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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현기 Apr 15. 2021

아버지의 새벽

   인간세계를 오염된 문명으로 물들이고 작고 연약한 것들로부터 밤을 빼앗았다. 길들여진 혼돈의 시간은 새벽이 되고서야 멈춘다. 푸르스름한 기운이 언덕을 넘어 떠오르는 그 새벽의 공기를 마셔보았는가. 가슴에 차오르는 따가운 신선함과 온몸을 휘감는 꿈틀대는 생동감은 새로운 기대감을 전해준다.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4절까지 들을 즈음이면 회사에 도착한다. 직장생활 11년을 정리하고 시작한 자영업이 벌써 20년을 넘어가고 있다. 그사이 대략 10년을 회사와 붙어 있는 집에서 거주했었다. 딸애가 고등학교에 다니고부터 시내로 이사를 나왔다. 그때부터 시작된 애국가 사랑은 어느덧 10년을 넘기고 있다. 어릴 적부터 청소년 시절을 지나면서 새벽에 기상하는 습관이 몸에 밴 탓으로 일찍 일어나는 게 어렵잖다. 새벽은 어둠의 가장 깊은 곳이어서 별이 더욱 선명하다. 그래서 좋다.


   초등학교 시절엔 반공교육이 한창이었다. 북한 주민의 열악한 생활상을 말해주는 일례로 ‘새벽별 보기 운동’이 있다. 새벽녘 북한 주민이 곡괭이를 어깨에 걸치고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힘들게 고생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리 낯선 일이 아니었다. 주택을 지어 파는 집장사 일을 하셨던 부모님은 항상 새벽 일찍 나가셔야 했다. 아침밥을 따로 차릴 수 없었기에 이른 새벽 부모님과 같이 아침을 먹어야만 했다. 한창 잠이 많은 어린 나이에는 새벽밥을 먹는 일은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비몽사몽 간에 일 나가시는 부모님 뒷모습을 보며 인사했었다. 어린 나에겐 새벽은 잠과의 전쟁이었다.



   청춘이 익어가던 시간의 새벽은 암울했었다. 지금 생각해도 당시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지긋지긋한 이 집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은 분명했다. 어느 순간 인생을 포기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그것만으로도 사춘기 청춘에겐 스트레스 그 자체였다. 머리맡에 뒹구는 농약병에 꼬꾸라져 바닥에 붙어버린 내 아버지, 삶의 희망이 꺼져가는 노구를 둘러업고 달렸다. 등줄기를 뜨겁게 흘러내리던 토혈이 나의 청춘을 암흑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이곳을 떠나야겠다는 마음이 섰다. 이 어둠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무엇을 두려워 하랴.


   도망치듯 집을 떠나 입학한 기숙학교는 도피처로 부족함이 없었다. 평소 단련된 새벽 기상습관은 기숙학교에서 나를 최적화된 사람으로 적응시켰다. 한국의 눈부신 경제발전의 일선에서 첫 사회생활은 포항의 철강회사였다. 교대 근무에서 맞이했던 첫 새벽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설레는 울렁거림이 느껴진다. 근 6년을 다니던 철강회사를 옮겨 시작한 새로운 출발은 또 다른 아침을 꿈꾸게 했다.


   IMF를 겪으며 직장은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열심히 일하면 보상이 따르고 회사는 종신고용까지 책임진다는 나의 믿음은 오래 가지 못했다. 현실에서 언제 잘릴지 모르는 하루살이의 목숨과도 같다는 것을 그 시기에 학습한 것이다. 시작이 좀 작으면 어떠랴. 열심히 내 몸 굴리면 그만큼의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 같았던 자영업의 길로 발을 딛게 하는 결심을 주었다. 그 시기의 새벽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었다.


   독감처럼 세상 곳곳을 산발적으로 전염시킨다는 소식이 들렸다. 갑자기 닥친 재앙이었다. 어느 날 코로나가 전 세계를 패닉으로 몰아넣고 하루 수십만 명의 확진자를 쏟아내며 수많은 생명까지 앗아가는 괴물로 변했다. 인간 사이를 저만치 멀어지게 했다. 인간이 인간을 경계하는 세상 마지막의 그 날처럼 서로의 입을 닫고 살아가게 했다. 백신의 희망이 깊게 새겨진 상흔을 쉽게 지우지는 못하였다.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출근하는 이 새벽은 위드(With) 코로나의 시간이다.


   문득 어린 초등학생이 보았던 아버지의 그 모습을 똑같이 재현하며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깊게 팬 주름살과 굵게 새겨진 팔뚝에 돋은 힘줄은 내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토록 미워하고 원망했던 아버지의 새벽을 똑같이 닮은 나의 새벽으로 오늘도 열고 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담고, 청춘의 불안한 맘을 담고, 미래를 향한 극복의 시간을 담은 새벽은 오늘도 어김없이 시작된다.


   새까만 어둠은 나의 그림자를 숨겨주어서 좋다. 웅크려있는 모습을 들키지 않아서 좋다. 아침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어서 좋다. 캄캄한 어둠을 뚫고 밝음으로 나갈 수 있는 첫 시작이어서 더 좋다. 이제 뜨거운 태양 볕을 온몸으로 받을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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