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이란.
시간은 누구에게나 24시간이 주어진다. 잠을 자는 시간, 아이들을 돌보는 시간, 장 보는 시간, 집안일 하는 시간, 직장일을 하는 시간 등을 제외하면 순수하게 나에게 돌아오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책을 읽는 것은 편안하게 앉아 멍한 상태로 임할 수는 없는, 고도의 사고력과 집중력을 요구하는 행위이다. 그렇기에 한 권의 책을 읽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실로 꽤 크다. 같은 내용의 작품이라 하더라도 영화로 보면 두 시간 남짓이면 볼 것을, 책으로 보게 되면 이삼일 적어도 일주일, 누군가에게는 한 달이 넘는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안 그래도 바쁜 우리의 삶 속에서 정말 희소한 이 시간, 책을 읽는다면 아무거나 읽어도 되는 것일까? 아니다. 나에게 의미 있는 책을 찾아야만 한다. 내가 처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책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면, 읽는 행위를 거쳐 변화하는 내 삶을 목격하고 싶다면 그 책은 ‘좋은 책’이어야 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저서 <월든>에서 독서를 잘하는 것, 즉 참다운 책을 참다운 정신으로 읽는 것은 고귀한 운동이라고 언급하며 독서의 중요성을 설파하면서도, 좋은 책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벼운 읽을거리’로 지적 능력을 소모시켜서는 안 되며, 좋은 책인지 아닌지를 판단하지 않고 잡동사니 책들을 모조리 소화시키는 데에만 급급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독서행위에 첫발을 들여놓았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만 하지만, 이왕 읽기 시작했다면 나의 소중한 시간을 할애한 만큼 나에게 의미있게 다가오는 책을 읽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어떤 책이 ‘좋은 책’일까? 좋은 책을 판가름하는 기준은 개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나에게 있어 좋은 책은 인간의 삶 자체에 대한 통찰을 할 수 있게 하는 책이다. 소로는 <월든>에서 ‘고전’이라는 문화적 유산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고전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나 또한 고전은 선택했을 때 후회가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갓 스무 살이 되어 길고 긴 통학길, 집 책꽂이에 놓여 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가지고 다니면서 읽었는데, 범죄를 저지른 인물인 라스콜리니코프의 내면 심리가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어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한 청년이 노파를 살해했다’는 하나의 사건이 소설에서는 사건을 저지르게 된 배경, 저지르기 전후의 인간의 심리, 그 결말까지 하나의 예술품으로 형상화되어 있던 것이다. 이 작품을 읽고 누군가의 내면을 들여다본 것 같은 기분을 느꼈고, 조금은 인간 존재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은 이런 책이다. 감동을 줄 뿐 아니라 인간과 삶에 대해 조금 더 트인 눈으로 바라보게 할 수 있는, 그런 책 말이다.
또, 나에게 좋은 책이란 나에게 배움의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책이다. 책을 읽는 행위는 나에게 많은 사실을 일깨워준다. 경험할 수 있는 세계의 폭은 제한되어 있고 알고 있는 지식의 정도도 한계가 있는데, 책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교과서로 기능하며 경험의 폭을 넓혀준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으며 우주의 신비로운 작동 원리와 모습에 대해 알 수 있었고,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를 읽으며 우리 문명에서 무기, 병균, 금속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기능해왔는지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책을 통해 이러한 배움을 얻는 것을 매우 기껍게 여기고,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을 행운으로 여긴다.
좋은 책을 만나면 자연스레 책 속의 사람들을 만나며 삶의 다양한 양상에 대해 배우고 깨달음을 얻게 된다. 내가 몰랐던 사실에 대해 알아 가며 지식을 쌓기도 하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기도 한다. 무작적 어려운 책만이 좋은 책이라는 것은 전혀 아니다. 누군가가 쓴 편지도, 수필도 나와 다른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어떤 책을 읽을지 고민하는 시간은, 내가 책을 통해 보다 나은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는 문 앞에 서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좋은 책을 만나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