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나의 눈에 값지고 소중하며
세상 풍파에 나의 약한 마음이
낙심하게 될 때에
(찬양,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주님의 기적들을 묵상합니다.
(시 119, 27)
그때에 들리는 주님의 음성
"귀하고 보배로운 내 사람아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사랑 내 소유 내 복된 자야.
너 있는 모습 그대로 내게 오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찬양, 값진 진주, 29m부터)
https://youtu.be/gxhyJKC_lS8?si=3AC9XgKhpYk4pVqB
작거나 크거나
다 그분께서 만드셨고
모두 똑같이 생각해 주신다.
(지혜서 6,7)
<말씀으로 하는 기도>
제 영혼이, 주님을 찬미합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숨기시고
(이사 45, 15)
제게 해 주신 일
하나도 잊지 않게 해 주소서.
제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고
제 모든 아픔을 낫게 해 주셨음을
(시 103, 2-4)
고백합니다.
제게는 너무나 신비로워
알지도 못하는 일들을
저는 이해하지도 못한 채
지껄였습니다.
(욥 42:3, 이사야 45:9, 코헬렛 6:10)
제 마음이 교만해져,
저를 이 세상 종살이에서
이끌어 내신
나의 하나님을 잊지 않도록
(신명 8, 14)
성령께서 저를 도와 주소서.
주님께서는
산산히 깨진 유리 같은 우리를 사용하시어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로 만드십니다.
(정호승 스테인드글라스)
https://news.cpbc.co.kr/article/1120982
주님께서
부르심을 입은 우리의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시고,
(로마 8, 29)
나를 부르신 내 일상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소서.
(손경민의 찬양 일상, 마태 6:10)
https://youtu.be/2tSN0sQiLe4?si=V0mg5S_YozOjEMmz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청파아침묵상 : 시편 108편 묵상 중에서>
https://youtu.be/czk-VKqLsx0?si=1i8CXllSayO-vvs8
복음을 전한다는 전도에 대해
우리는 여러 오해는 물론
왜곡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불쾌한 음성으로 윽박지르거나,
상대방에게 예의를 갖추지 않은 채
막무가내로 말을 전하려는 모습,
불필요한 용품을 나눠주는 모습 등으로
우리는 전도에 대한
그릇된 이미지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
즉 기쁜 소식을 전하고 나눠야 함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엄연한 사명이고 또 주님의 명령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든 전도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전도는
"당장 나와 교회에 나가자."
"예수를 믿어라.
그렇지 않으면 불행해 지고
나아가 죽음 이후에 끔찍한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으로
귀결 될 수 없습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이는 전도도 아니고
무엇보다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일진데
이 말은 저주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입니까?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이웃들과 나누어야 할 전도용품은
무엇보다
'따뜻한 말과 미소'입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다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기쁨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이웃을 향해
"힘든 일이 있으면
함께 고민 해 보자."고 말한다면
그것이 복음 전도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