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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꽃 Mar 27. 2023

견주는 아무나 하나

견주의 자격


햇살이 좋은 오후 시간, 집 앞 개천길을 걷는다. 

동네에서 제일 큰 공원까지 이어진 개천길은 개나리와 벚나무가 늘어선 소박하지만 나름 아름다운 길이다. 다른 길로 건널 것도 없이 앞만 보고 1시간 조금 넘게 걷다 보면 구름다리가 있는 공원이 나오고 공원까지 돌다 보면 2시간은 너끈히 걷기 운동이 가능한 코스다.

나는 이 길을 강아지들과 함께 걷기도 하고 혼자만의 운동길로 걷기도 하는데 요즘 이 개천길이 불편해지고 있다. 기분 좋게 나선 산책길에서 보고 싶지 않은 것과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보고 싶지 않은 그것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강아지들의 배설물. 그리고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아름다운 산책길을 강아지들의 공중화장실로 만드는 사람들이다.

나도 강아지를 2마리나 키우고 있는 반려인이지만, 기본을 지키지 않는 반려인들을 만날 때마다 부끄럽다. 


며칠 전에도 냄새를 맡다가 뱅뱅 돌면서 볼일 볼 곳을 찾는 강아지 보다 더 전전긍긍 불안한 몸짓을 하는 견주를 보았다. 중년의 여성은 본인의 진돗개가 개천 산책길 길가에 볼일을 보는 동안 주위를 둘러보며 슬쩍 개를 몸으로 가렸다. 반대편에서 걸어가던 내가 신경 쓰였는지 연신 내쪽을 살피더니 아니나 다를까, 배설물을 치우지 않고 그냥 가버렸다. 


도대체 왜 그럴까?

물티슈에 배변봉투 한 장 준비해서 나오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아주 기본적인 책임조차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 견주에 자격이 있을까?


얼마 전, 독서 모임에서 반장님이 옆집 강아지들의 밥을 챙겨주게 되었다는 말을 했다. 옆집 아저씨의 건강악화로 부부가 집을 비우게 되어 강아지들이 꼼짝없이 좁은 울타리 안에서만 지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강아지들이 안쓰러운 마음에 이웃 부부의 허락을 받고 사료와 물을 챙기고 산책까지 시키며 지금까지 일주일 동안 함께 하고 있다. 그녀는 강아지들을 본인이 입양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신중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새로운 생명을 가족으로 맞이한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강아지들과 함께 살고 있는 나는 그녀의 의견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동물을 입양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 아닌 진지한 고민을 바탕으로 결정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가만히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개천가에서 반려견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고 그냥 가버린 중년여성이 다시 생각났다. 그 중년의 여성은 준비된 자세로 강아지를 가족으로 맞이한 것이 맞을까? 그냥 예뻐만 한다고 끝이 아니다. 내 강아지는 내 강아지니까 예쁜 것이다. 남들도 모두 예뻐할 거란 생각은 착각이다. 더군다나 배설물도 치우지 않고 가버리는 모습을 보며 누가 예쁘다고 좋게 볼까...

내 강아지가 남에게도 예쁜 강아지가 되기를 바란다면 견주가 견주다운 자격을 갖춰야 한다. 


만약, 견주의 자격을 따진다면 남의 강아지지만 밥과 물을 챙기며 산책을 시키고 배설물을 치워주는 '그녀'와 예쁜 내 새끼를 시전 하지만 산책길을 공중화장실인양 반려견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는 그녀 중 누구에게 자격이 있다고 할 것인가...


누군지 알지 못하지만 개천가 중년여성 그녀에게 몇 마디만 하고 싶다.


< 도망간 그녀에게! >


인터넷에 검색하면 배변 봉투 입맛에 맞게 고를 수 있어요.

원색, 파스텔톤, 투톤컬러 등등 마음대로 고를 수 있죠.

봉투 재질도, 크기도 모두 선택가능해요.

한 박스 세트로 한 번 구매하면 몇 년을 너끈히 사용한답니다.

우리가 자녀를 키울 때 길가에 아무렇게나 싸고 다니라고 가르치지는 않잖아요?

동물은 말을 알아듣기 힘드니 보호자인 '내'가 처리해줘야 해요.

그걸 모르는 건 아니죠?

그때 저랑 눈 마주쳤을 때 조금은 뜨끔하고 창피했죠?

이제, 보호자 다운 보호자가 되세요.

진정한 견주가 되세요.

내가 책임을 다하고 예의를 지킬 때 나의 강아지가 더 사랑받는답니다.


즐거운 산책길.

그 길 속에서 슬쩍 도망가는 사람보다 멈춰 서서 치우는 사람을 더 많이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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