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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Tube Feb 03. 2021

제36편 '난일' / 제39편 '난사'

제36편 '난일'

권세의 운용과 통제에 관한 논박 1

지금 요임금과 순임금이 둘 다 기려질 수 없는 것은 창과 방패의 이론과 같다. 하물며 순임금이 잘못된 것을 구제했다 하는 것도 1년이 걸려 한 가지 잘못이 고쳐지고 3년 만에 세 가지 잘못이 고쳐졌다는 것이니, 순임금의 목숨에는 다함이 있어서 천하에 잘못이 그칠 때가 없는 것이며, 다함이 있는 것으로 그침이 없는 것을 좇게 되면 그치길 바라는 것은 적어질 것이다. 상벌이란 천하 사람들을 반드시 하도록 만드는 것이니 법령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법도에 맞는 자는 상을 주고 법도에 맞추지 못하는 자는 주벌할 것이다."

명령이 아침에 이르렀다가 저녁에 변하고 저녁에 이르렀다가 아침에 변하면 열흘 만에 온 천하에 다 미치게 될 것인데, 어찌하여 1년 동안 기다릴 수 있겠는가? 순임금이 오히려 이러한 논리를 가지고 요임금을 설득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을 따라오게 하지 않고 몸소 친히 하였으니, 이 또한 술을 터득하지 못한 것이 아니겠는가?


'요순시대'는 중국에서 고대의 태평성대를 일컫습니다. 이상향 같은 것이죠. 그런 요순시대의 주역이자 성인으로 칭송받는 순임금을 감히 까고 있습니다. 전체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요임금이 다스리던 시절, 당시까진 아직 임금이 아니던 순임금이 문제를 직접 해결합니다. 백성들 사이에 다툼이 있는 지역에 순임금이 가서 먼저 솔선수범을 보이니 그 인품에 감화된 사람들이 문제를 고쳤다는 것이죠. 처음 1년 동안 하나를 고치고, 이후 총 3년 동안 3가지의 문제를 고칩니다. 이건 분명히 잘한 업적입니다.


하지만 한비자는 이것이 창과 방패, 즉 모순과 같다고 합니다. 백성들 사이에 다툼이 있고 그것이 쉬이 고쳐지지 않았던 것은 요임금이 통치를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툼을 해결한 순임금을 칭송하면 자연스레 요임금이 욕을 먹게 되고, 요임금의 통치를 칭송하면 통치에 따르지 않고 멋대로 행동한 순임금이 욕을 먹는 것이지요.


결국 한비자에서 택한 것은 순임금을 욕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결국 법과 술입니다. 사람을 욕하는 것이 아니라 법과 술을 따르면 더 효율적인데 그러지 않고 직접 해결하려 했다는 것이 욕을 먹는 이유입니다. 순임금이 아무리 성인이라고 한들 그 사람의 수명은 제한이 있습니다. 또 한 번에 모든 곳을 다니며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습니다. 결국 순임금이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직접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극히 일부분입니다. 때문에 문제는 개인의 힘이 아닌 시스템의 힘으로 해결되고 그 상태가 유지돼야 합니다. 그것을 만드는 것은 물론 군주이고요. 순임금은 직접 행하는 것이 아닌, 요임금을 설득해야 맞았다고 합니다. 시스템을 강조하는 한비자의 주장을 다시 한번 확실하게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사소한 문제는 계속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군주는 넓게 보며 모든 사람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시스템을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군주에게 실무 능력보다 비전 제시, 용인술이 더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제39편 '난사'

상과 벌을 내림에 관한 논박 2

무릇 총애하는 자를 물리치고 어질다고 생각하는 자를 등용한다고 해도 한 사람이 주군 앞에서 불을 쬐게 하는 데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위나라 때 신하 한 명이 총애를 받았습니다. 그 사람을 거치지 않고는 왕을 만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왕에게 이 사실을 알려준 한 난쟁이가 있었는데요. 왕은 그 말에서 깨달음을 얻고 총애하는 신하를 내치고 어진 사람을 그 자리에 등용합니다.


총애하는 신하는 군주가 좋고 나쁨을 드러냈기 때문에 생깁니다. 그럼 신하는 군주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게 되고, 군주도 사람이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잘 맞춰주는 신하를 총애할 수밖에 없게 되고, 그 신하는 자연스레 힘이 강하게 됩니다. 그런 신하를 내친 것은 잘한 일이지만, 단지 다른 사람으로 바꾼 것은 부정적입니다. 문제는 그런 신하가 있다는 것이지, 사람 문제가 아니니까요. 왕이 한 명에게 가려진 것은 동일합니다. 하지만 왕이 단순히 사람만 바꾼 것이 아니라 진짜 깨달음을 얻었다면 이런 상황 역시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어진 자를 등용하고, 그 어진 자를 술로써 잘 통제한다면 말이죠.


간신이 있는 상황은 분명히 부정적입니다. 그런 간신을 교체한 건 얼핏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결과적으로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는 군주에게 달려 있습니다. 군주의 법과 술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큰 힘을 가진 사람은 큰 책임도 함께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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