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가지 본질
(군주 한 사람의) 힘으로는 많은 사람을 대적할 수 없고 (군주 한 사람의) 지혜로는 모든 사물을 다 규명하지 못하니, (군주) 한 사람(의 지혜)를 쓰는 것은 온 나라(의 지혜)를 쓰는 것만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혜와 역량이 맞닥뜨리면 무리를 이룬 쪽이 이긴다. 추측하는 것이 들어맞으면 자기 혼자서만 수고롭고 맞지 않으면 허물을 맡게 된다.
하등급의 군주는 자기 능력을 다하는 자이고, 중등급의 군주는 다른 사람의 힘을 다 사용하는 자이고, 상등급의 군주는 다른 사람의 지혜를 다 사용하는 자이다.
한비자에서 계속 말하는 '시스템'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군주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난다 한들 직접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습니다. 때문에 군주라면 본인의 능력을 과시하기보다는 다른 모든 사람들의 능력을 모아서 그 능력이 필요한 곳에 적절히 쓰이도록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그토록 어렵고 중요한 일이기에 군주가 그만큼 중요한 대접을 받는 것이겠지요.
매니저에게 필요한 능력과 실무 전문가에게 필요한 능력이 다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보통 실무자가 경력이 쌓이고 하면 자연스레 매니저로 되는 경우가 아직까지 많은데요. 두 영역은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그 사람의 성향과 능력에 맞게 적절한 쪽으로 성장을 유도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상등급의 군주는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일이기에, 최소한 중등급의 군주가 많아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다섯 가지 좀벌레
유가는 문학으로 법을 어지럽게 하고 협객은 무력으로 금령을 어지럽히지만, 군주가 이들을 모두 예우하고 있으니 이것이 (나라가) 어지럽게 되는 까닭이다.
현명한 군주의 도는 법을 일정하게 할 뿐 지혜로운 자를 구하지 않으며, 술을 공고히 하지 신임받는 자를 흠모하지 않는다. 그래서 법은 무너지지 않고, 벼슬아치들은 간사함이나 속이는 행위를 하지 않게 된다.
본격적으로 유가를 까고 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유가의 학자들이 실질적인 공적은 없이 존경을 받고, 그런 사람을 나라에서 등용하고, '의'나 '인'이라는 이름으로 법을 해치는 행위까지 미화되기 때문에 까는 것이긴 합니다. 학문이 높다고 그 사람이 공직에서 직접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의나 인으로 포장된다 하더라도 법을 어긴 것은 어긴 것입니다. 때문에 상과 벌을 공적에 따라 명확하게 행사해야지, 명분이나 명성만으로 행하면 안 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법이 명확하고, 누구든 그 법을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고, 그 법에 따라 공정하게 상과 벌이 행해지는 세계가 이상적이라고 한비자는 본 것 같습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지극히 이상적이기도 합니다. 너무나도 기본적이고 명백하기에 지키기 어려운 것이 아이러니랄까요. 어쨌든 그런 노력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