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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kMD Sep 28. 2020

기억이란 무엇일까?

신경외과 의사와 함께하는 교양 신경과학 (1)


전혀 동떨어진 듯 한 질문을 먼저 하나 해 보겠다.


시간이란 무엇일까? 지금 이 순간이란 무엇일까?


너무도 쉽고 당연해 보이는 이런 개념들에 대한 질문은 막상 대답을 하려면 각 분야의 최신 지식과 철학적 고찰까지 총동원을 해도 쉽지 않은 경우가 참 많다. “시간” 이란, 그리고 “지금” 이란 무엇인지 설명해내기 위해, 열역학 제2법칙,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폴 디렉의 반물질, 리처드 파인만의 시간을 역행하는 양전자, 초끈이론에 다중우주 이론까지 총동원을 하여 고찰했던 “나우: 시간의 물리학” (UC 버클리 물리학과 교수인 리처드 뮬러가 썼다)이라는 책을 물리학 공부를 엄청나게 많이 하면서 올해 초에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그리고 최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TENET” 이 개봉했는데 매우 흥미롭게 관람했다(사실 두 번 봤다). 엔트로피의 화살을 거꾸로 돌린다는 기가 막힌 발상으로 (한계는 명확해 보였지만) 즐거운 지적 유희를 만끽하게 해 준 영화라 생각한다.


재밌게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데뷔작은 아마 많은 분들이 알고 있을 “메멘토”라는 영화다. 여기서 주인공은 양측 해마가 선택적으로 파괴되어 일정 시간 이상 생각과 기억을 유지하지 못하는 설정으로 나온다. 너무 영화적 설정이라 생각하는가? 실제로 H.M (1926 ~ 2008)이라는 인물이 1953년도에 27세의 나이에 약물로 치료되지 않는 뇌전증에 대해 양측 해마를 포함한 측두엽 절제하는 수술을 시행받았고, 그 후로 메멘토의 주인공과 정확히 같은 증상을 보였다. 이 환자는 본인이 의지로 연구 대상이 되어주기로 자원하였고, 수잰 잰코 박사를 중심으로 한 연구진들은 약 46년간 H.M과 함께 기억에 관한 수없이 많은 다양한 연구를 시행하였다.  환자의 신원은 철저히 비밀로 지켜졌는데, 2008년에 82세의 나이로 사망한 후에야 본명이 Henry Molaison 이라는 것이 알려졌다. (사실 내가 신경외과 의사로서 시행하는 주요 수술 중 하나가 저렇듯 약물로 조절되지 않는 뇌전증 환자의 간질 병소를 제거하는 것이고, 인관 뇌를 연구하는 신경과학자로서의 주 연구 대상이기도 하다.)


자, 그럼 기억이란 무엇일까? 이 글을 더 읽기 전에 스스로 머릿속으로 한 번 대답해보길 바란다.


기억에 대한 개념을 잡기 위해 기억을 몇 가지로 분류해보겠다.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으로 나뉜다. 단기기억 중 하나는 작업기억 (working memeory)인데, 작업기억이란 컴퓨터의 RAM과 같은 것으로, 대뇌의 배외측 전전두피질(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 dlPFC)에서 담당하며 동시에 7개 정도의 단어 까지만 기억 가능하고 장기기억으로 저장되지 않으면 지워진다. 장기기억 외현기억내현기억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외현기억(= 명시적 기억, explicit memory, 선언기억, declarative memory)과 내현기억(=암묵적기억, implicit memory, 비서술기억, non-declarative memory) 으로 나뉜다. 여러 표현으로 불리지만, 직관적으로 외현 기억은 우리가 기억을 한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기억이고, 반면 내현기억은 무의식적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외현기억은 다시 일화기억, 의미기억 으로 나뉜다. 일화기억(episodic memory) 이란 측두엽 안 측에 자리 잡은 해마(hippocampus)에서 담당하며 어떤 장면시간의 순서에 따라 자동으로 저장되는 기억이다. 의미기억(semantic memory) 이란 대뇌 연합 피질에 저장되며, 일화기억 중 공통적으로 반복되는 패턴을 인식해서 그 패턴에 의미를 부여하고 언어를 이용해 상징적으로 부호화하여 해마에서 대뇌 연합 피질로 이동한 기억이다. 내현기억감정기억(감정이 결합된 기억), 절차기억(몸이 기억한다는 표현), 고전적 조건화(파블로프의 개) 점화(=priming, 어떤 기억의 단서가 주어졌을 때 자동으로 전체 기억이 완성되어 출력되는 것) 등이 포함된다.


자 그러니 저 메멘토의 주인공과 H.M은 해마가 파괴되어 새로운 일화기억을 생성해내지 못한다. 의미기억의 생성 역시 새로운 일화기억에서 공통 패턴을 추출해서 의미화하는 것이다 보니 새로운 의미기억도 생성해내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작업기억과 기존의 의미기억들은 보존되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그럼 어떤 상황이 연출되느냐? 이런 사람은 평생 “현재”에 갇히는 저주에 걸리게 된다. 평생을 양측 해마가 파괴되기 적전 상태의 기억에 머물러야 했던 H.M의 예를 들어보자. 그는 27세의 나이에 수술을 받고 깨어났고 82세의 나이까지 생존했다. 하지만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자신은 27세라고 생각하며 거울을 보았을 것이고 나이가 들어버린 거울 속 자신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고 누군가 처음보는 인물이 다가와 (실제론 수십 년간 함께 여러 실험을 진행하고 있눈 수잰 코킨 박사 등의 연구원이었지만) 자신들을 소개하고, 현재 본인이 처한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듣고 또다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일들을 죽을 때까지 반복했을 것이다. 다만 내현기억은 정상이므로 왠지 모르게 처음 보는 수잰 박사가 낯이 익고 괜히 반갑고 (감정기억), 분명 처음 해보는 동작인데도 익숙하게 잘 해낸다는 것을 (절차기억) 알게 되었을 것이다.


