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도 소녀였던 시절이 있었겠지#21
서서히 가을로 접어들어가는 요즘 저녁에는 선선하게 바람이 불지만
아직은 팔월의 여름이어서 그런지 선풍기 없이 자는 건 힘들더라고.
유월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내 방에 있는 흰색의 아담한 선풍기는
아침저녁으로 하루 종일 쌩쌩 돌아가느라
덮개와 날개 사이사이에 먼지가 가득하게 쌓여있어.
지나가면서 문득문득 뽀얗게 쌓인 먼지들이 눈에 거슬려서
'아 저 먼지들 언제 한번 날 잡고 닦아줘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항상 들었지만
사실은 한 달 전부터 매일매일 생각만 했었지
생각만으로도 귀찮은 일이어서 거슬린 채로 그냥 놔두기에 바빴어.
오늘도 아무 생각 없이 밖에 나갔다가 집에 와서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선풍기를 틀려고 보니깐
거슬리도록 뽀얗게 쌓여있던 먼지들이 어디 갔는지
거슬리는 거 하나 없이 광이 나게 닦여있는 거야!
이런 일을 할 사람은 우리 집에 한 사람밖에 없지..
확신을 가지고 할머니께 물었어.
"할머니 내 방에 있는 선풍기 할머니가 닦아준 거야?"
아니나 다를까
"맞다! 보니깐 선풍기에 먼지가 너무 쌓여있어서 아까 낮에 닦아놨다."
역시 우리 집에는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요술할머니가 있다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