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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Jun 03. 2024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옳다 뿐입니까? 화가 나서 죽을 지경입니다!”


<은혜를 거두면 나오는 저주와 원망>


하나님께서 요나를 바다에서 구출하기 위해 보내신 물고기처럼, 식물도 과분한 은혜의 또 다른 행위이자 그분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요나의 더위를 식혀주던 식물이 죽자 그는 다시 분노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주님, 제발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옳다 뿐입니까? 화가 나서 죽을 지경입니다!”


The LORD asked,

"Have you reason to be angry?"


Jonah answered,

 "I have reason to be angry, "

 "Angry enough to die."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내가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것으로 여기는 우리의 경향을 가슴 아프게 보여주는 예입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그분의 은혜와 자비 없이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와 우리를 위해 그러한 것을 창조하신 아버지에 대한 감사가 커집니다.


<오픈 엔딩>


요나의 마지막 장은 수천 년 후에 우리가 이 책 읽으면서 깊은 묵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하여 답이 없는 질문, 개방형 질문으로 마무리합니다.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으라는 사명을 받은 우리는 마치 하나님의 자비가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 나와 사교계에서 어울릴 법하거나, 나의 사회정치적 신념에 동의하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처럼 사는 것에 대한 반성을 이끌어냅니다.


요나를 보고 그를 결함 있는 선지자로 일축하는 것이 쉬운 만큼, 우리 자신은 얼마나 요나와 닮아 있는가를 돌아보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니이까?”



<구약에서 예수님의 고난을 예고한 요나서>


[첫 번 째 예표]


요나서 1장 14절에서 선원들은 주님께 부르짖었다. “아, 주님! 이 사람(요나, 예수)의 목숨을 희생시킨다고 부디 저희를 멸하지는 마십시오. 주님, 당신께서는 뜻하신 대로 이 일을 하셨으니, 저희에게 살인죄를 지우지 말아 주십시오.” 그러고 나서 그들이 요나를(예수의 예표) 들어 바다에 내던지자(십자가에 못 박아 죽임), 성난 바다가 잔잔해졌다(희생제물이 됨).


[두 번째 예표]


요나 1, 14절에서 선원들이 "그의 무죄한 피"에 대해 언급한 것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예표 중 첫 번째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밤낮을 보내는 일입니다. (요나 2,1)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니. 그러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느니라."(마태 12, 39).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사흘 밤낮을 어둠 속에서 지내셨을 때 무엇을 하셨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밤낮을 지내며 한 기도는 예수님의 죽음을 떠올립니다. 이 기도는 그리스도를 가리키기에 더욱 가슴 뭉클해지는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세 번째 예표]


물고기 그 자체는 하나님의 자비를 보여주는 예입니다. 요나가 불순종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심판에서 구출할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마치 요나의 사건 수 세기 후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전인류를 구원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나의 원수에게도 구원을 손길을 내미시는 하나님의 자비>


하나님께서 니느웨에 경고하신 재앙을 누그러뜨리시는 것은 요나서를 읽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분은 이방인들에게 구원을 베푸셨을 뿐만 아니라, 특별히 그의 백성의 적들에게도 구원을 베푸셨습니다.


출애굽기 34장을 언급하면서 요나는 여호와께서 앗수르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실 것임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우리가 자격이 없다고 믿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것을 볼 때, 요나처럼 비통함과 분노를 억제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가 우리를 위한 자비인 동시에, 나를 핍박하고 괴롭히고 화를 돋우는, 내 인생의 적수 '브닌나', '이세벨'을 위한 자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한다. 너희가 자기에게 잘해 주는 이들에게만 잘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그것은 한다. 그러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에게 잘해 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마태 5,38-48)(마태 7,12)(루카 6, 27)


<마음 치료를 위한 말씀>


주님께서는 마음이 부서진 이들에게 가까이 계시고

넋이 짓밟힌 이들을 구원해 주십니다.

(시편 34, 19)


마음이 부서진 저희를 고치시고

저희의 마음속 상처를 싸매 주소서.

(시 147,3)


주여, 저희의 마음을 고쳐 주시고

기꺼이 저희를 사랑해 주소서.

