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랑꽃 Sep 07. 2023

달려라, 허니!

아직은 몸도 마음도 달려야 해

남편의 곡소리가 들린다.

앉고 일어설 때마다 '어후, 어으윽!' 소리를 내는 남편을 안쓰럽게 바라보다가도 어쩔 땐 그 소리가 제일 듣기 싫다. 좋은 소리도 한두 번이라는데 곡소리가 계속 좋게 들릴 리가 없다.


20년 전에 크게 다쳤던 왼쪽 무릎 아래뼈가 말썽인 것 같다. 남편은 40대까지 다친 무릎 때문에 아프다는 말이 없었는데 50세가 넘어가며 곡소리로 아픔을 표현하고 있다.


"병원에 가 봐야지."

내 말에도 꿈쩍하지 않고 다리에 무릎 보호대를 칭칭 감고 절뚝이는 남편이 밉상으로 보인다.

"아니, 병원을 가야지, 보호대가 무슨 의미인데?"


뾰족한 말을 뱉어내도 소용이 없다. 며칠 동안 앉고 설 때마다 신음소리를 내던 남편이 버티다가 안 되겠는지 어느 날, 회사에서 조퇴를 하고 집으로 왔다.

"나, 병원 다녀올게!"

일주일 넘도록 '병원 가라'는 말을 듣지 않던 남편이 얄미워 다녀오란 말도 하지 않았다. 


다리를 다친 후, 축구는 남편이 가장 싫어하는 운동이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축구를 싫어한다기보다 부담스러운 운동이 된 것이다. 그래도 예전에는 지인들과 가끔 축구와 볼링을 치면서 여가생활을 했는데 요즘은 그런 모습을 보기 힘들다.


이제는 몸이 편한 게 제일 좋다면서 누굴 만나는 것도 귀찮다고 하는 남편. 그런 남편이 가장 활발하게 움직일 때는 강아지들의 산책시간이다. 

이 시간에는 활발함과 동시에 혀가 짧아지는 기적도 일어난다.


"아고~ 우리 아기들 됴아요? 너무 됴았떠요?"

혀 짧은 소리를 내며 신나게 뛰다가도 이내 '아이고'소리를 내며 천천히 걷는 남편을 볼 때면 마음이 참 아프다. 혀가 짧아지는 기적은 찾아와도 아픈 무릎이 낫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달려... 달려야 해 나의 허니!'

항상 애절하게 마음속으로 외칠뿐이다.


병원에서 남편이 돌아왔다.

뼈에 이상은 없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서 다친 부분에 통증이 생기는 것 같다는 진단을 받고 소염, 진통제를 처방받아 왔다. 


남편은 바로 약 봉투 한 개를 뜯어 입에 털어 넣었다. 물을 한 모금 머금고 약을 삼키던 남편이 갑자기 '컥컥' 소리를 낸다. 깜짝 놀라서 쳐다보는 나에게 남편은 알약 하나가 잠깐 목에 걸렸었다고 하면서 멋쩍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참 슬프다.

인터넷 어떤 글에서 나이 들수록 아래 괄약근이 풀어지는 것 같아서 고민이라는 글을 봤었는데, 남편을 보니 식도는 그와 반대로 좁아지나 보다. 잘 삼키던 알약도 튕겨내는 걸 보니...


아직은 달려야 하는 우리인데...

아직은 멈출 수 없는 우리인데...

흐르는 시간 속에 조금씩 약해지는 육체가 야속하다.


자기야, 우리 조금만 더 힘내서 달리자!

건강하게 오래, 오래 함께 달리자!

지금까지 힘든 일, 괴로운 일 모두 버티고 지금까지 달려왔던 것처럼, 조금 더 힘내자!

달려라! 달려라, honey!


일주일 정도 약을 먹고, 열심히 찜질을 한 덕분인지 남편의 다리가 한결 좋아졌다. 육체의 다리는 아플지라도 세상을 헤쳐나가는 의지의 다리는 멀쩡하니까 우리는 계속 함께 달릴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다행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몇 미리 넣으신 거예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