류는 과거보다 발전했기 때문에 과거 같은 위기는 미래에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을 과연 장담할 수 있을까? 설사 그러한 주장에 대한 믿음이 99%라고 하더라도 오직 1%의 발생에 의해 모든 것을 날릴 수 있는 곳이 바로 금융시장이다. 금융시장은 사건의 발생 확률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그로 인한 영향의 폭이다. 금융 역사에는 이미 6-시그마 이상의 사건들이 숱하게 기록되어 있다. 발생하지 않더라도 그것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유념에 두고 대비를 해놓아야 한다. 이미 발생했다면 그땐 이미 늦었다. 그리고 장담하건대 앞으로도 그런 사건들은 당연히 발생한다. 나는 체계적인 실수를 반복하는 인간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다.
# 100년을 생존하기 위한 투자의 원칙
문제는 우리 세대가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이 극에 달하는 시장을 아직 경험해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그러한 극적인 상황에 대한 면역체계가 우리 안에는 아예 자리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40년 동안 누적되어온 최신 편향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해진 시스템적 위험이며, 이러한 최신 편향의 영향은 앞으로 점점 더 명확해질 것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등장은 이에 대한 예고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참고로 안티 일마넨의 명저 <과거의 검증, 미래의 투자>를 읽어보면 이러한 최신 편향에 대해 매우 강조하고 있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자손들에게 1조라는 거액을 물려주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해 보자. 당신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이 펀드가 100년 동안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도록 투자 지시를 내리는 것이다. 10년이 아니다. 100년이다. 그렇기에 만약 최신 편향에 기반해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린다면 이 펀드는 향후 100년이라는 기간 동안 존속할 수 없을 것이다. 100년이라는 기간에는 안정적이 경제 성장 사이클도 있지만 디플레이션 시기와 인플레이션 시기, 그리고 경제 성장이 없는 인플레이션, 즉 스태그플레이션 시기도 모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최신 편향을 극복하고 10년이 아닌 100년을 생존하고 번영하는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답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다시 과거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다만 이제는 역사가 아니다.
바로 고대의 신화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