(호세 14,5)


다윗, 요나, 요셉, 엘리야처럼

나의 분노, 미움, 죽고 싶은 마음을

기도로 솔직하게 하나님께 털어놓으면

주님께서 상처받은 우리의 마음을

치료해 주십니다.  


[설교] “내적치유를 경험하라”ㅣ진정주 사모

https://youtu.be/dBEkIHcSqm4?si=UcQT6psItGJ00njF




<이스라엘의 원수,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


요나는 여로보암 2세의 통치하에 살았던 기원전 8세기 중반의 선지자였습니다. 니네베는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에 맞서는 잔인하고 이교적인 경쟁 문명인 아시리아의 수도였습니다. 요나의 생애 이전과 생애 동안, 아시리아인들은 정복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적인 잔혹행위를 자행하여 그의 백성에게 공포의 존재였습니다. (마치 일제식민지시대에 우리를 핍박했던 일본과 같은 나라였습니다.)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은 자민족 중심주의와 하나님의 뜻이 양립할 수 없음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피해 도망한 이유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는 아시리아 사람들에게 자비가 베풀어질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요나가 출애굽기 34장의 하나님의 성품을 언급, "그는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하나님이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크시며, 벌하시다가도 쉬이 마음을 돌리시는 분")


요나에게 있어 하나님의 구원은 오직 이스라엘 백성만을 위한 것입니다. 그는 구약 시대의 선자자 이므로, 하나님의 구원이 모든 사람, 심지어 이스라엘의 적들에게도 속한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요나의 글을 읽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의 결정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요나서 요약>


(일제 식민 시대에 우리에게

온갖 잔인한 악행을 저지르던

일본 같은 니네베;니느웨로 가서)

그들의 죄악을 돌이키라고 외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요나에게 임했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성품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하나님이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크시며,

벌하시다가도 쉬이 마음을 돌리시는 분'

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는 니네베로 가라는 말씀을 피하여 달아났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큰 물고기를 시켜 요나를 삼키게 하셨다.

요나는 사흘 낮과 사흘 밤을

그 물고기 배 속에 있었다.

그가 하나님께 회개 기도를 드리자,

주님께서는 그 물고기에게

요나를 육지에 뱉어 내게 하셨다.


요나는 니네베 성읍 안으로 걸어 들어가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라고 외쳤다.


니네베는

사흘이나 걸리는 아주 큰 성읍이었지만

(니네베가 하나님의 재앙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에)

그는 하룻길 거리만 걸었다.


요나의 말을 들은 그들은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그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


요나는 이 일이 매우 언짢아서 화가 났다.

그래서 그는 주님께 기도하였다.

"저는 당신께서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하나님이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크시며,

벌하시다가도 쉬이 마음을 돌리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미 주님께서 예정하신

재앙을 돌이키시어 자비를 베푸리라고

예상했기에 서둘러 타스시스로 달아났습니다.

이제 주님,

제발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원수가 잘 되는 꼴을 보느니)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하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는 식물 하나를 마련하시어

요나 위로 자라 오르게 하셨다.

그러자 그 식물이 요나 머리 위로 그늘을 드리워

그를 고통스러운 더위에서 구해 주었다.

요나는 그 식물 덕분에 기분이 아주 좋았다.


주님께서 벌레 하나를 마련하시어

그 식물을 쏠게 하시니, 식물이 시들어 버렸다.

그리고 뜨거운 동풍을 보내셨다.

거기에다 해가 요나의 머리 위로 내리쬐니,

요나는 기절할 지경이 되어 죽기를 자청하면서 말하였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물으셨다.

“식물 때문에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그가 “옳다 뿐입니까?

화가 나서 죽을 지경입니다.” 하고 대답하니,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수고하지도 않고 키우지도 않았으며,

하룻밤 사이에 자랐다가 하룻밤 사이에 죽어 버린

이 식물을 그토록 동정하는구나!

그런데 하물며 오른쪽과 왼쪽을 가릴 줄도 모르는 사람이

십이만 명이나 있고,

또 수많은 짐승이 있는 이 커다란 성읍 니네베를

내가 어찌 동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눈물의 요셉>


요셉은 이복형들에 대한 나쁜 이야기들을

아버지에게 일러바치곤 하였다.