자 본인이 이 글을 읽기 전에 생각했던 “기억” 과 실제 기억의 작동은 비슷한가? 아마도 전혀 다를 것이다. 기억이 이렇게 세분화되어있고 뇌의 각 분야에 걸쳐 나눠져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절대 알 길이 없었을 것이다. 눈치챘는가? 그렇다. 이러한 내용들은, 이 H.M 이라는 환자와 약 46년간의 연구를 진행하면서 알게 되고 정립된 신경과학 안의 “기억”이라는 한 분야의 학문이다. 자 그럼 다시 제일 처음 던졌던 동떨어진 듯 보였던 질문을 해보겠다. 인간에게 시간이란 무엇일까?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무엇이고, 지금을 기준으로 과거와 미래라는 개념은 무엇일까? 그렇다. 인간에게 만약 기억이라는 것이 없었다면 H.M 에서 볼 수 있듯이 시간은 멈춘다. 엄밀히 말하면 시간은 흐르지만 기억이란 것이 없는 동물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개념을 가질 수 없다. H.M 은 새로운 일화기억과 의미기억의 생성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에 그에게 시간은 더 이상 흐르지 않고 멈췄다. (만약 태어날 때부터 기억을 가질 수 없었다면 처음부터 시간은 흐르지 않았을 것이다.)


자 인간에게 있어 시간의 흐름은 기억이 있어야만 의미를 가질 고 지각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외현기억이 있어야 한다. (작동기억은 아주 잠시 존재하였다 사라진다. 우리는 작동기억을 다른 말로 “시공간 스케치패드”라고 부른다. 만약 장기 의미기억이 없이 작동기억만 존재한다면 메멘토의 주인공이나 H.M과 같이, 작동기억이 존재하는 시간 동안은 짧게나마 시간의 흐름을 지각할 수 있겠지만 작동기억이 사라짐과 동시에 그 흐름을 상실하게 된다.)


외현기억 중에서도 장기적으로 저장이 되는 의미기억을 생성해야 한다. 그렇다면 의미기억이 있으려면 무엇이 있어야 하나? 의미기억은 공통 패턴에 의미를 부여하고 언어를 이용해 상징적으로 부호화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다 언어가 필요하다. 지구 상에 인간 외 언어를 지닌 생명체가 있는가? 침팬지와 고릴라 등에게 언어를 가르치려는 시도는 있어왔고 가장 성공적이 예로는 9개월 때부터 기호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 lexigram을 이용해 교육을 시켜 꽤 많은 조합을 만들어 인간과 의사소통을 했던 보노보 침팬지인 칸지, 그리고 비슷한 방식으로 언어를 학습시키려 시도했던 침팬지 (위대한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의 이름을 패러디한) “님 침스키” 등이 있었으나 아주 특이한 케이스였고 그 마저도 크게 성공적이진 못했다. 자 소름 끼치지 않는가? 언어가 있어야 기억을 가진다. 기억이 있어야 시간의 흐름을 가진다. 시간의 흐름을 가져야 “현재” 의 저주에서 벗어나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예측하며 다양한 활동들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유일하게 그것이 가능한 것이 현 인류이다. 실제로 많은 학자들은 현생 호모 사피언스 종이 네안데르탈인보다 더 잘 생존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차별점을 이 “언어”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해 한 때 “언어 유전자”로 불렸던 “FOXP2” 유전자와 이 인류에 대한 재밌는 썰들이 많았다. 언젠가 한 번 다루어 보도록 하겠다.)


그럼 동물들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그렇다. 그냥 현재에 충실하다. 눈 앞의 먹이가, 그리고 생존이 가장 중요하다. 위험한 것은 반드시 피해야 하므로 내현기억으로 공포, 고통 등의 감정과 결합하여 기억하고, 먹이 등의 보상은 고전적 조건화를 이용하여 학습한다. 그렇다 동물은 시간이라는 개념 없이 (있다 하더라도 작동기억과 일부 일화기억을 통하여 매우 약한 지각만 하며) 현재에 충실하며 살아간다. 그러니 현재의 작은 보상보다 미래의 큰 보상을 선택할 수도 없고, 중-장기 계획이라는 것을 수립할 수 없다.


자 너무 이야기가 길어졌다. 마지막으로 정리해보자.


H.M 덕에 기억에 대한 많은 학문적 발전과 정립이 있었고, 외현기억내현기억으로 니뉘고 외현기억은 다시 일화기억, 의미기억 으로 나뉜다.  의미기억을 저장할 수 있어야 과거, 현재, 미래의 흐름을 지각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기억을 가지려면 언어가 필요하다. 인류는 지구 상에 언어를 가진 유일한 생명체이다. 다른 동물들은 외현기억 중엔 약한 수준의 일화기억, 작업기억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내현 기억을 생존을 위한 주 기억 메커니즘으로 삼고 살아간다. 그래서 내현 기억은 동물의 뇌이고 생존에 직결되어 있다. (이는 인간에게도 다르지 않다. 내현 기억에 대해서는 외현 기억만큼이나 다룰 내용이 많고 생각해볼 만한 주제들이 많아 “반려 좀비”라는 귀여운 표현을 써서 추후 따로 다루도록 하겠다.) 따라서 지구 상에서 인류만이 시간의 흐름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계획하며 살아간다. 언어와 기억, 이를 통한 시간에 대한 지각. 이것이 인류가 지구의 정복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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