이스라엘은 요셉을 늘그막에 얻었으므로,

다른 어느 아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였다.

그의 형들은 아버지가 어느 형제보다

그를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정답게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


한 번은 요셉이 꿈을 꾸고

그것을 형들에게 말한 적이 있는데,

그 때문에 형들은 그를 더 미워하게 되었다.

형들은 요셉을 시기하였다.

그래서 요셉을 죽여서 구덩이에 던져 넣고 죽일 모의를 했다.

유다와 르우벤의 만류로

형들은 요셉을 상인이게 은전 스무 닢에 팔아넘겼다.

상인들은 요셉을 이집트로 데리고 갔다.

아버지에게는 사나운 짐승이 요셉을 잡아먹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셨으므로,

그는 모든 일을 잘 이루는 사람이 되었다.

파라오의 재상이 된 요셉은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고생과

내 아버지의 집안조차 모두 잊게 해 주셨구나.” 하면서,

맏아들의 이름을 므나쎄라 하였다.


요셉은 온 세상에 기근이 심하여

곡식을 구하러 온 형들을 마주했다.

요셉은 형들을 보자 곧 알아보았지만,

짐짓 모르는 체하며 그들에게 매몰차게 말하고

시험해해 보려고 그들을 사흘 동안 감옥에 가두었다.

요셉은 그들 앞에서 물러 나와 울었다.


요셉은 자기 친어머니의 아들, 친동생 벤야민을 보며,

요셉은 자기 아우에 대한 애정이 솟구쳐 올라

울음이 나오려고 해서,

서둘러 안방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울었다.

요셉이 목 놓아 울자,

그 소리가 이집트 사람들에게 들리고

파라오의 궁궐에도 들렸다.



눈물이야 말로

치유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슬픔을 덜어버릴 길이 없었던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자기 속에 있는 얼음들이 녹는 것을

경험하게 될 때

마음속의 얼음이 물이 되어 흘러나오는 것이

울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청파아침묵상, 김기석 목사)


<악행도 선을 이루시는 데 사용하시는 하나님>


유다가 대신 종이 되겠다고 나서자,

요셉은 자기 곁에 서 있는 모든 이들 앞에서

더 이상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모두들 물러가게 하여라.” 하고 외쳤다.

 "저를 이곳으로 팔아넘겼다고 해서 괴로워하지도,

자신에게 화를 내지도 마십시오.

우리 목숨을 살리시려고 하나님께서는 나를

여러분보다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니 나를 이곳으로 보낸 것은

여러분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고 나서 요셉은

자기 아우 벤야민의 목을 껴안고 울었다.

벤야민도 그의 목을 껴안고 울었다.

요셉은 형들과도 하나하나 입을 맞추고

그들을 붙잡고 울었다.

(창세기 37-45장 요약)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로마 8, 28)


<차라리 죽었더라면, 욥>


알 수 없는 고통과 시련을 당할 때

욥처럼 하나님과 기도로 씨름하면

응답해 주십니다.


"어찌하여 내가 태중에서 죽지 않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모태에서 나올 때 숨지지 않았던가?

나 지금 누워 쉬고 있을 터인데.

잠들어 안식을 누리고 있을 터인데.

내게 무슨 힘이 있어 더 견디어 내고

내가 얼마나 산다고 더 참으란 말인가?

인생은 땅 위에서 고역이라.

제 영혼은 이런 고통보다는 숨이 막혀 버리기를,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습니다."


<사탄에게 받는 시험>


사탄이 주님께 대답하였다.

“욥이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겠습니까?

당신께서 몸소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를 사방으로

울타리 쳐 주지 않으셨습니까?

그의 손이 하는 일에 복을 내리셔서,

그의 재산이 땅 위에 넘쳐 나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당신께서 손을 펴시어

그의 모든 소유를 쳐 보십시오.

그는 틀림없이 당신을 눈앞에서 저주할 것입니다.”


우리의 약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탄은

마치 처음부터 제 것인 양 누리던

주님의 은혜를 거두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저주할 거라고 장담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고 물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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